오징어게임이 일깨운 '콘텐츠'의 가치...커지는 미디어 법률 시장
입력 2021.10.26 07:00
    "수십억 딜도 PD가 사인"…法멀리했던 창작자들
    K콘텐츠 무대 커진 만큼 명확한 권리 확보 필요
    "제 값 받는 콘텐츠 돼야 시장도 성장하는 선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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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오징어게임처럼 글로벌 히트작이 되는게 창작자 입장에서 좋은 기회지만 부가 수익, 판권 등을 넷플릭스가 100% 가져가다 보니 ‘남 좋은 일’ 한다는 씁쓸함도 있다. 지금까지야 넷플릭스와 일하면 감지덕지했지만, 이제 디즈니플러스도 들어오고 OTT들 경쟁이 더해지면 콘텐츠 창작자 목소리도 커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 콘텐츠 업계 관계자) 

      넷플릭스 오리지널인 ‘오징어게임’의 전 세계적인 인기와 더불어 넷플릭스의 수익 배분 방식도 주목을 받았다. 오징어게임의 ‘대성공’에도 불구하고 제작사가 얻는 수익은 사전에 확정된 제작비 전체와 10% 정도의 부가 수익 정도로 알려진다. 

      오징어게임의 경우 창작자 측이 조건을 모르고 한 것도 아니고, ‘초대박’을 넷플릭스도, 제작자도 예상할 수 없었기 때문에 문제가 될 건 없다. 하지만 이번 사례를 계기로 국내에서 콘텐츠 창작자와 플랫폼과의 수익배분 등 미디어 시장의 법적 이슈에 대한 경각심도 높아졌다. 콘텐츠 시장 성장 기대감이 커짐과 동시에 미디어 법률 서비스 수요도 높아지는 분위기다. 

      최근 국내 콘텐츠 업계는 말 그대로 ‘총성없는 전쟁’이다. 플랫폼들은 좋은 콘텐츠를 생산할 창작자들(제작사, 감독, 작가 등) 찾기에 사활이고, 창작자들도 알맞은 플랫폼을 찾기에 고심이다. 현재 한국 론칭을 준비하는 대형 글로벌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들도 ‘돈은 있는데 콘텐츠를 못구하는’ 상황이다. ‘제작사나 연출자가 어떤 플랫폼과 일할지는 네트워킹, 계약 조건 등 다양한 요소들이 영향을 미친다. 

      특히 최근엔 콘텐츠 수요가 급증하며 연출 감독은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 플랫폼들은 인기 감독을 차지하기 위해 3~5년의 전속 계약을 제안하기도 한다. “원작은 있어도 감독을 구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온다. 통상 지상파 방송국에서 드라마 감독은 10년, 예능 PD는 7~8년의 투자 기간이 필요한데, ‘키우면 나가고’가 반복되고 채용은 줄면서 공급 ‘악순환’이 나타났다. 케이블은 높은 연봉을 제시하고 지상파 인력을 스카우트 해왔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길러내는 시스템이 미미하다. 

      이런 배경에서 콘텐츠를 공급받는 플랫폼뿐만 아니라 콘텐츠 창작자들 입장에서도 법률 이슈를 살펴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 무엇보다 콘텐츠 시장 규모가 커졌다. 과거에는 몇십억원이 투입되면 대작이었지만, 이제는 제작비 몇백억원 작품이 널렸다. 창작자 몸값도 천정부지다. 감독들은 ‘회당 1억원’ 수준으로 올랐다. 한 시즌이 10회 이상일 때 계약은 수십억원 딜(deal)인 셈이다.

