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외시세 조종은 나몰라라'...앞다퉈 플랫폼만 만드는 증권사들
입력 2021.11.02 07:00
    증권사, 새로운 수익원 떠오른 비상장사 플랫폼 사업 뛰어들어
    “거래사기 줄며 안정성은 높아졌지만 장외시세조종 오히려 늘어”
    “비상장거래자 95%가 브로커”…개인들은 증권사 믿고 고점에 매수
    매수∙매도 수수료 1%씩 받으며 방치…공모주 시장에도 악영향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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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최근 잇따라 증권사들이 장외주식거래시장으로 사업을 확장하기 시작하면서 허위매물 등 거래 안정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증권사가 끼면서 거래 사기가 줄고 거래의 안정성이 높아졌지만 허위매물 등 장외시세조종은 오히려 늘었다는 지적이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KB증권은 비상장주식 거래 서비스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출시 시점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자사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 앱 ‘M-able’ 안에 비상장주식 거래앱을 연동시키는 방식으로 출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NH투자증권도 외부 운영업체와 제휴를 맺고 비상장주식 거래 서비스 출시를 준비하고 있다. 

      이보다 앞서 삼성증권은 2019년 두나무와 제휴를 맺고 ‘증권플러스 비상장’을, 신한금융투자는 지난해 피에스엑스(PSX)와 함께 ‘서울거래소 비상장’을 내놓았다. 이외에도 코리아에셋투자증권이 ‘네고스탁’을, 유안타증권이 ‘비상장레이더’를 운영 중이다. 

      여러 증권사들이 비상장주식 거래시장을 공략하는 데에는 비상장주식 거래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서다. 지난 19일 국내 유일의 제도권 장외시장인 K-OTC의 시가총액은 30조원을 돌파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해 1월만 해도 18조원에 머물던 K-OTC 시가총액은 최근 4개월간 자금이 유입되며 10조원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증권사들도 장기적으로 새로운 수익원을 마련하기 위해 비상장주식 거래 서비스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최근 공모주 열풍에 힘입어 IPO(기업공개)를 앞둔 기업의 주식을 사려는 투자자가 늘면서 많은 증권사들이 앞다퉈 관련 서비스를 내놓고 있다”며 “비상장사와 접촉 기회를 늘려가며 WM 및 IB부서의 활동과 시너지효과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증권사가 비제도권 주식시장에 뛰어들면서 오히려 장외시세조종이 쉬워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증권사들이 비상장주식 플랫폼을 운영하면서 거래 사기가 줄어들며 거래의 안정성은 높아진 건 사실이지만, 장외가격을 조종하려는 세력들은 사실상 방치하고 있어서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주요 비상장플랫폼에 있는 거래자 95%가 브로커라고 봐도 무방하다”며 “증권사들은 주식계좌만 제공할 뿐 시세조종을 위한 허위매물을 검증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28일 한 장외 플랫폼에 올라온 비상장사 ‘두나무’의 거래 게시판을 보면 의아한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일반 매도가는 49만8000원선에 형성된 반면, 매수가는 최소 50만원에서 65만원까지 주문이 올라와 있다. 매도 호가보다 높은 가격에 매수한다는 글이 올라온 것이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장외주식가격은 가격 설정을 임의대로 할 수 있기 때문에 장외주식가격을 올리거나 내리기 위해 중개업체들이 공매도 공매수하는 경우가 빈번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이렇게 책정된 장외주식가격을 투자자들은 증권사에서 하는 플랫폼이니 공정하게 형성된 시장가격이라 믿고 거래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결과, 몇몇 투자자들이 이른바 ‘따상’ 기대감에 상장을 앞둔 회사의 주식을 고점에 사서 피해를 보는 경우가 늘기 시작했다. 

      크래프톤이 대표적이다. 국내 한 비상장주식 거래 플랫폼에선 상장 한 달 전까지만 해도 크래프톤 장외 주식이 공모가(49만8000원)보다 높은 50만~60만원에 거래됐다. 주당 60만원에 100주 가량 체결된 건도 있었다.

      지나치게 높게 형성돼 장외주식가격이 공모주시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일반적으로 장외주식은 공모가보다 저렴하게 매수해 상장을 했을 때 차익을 얻은 시장인데 공모가격과 별반 차이가 없어지고 있어서다. 

      김민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보고서를 통해 “상장시점이 다가올수록 상장 전 장외거래가격이 대체로 상장 이후 시장가격에 수렴하는 것으로 나타난다”며 “이 같은 추이는 상장 10~20거래일 전에 가장 두드러졌다”고 말했다. 

      중개플랫폼 업체들도 브로커들의 허위매물을 알고 있지만 규제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한 금융업계 관계자는 “업체들 입장에서는 높은 거래량을 기록하는 불법 브로커를 규제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건전한 장외주식시장을 위해 증권사들의 중개플랫폼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증권사들은 매도자와 매수자에게 각각 1%씩 수수료를 받으면서 주식계좌만 제공하기만 할 뿐 실질적 운영은 플랫폼 업체가 하고 있다”며 “적어도 증권사가 플랫폼 운영에는 개입하지 않는다고 투자자에게 명확하게 공지를 하거나 운영을 맡은 플랫폼 업체에게 적극적인 관리 감독을 요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