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과 '긴축 발작' 사이 눈치보는 증시...침체 속 '베어 마켓 랠리' 기대
입력 2021.11.18 07:00
    내년 코스피 전망치 2800~3400...비교적 차분
    에너지 제외 물가 안정적 기조였지만 美 CPI '쇼크' 지속
    코스피 이익 전망치 하향 조정은 2022년 상반기 마무리될듯
    중국 확장 재정이 급락한 코스피 PER에 미칠 영향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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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1월 초 5일간의 눈부신 폭등, 환희에 가득찼던 5월 고점, 이후 지지부진한 신(新) 박스피. 올해 코스피 시장의 특징을 한 문장으로 분석하면 이렇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대세 상승장은 상반기에 끝났고, 하반기들어 양적완화 축소(테이퍼링)와 이에 따른 긴축 발작(테이퍼 텐트럼) 우려, 원자재발(發) 인플레이션 우려가 증시를 계속 수렁으로 끌어내렸다.

      11월 들어선 '상대적 박탈감'이 증시를 짓누르고 있다. 미국 주요 지수가 연일 신고가를 경신하는 가운데, 코스피는 3000선에서, 코스닥은 1000선에서 치열한 공방이 진행 중이다. 이익 추정치 상승세가 꺾인데다, 연말 대주주 회피 매물을 감안하면 올해 국내 증시에선 '크리스마스 랠리'를 기대할 수 없는 것 같다는 자조감이 투자자들 사이에 맴돌 정도다.

      이런 가운데 국내외 증권사들은 내년 코스피가 2800에서 3400 사이에서 움직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코스피 주가순이익비율(PER) 대비 '역사적 저점'까지 하단을 열어두고, 우호적 장세가 펼쳐지더라도 올해 기록한 전 고점(3316)을 압도적으로 넘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유동성이 줄어들기 시작하고, 기업 실적 역시 상승세가 둔화되는 전형적인 '침체 국면'이 시작됐다는 게 거의 모든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다만 침체 국면에서 '밸류에이션'이 일시적으로 상승하는 '베어 마켓 랠리' 정도는 기대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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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거시 경제 상황은 한때 긍정적인 전망이 대세였지만, 여전히 혼란한 상태다. 최근 경기의 가장 큰 변수로 꼽히고 있는 '인플레이션 우려'는 다소 안정적인 국면을 이어가는 가운데, 경계감은 여전히 남아있다.

      이번 인플레이션 우려는 전반적인 원자재 가격이라기보단 '에너지 가격 급등'에 가까웠다는 평가다. 에너지 원자재 인덱스는 올해 초 대비 10월까지 2배 가까이 급등한 반면, 비에너지 원자재 가격은 안정적으로 유지됐다.

      원자재 가격 급등세를 이끈 유가와 천연가스 가격은 모두 10월 말을 고점으로 하락 안정 추세다. 배럴당 100달러를 향해 돌진하던 국제 유가는 잠시 80달러선 아래로 밀리기도 했다. 천연가스 역시 러시아가 공급량을 늘리며 고점 대비 20%가량 하락한 상태다. '대란'이 벌어졌던 중국 석탄 가격은 한 달만에 반 토막 났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천연가스에 이어 각종 금속 가격이 하락했고, 유가도 (배럴당) 80달러대에서 안정화 되고 있으며, 발틱운임지수(BDI)등 물류 비용 가격도 이미 하락 반전했다"면서 "많은 것이 단기간 내에 해소될 수는 없지만, 일부 요소는 점차 해소되고 있다"고 말했다.

      테이퍼링 우려는 시장에서 가장 환영할만한 방식으로 해소됐다. 지난 4일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OMC)는 현재 월 1200억달러(약 141조원) 규모의 양적완화를 매월 150억달러씩 줄여 내년 6월 종료하되, 내년 이후 경기 상황에 따라 속도를 조절하기로 결정했다. 물가 상승 역시 '일시적'이라는 관점을 유지했고, 금리 인상에는 '인내심'을 갖겠다고 강조했다.

      이는 시장 예상과 완전히 부합하는 의견이었다. FOMC 이후 미국 증시는 안도 랠리를 시작해 연일 이전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물가 급등으로 조기 금리 인상이 이루어져 시장이 큰 충격을 받는 '테이퍼 텐트럼'(긴축 발작) 우려가 사라진 덕분이다.

