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진 덩치에도 계속되는 엔터업계의 '신비주의'
입력 2021.11.03 07:01
    취재노트
    외부 소통 방식 바꿀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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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최근 연일 엔터 업계가 들썩이고 있다. 지난해 코로나 발발 이후 주춤했던 엔터주들은 가까워진 ‘위드 코로나’로 연일 신고가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상장 후 엔터 대장주에 오른 하이브(HYBE)는 BTS(방탄소년단)의 공연 재개 기대감과 함께 시가총액 순위가 한 달 만에 10계단 상승했다. SM엔터와 JYP엔터는 상장 후 첫 시가총액 2조원대를 앞두고 있다.

      뜨거운 관심을 반영하는 건 주가만이 아니다. 팬십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SM엔터테인먼트 관계사 디어유는 최근 코스닥 시장 상장 전 수요예측에서 기관투자자들의 폭발적인 러브콜을 받았다. SM엔터 최대주주인 이수만 프로듀서의 지분 매각 딜(deal)은 진행상황 단계별로 화제가 되고 있다. 

      최근 자금 조달에 나선 하이브만 봐도 엔터사의 자본시장 내 달라진 시선을 느낄 수 있다. 상장 후 1년 새에 네이버의 투자 유치, 이타카홀딩스 인수 및 유상증자 등 연이어 굵직한 딜을 하면서 여의도의 ‘VIP’가 됐다. ‘이름값’이 있어 딜 유치전이 여느 대기업 못지 않은 인기다. 대형 증권사는 물론이고 각종 IB들이 “하이브와 일을 해보고 싶다”는 소망(?)을 내비친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엔터사라고 하면 기관들이 관심 갖기에 ‘너무 작은’ 섹터였다. 이제는 글로벌로 무대가 넓어진 K팝뿐 아니라 콘텐츠, 메타버스까지 다 엮이는 큰 산업이 됐다. 규모가 커지면서 벌리는 일의 스케일도 커졌고, 그만큼 돈을 끌어 쓸 통로인 자본시장과의 접촉점도 늘었다. 자연스레 시장의 요구도 많아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달라진 자본시장의 관심에 비해 업계의 준비는 부족한 상황이다. 지난해 하이브가 상장할 때 소통채널이 없어 시장 관계자들 사이에선 “신비주의냐”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엔터사의 소홀한 소통에는 유구한 역사가 있다. 당시에도 엔터업계와 오래 일을 해 본 관계자들은 “하이브만 유독 그런게 아니라 엔터사는 기본적으로 ‘무대응’ 스탠스”라는 반응이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소위 대형사인 SM, JYP도 아는 애널리스트가 아니면 전화도 잘 안 받아서 기관투자자들도 연락이 안 된다고 애널리스트에게 부탁하곤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아직도 대다수의 엔터업계 경영진은 ‘뜬구름식’ 소통을 선호한다고 전해진다. 일부 상장사들은 상장을 할 때까지 제대로 된 IR(Investor Relations) 조직도 갖추지 않는다. 미디어 대응을 포함한 '대외 업무가'도 보통 아티스트 관련 업무에 치중돼 있다. 이렇다보니 적합한 인력 충원도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엔터·미디어를 담당했던 애널리스트를 포함해 금융투자업계에서 엔터 산업에 관심을 갖고 이직을 했다가 ‘너무 다른’ 분위기에 금새 고향(?)으로 돌아오는 사례도 줄을 잇는다. 

      물론 적극적인 시장과의 소통이 조심스러운 산업이다. 업계 특성상 대중들이 가십(gossip)으로 관심을 가지기도 하고, 작은 이벤트도 왜곡된 소문이 되기 쉽다. 덩치가 크지 않아 체계적인 IR 활동을 통한 소통이 미비해 개인주주들이 회사로 직접 연락하는 경우도 잦다고 전해진다. 

      국내 엔터산업이 ‘산업’ 모양을 갖춘 역사도 길지 않다. 지금이야 ‘K-소프트파워’를 이끄는 축이지만, 2000년대 중반만 해도 국내 엔터업계에는 ‘표준 계약서 양식’조차 없었다. ‘너 좋고 나 좋고’ 식의 구두계약 혹은 회사 별로 천차만별인 계약서가 통용되는 시기였다. 그러다 2008년~2009년 동방신기(JYJ)와 SM엔터의 분쟁 등 각종 연예계 사건이 사회적이 관심을 받았고, 결국 공정거래위원회가 제동에 나섰다. 정부는 2009년부터 표준전속계약서를 마련해 업계에 사용을 권고했다. 

      한 엔터업계 관계자는 “이름만 대면 아는 유명 뮤지션이자 사업가는 과거 기획사 대표로부터 정산을 종이가방에 든 현금 뭉치로 받았다”며 “기획사끼리의 M&A(인수합병)도 보통 대표들의 친분이 좌우했고 연예인 관리, 회사 경영, 음악까지 대표 한마디에 좌우되던 것이 다반수”라고 말했다. 

      이제는 ‘이 바닥이 원래 그렇다’는 식의 주먹구구식 경영은 어렵다. 그러기엔 덩치가 너무 커졌다. 하이브 혼자만 시총이 13조원이다. ‘테크기업’이라는 엔터사들의 주장을 고려해 관련 산업까지 포함한다면 규모는 더 커진다. 카카오엔터, RBW 등 주식시장 데뷔를 대기하는 기업도 여럿이다. 

      쿠팡 같은 공룡 기업도 과거 외부 소통 방식이나 채널 미흡이 거론됐지만 여러 번 이슈를 겪고 나서 소통의 체계를 잡아갔다. 대기업 등 전통 산업에서의 인력 이동도 대거 있었다. 더 먼저는 벤처기업으로 시작해 대기업 반열에 오른 네이버와 카카오가 있다. 미국의 구글이나 페이스북, 페이팔 등 ‘실리콘밸리의 제왕’들도 비슷했다. 한창 신화를 이어가면서 독단적인 행보를 보이자 “왕이 된 양 자만한다”는 비판 여론이 형성된 바 있다. 

      체계적인 경영은 체계적인 외부 소통을 동반한다. SM엔터는 2019년 라이크기획 문제를 중심으로 투자자들과 정부의 집중 공격을 받으면서 때아닌 고생을 하기도 했다. “시장에서 돈은 땡기고 싶고 외부랑 소통은 하기 싫고, 이럴거면 상장을 하지 말아아죠”라는 한 기관투자자의 말에 뼈가 있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