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는 씨티은행의 찜찜한 뒷모습
입력 2021.10.29 07:00
    취재노트
    철수 발표 이후 고객들은 '혼란'의 연속
    다음날 광고에선 '기업금융으로 한국에 기여'
    씨티銀서 이미 지워진듯한 200만 개인 고객
    • "형, 씨티 철수한다면서요. 저 월급통장이 씨티인데 어떻게 해요?"
      "홈페이지에 안내 있잖아. 문의해 봐."
      "예금은 그냥 해지 전까지는 유지된대요. 신용대출도 만기까지는요."
      "카드는 유효기간까지만 쓸 수 있을텐데. 
      신용대출은 1년 단위일거고."
      "아 모르겠어요. 복잡해요. 어디로 옮기지. 요샌 신용대출 새로 받기도 힘든데..."

      한국씨티은행이 소비자금융 철수를 공식 발표한 25일, IT업체에서 근무하는 지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금융이라고는 예적금과 대출밖에 모르는 지인은 생전 처음 경험하는 '은행 철수'에 적잖이 당황하고 있었다. '네가 해지하기 전까진 쓸 수 있는데, 구체적인 건 나중에 공지하겠다'는 내용이 끝없이 반복되는 '대고객 안내' 홈페이지는 그에게 별로 큰 도움이 되지 않는 듯 보였다.

      다음날인 26일, 주요 일간지에 일제히 한국씨티은행의 광고가 실렸다. 자신들이 외국계 은행 최초로 한국에 지점을 냈다는 내용과, 기업금융에 집중하겠다는 내용, 그리고 기업금융을 통해 한국경제에 변함없이 기여하겠다는 내용이 핵심이었다.

      광고를 본 지인이 다시 연락을 해왔다. "형, 저는 '고객 여러분께 불편을 끼쳐드려 정말 송구스럽습니다'라는 내용이 그래도 한 줄은 들어가있을줄 알았어요. 정나미가 떨어지네요."

      한국씨티은행 전체 여신 24조원 중 기업금융이 차지하는 비중은 9조6000억원, 40% 남짓이다. 덩치는 작지만 건전성은 훨씬 뛰어나다. 올 상반기 말 기준 부실자산(고정이하+무수익 여신) 비중이 0.8%에 불과했다. 소비자금융 부문 부실자산 비중은 그 두 배에 달하는 1.5%다.

      올 상반기 기준 한국씨티은행의 순영업이익 5112억원 중 종업원 급여로만 2485억원이 지급됐다. 일반관리비도 1566억원에 달했다. 한국씨티은행 임직원 중 3분의 2가 소비자금융부문에서 일한다. 이 때문에 금융권에선 한국씨티은행이 소비자금융을 철수하더라도 연간 이익은 현재 수준을 유지하거나 오히려 더 늘어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씨티은행이 내놓은 '기업금융으로 한국경제...' 광고 역시 이런 맥락에서 나왔을 것이다.

      소비자금융부문의 철수는 미국 씨티그룹 본사의 의지다. 올 초 부임한 새 최고경영자(CEO)가 전격적으로 결정했다. 기업금융에만 집중하겠다는 판단도 비난을 받을만한 성질의 것은 아니다. 소비자금융부문 매각을 타진했지만 원매자를 구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의문은 남는다. 

      철수 결정 이후 행보와 광고를 보면, 마치 200만명의 소비자금융 고객이 이미 한국씨티은행의 머릿 속에서 지워진 것 같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안 그래도 일자리 숫자에 민감한 정부 앞에서 2500여명의 실업자를 양산하는 결정을 내리고도 괘념치 않는 듯한 인상을 준다. 한 국내 시중은행 관계자는 "외국계 은행이라 그럽니다. 당기순이익 외에는 아무 관심 없죠."라고 평가했다.

      고객 혼란 방지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평가도 은행권에서 나온다. 지난 4월 매각이 결정된 이후 한 금융지주 최고위 관계자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자산부채이전(P&A) 방식이라면 인수를 고려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씨티은행은 통매각을 고수하다 막판에 카드 등 일부 사업부문 분할매각으로 선회했고, 여기서도 결론을 내지 못하며 철수라는 '경착륙'을 선택할 수밖에 없게 됐다.

      한국씨티은행은 부문 철수를 위해 직원들에게 정년까지 잔여 연봉 보장, 최대 7억원까지 퇴직금 지급 등의 '당근'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매우 파격적인 조건이다. P&A가 어렵다는 전망이 나왔던 건 고용보장을 요구한 노동조합의 반발 때문이었다. 당근을 일찍 제시하고, 직원 반발을 최소화한 후 P&A로 매각했다면 지금의 소비자 혼란은 방지할 수도 있었다는 얘기다.

      철수 결정 이전부터 한국씨티은행이 소비자금융부문을 더 이상 키우지 않을 것같다는 소문이 돈 것도 사실이다.

      지난해 박진회 전 씨티은행장이 퇴진한 이후, 유력한 차기 행장 물망에 올랐던 사람은 현 유명순 행장과 박장호 씨티글로벌마켓증권 대표 둘이었다. 두 명 모두 기업금융에 특화한 인재다. 유 행장은 대기업리스크부장ㆍ기업금융상품본부 부행장ㆍJP모건 서울지점 기업금융 총괄을 맡았다. 박 대표는 뱅커스트러스트 IB대표, 살로먼스미스바니 DCM대표를 거쳐 2005년부터 씨티글로벌마켓증권 대표를 맡아왔다.

      한국씨티은행의 26일자 광고엔 '한국씨티은행을 이용해 주시는 고객님께 감사드리며' 라는 구절이 들어가있다. 현재진행형으로 쓰여진 시제나 앞뒤 문장과의 맥락을 고려하면, 역시 이 '고객'이라는 표현에 이미 '200만 소비자금융 고객'은 포함돼있지 않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