      콘텐츠의 비즈니스 확장성이 커지면서 IP(지적재산권)의 중요성도 높아졌다. 넷플릭스도 2차저작물 사업을 키우고 있다. 이달부터 월마트(Walmart)를 통해 오징어게임 등 히트작 굿즈(상품)를 판매한다. 콘텐츠의 비즈니스 확장성은 무궁무진하다. 예로 PD가 본인이 연출한 프로그램에서 탄생한 ‘음악’도 IP를 인정받아 음악 사업을 할 수 있다. 파생 가능한 부가 비즈니스가 많다보니 콘텐츠의 IP, 카피라이트(판권) 등 명확한 법적 권리 확보가 더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 

      자본시장에서도 콘텐츠와 연관된 거래가 늘어나고 있다. 콘텐츠 회사의 기업공개(IPO), 투자 유치, M&A(인수 합병)이 늘어나고 있고 규모도 커졌다. 콘텐츠가 ‘자산’이 되면서 기업가치(밸류)에도 영향을 미친다. 현재 FI(재무적투자자) 유치를 추진 중인 티빙(TVING)은 투자 유치 후 기업가치를 최소 1조원 이상으로 바라보고 있다. ‘해당 밸류가 적절한지’와 관련해 보유한 IP의 가치산정은 필수다.

      외형 확장에 사활을 걸고 있는 국내 OTT들의 가치도 결국 IP가 결정한다. 이 때 좋은 콘텐츠를 확보하기 위해 글로벌 OTT의 공세 속에서 ‘차별점’으로 내세울 수 있는 것이 유리한 계약 조건이다. 라이선스 기간 협상, 흥행 여부에 따른 일정 부분의 수익 배분 등으로 창작자들을 유인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지금까지 국내 미디어 시장에선 법률적 검토의 중요성이 부각되지 못했다. 작가나 감독이 작품을 계약할 때 수십억원, 글로벌 OTT와는 몇백억원 규모이지만 전문가의 검토 없이 ‘셀프’로 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글로벌 OTT의 경우 영문 계약서로 진행되기 때문에 ‘소통 오해’로 추후 이슈가 생기기 쉽다. 문제가 생기면 발생하는 손해와 들어가는 법적 비용은 더욱 불어난다.

      미디어 시장에 관심이 적었던 국내 법률 시장 분위기도 이유였다. 로펌도, 변호사들도 ‘돈 되는’ 비즈니스는 아니다보니 일을 나서서 찾진 않았던 것. 그러나 이제 콘텐츠 시장이 커지면서 오고가는 금액 규모가 커졌고, 법률 수요도 많아지고 비즈니스 기회도 많아지면서 관심이 커졌다. 

      미디어 시장이 훨씬 큰 미국은 법률시장도 매우 크다. 미디어 전문 로펌도 여러 곳이다. 배우, 작가, 감독 할 것 없이 계약이 수백억원에 달해 법적인 검토가 필수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넷플릭스는 글로벌로 1000명에 달하는 사내 변호사를 두고 있고, 단순 대리인이 아니라 직접 비즈니스를 챙긴다. 추후 생길 수 있는 소송을 방지하기 위해서 명확하고 꼼꼼한 계약 조건 협상이 필수다. 

      국내에도 최근 최초로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전문 로펌이 생겨났다. 법무법인 화우에서 엔터테인먼트팀장을 맡았던 이용해 변호사가 독립해 yh&co를 설립했다. 지금까지 법률 수요가 기업에 집중됐었다면, 이젠 기업은 물론이고 창작자들도 법률 서비스 필요성이 높아질 것이란 설명이다. 실제로 오징어게임으로 수익배분 이슈가 재조명되면서 제작사, 감독, 작가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법률 자문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이용해 yh&co 대표변호사는 “콘텐츠는 다양한 비즈니스 기회가 많기 때문에 법적 권리도 명확해야 하는데, 결국 미디어 분야는 비즈니스와 법률 이슈를 함께 챙기는게 핵심”이라며 “창작자도 제대로 돈을 벌고, 질 좋은 콘텐츠들이 계속 생산돼 투자가 이어지는 선순환이 이어져야 국내 콘텐츠 산업이 커지고 장기적으로 플랫폼과 창작자 모두가 ‘윈윈(win-win)’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