      한 증권사 트레이더는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의 연임이 유력하게 점쳐지고 있으며, 차기로 언급되는 라엘 브레이너드 이사 역시 '비둘기파'에 속한다"며 "1조 달러(약 1200조원) 규모 인프라 예산안이 미 의회를 통과하며 낙관론이 아직은 더 우세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최근 발표된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긴축 발작' 우려가 재점화하는 계기가 됐다. 10월 CPI는 전년 동기 대비 6.2% 급등해 시장 예상치였던 5.9%를 크게 뛰어넘었다. 1990년 이후 30년만의 최고치이기도 했다. 안정화 추세였던 근원 CPI 역시 4.6%로 다시 상승폭을 키웠다.

      수요 회복-공급 부족으로 인한 물가 상승 국면이 당분간 계속될 거라는 신호라는 게 시장의 해석이다. 최근 국제 금 값이 5개월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상승 추세인 것 역시 인플레이션에 대한 경계감이 아직 여전하다는 방증이다.

      코스피 내부의 우려 역시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큰 추세가 경기 둔화로 돌아선 이상 최근 2년 같은 폭발적인 상승세는 다시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가가 많다.

      하반기 코스피 약세는 코스피 이익 추정치 전망 하향 조정이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6월 초 이익 추정치 전망 하향 조정이 시작되며 상승 동력을 잃었고, 7월 이익수정비율(이익 추정치 상향 기업 수를 하향 기업 수로 나눈 비율)이 꺾이며 지수도 추락을 시작했다. 

      사실 올해 코스피 상장사들은 지난해 말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눈부신 성과를 냈다. 2020년 말 추정한 2021년 코스피 순이익 전망치는 전년대비 40% 성장한 130조원대였는데, 실제로는 90% 성장한 170조원대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2022년 전망치는 190조원 안팎이다. 10% 가량 성장이 예상된다.

      이익 추정치 전망 하향 조정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다만 속도나 기울기는 둔화하고 있다. 일단 내년 1분기를 전후해 하향 조정이 마무리될 거라는 평가다. 2022년초부터 증시에 반영이 시작될 하반기 및 2023년 전망이 중요해진다는 이야기다.

      올해 170조, 내년 190조원의 코스피 순이익은 이전과 비교에 결코 낮은 수준이 아니다. 이전 코스피의 황금기였던 2017년~2018년 코스피 연간 순이익이 155조~156조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 올해 박스피가 다시 시작된 건 이익 전망치 하락에 따른 '밸류에이션' 조정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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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KB증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14.6배까지 치솟았던 코스피 12개월 선행 주가순이익비율(PER)은 현재 10.1배 수준까지 내려온 상태다. 긴축에 대한 글로벌 우려가 팽배했던 상황에, 한국은행이 매파적인 태도로 기준금리 상승에 나서며 실제 긴축에 나서자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간 결과라는 게 시장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미국 테이퍼링이 시작됐고, 한국은행 기준금리도 오르고 있다. 유동성 장세는 지나가고 올해 하반기부터 긴축 조정 구간에 접어들기 시작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란 평가다. 게다가 내년 하반기 이후 미국이 기준금리를 올리기 시작하면, 국내 증시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평균적으로 미국이 금리 인상을 단행하기 5개월 전부터 국내 증시는 악영향을 받는다. 2022년 6월 테이퍼링 종료 이후 미국은 금리를 인상할 시기를 저울질하게 될 전망이다. 만약 2022년 하반기 중 인상이 유력시되면, 코스피는 4~5월경부터 악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다.

      상반기까지는 이익 전망 하향 조정이, 하반기부터는 미국 기준금리 인상 공포가 시장에 지속적으로 하락 압력을 줄 거란 이야기다.

      코스피가 하락 추세로 돌아서 1년 내내 약세를 보일 거란 전망은 아니다. 증권가에서는 단기적으로 '베어 마켓 랠리'가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긴축 조정 이후엔 반드시 반등 랠리가 뒤따랐고, 2022년에 이런 장세가 펼쳐질 거란 전망이다.

      베어 마켓 랠리는 지난 2020년~2021년 사이의 이익 전망치 폭등에 따른 주가 상승과는 다르다. 이익 전망치는 횡보할 가능성이 크지만, 대신 PER로 대표되는 밸류에이션이 확장되며 주가가 재평가를 받는 구조를 띈다.

      공통적으로 지목되는 핵심 변수는 중국이다. 중국은 코로나19 이후에도 경기 부양에 다소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KB증권에 따르면 중국의 올 3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5% 아래로 떨어졌다. 시진핑 주석의 연임과 함께 경기 확장정책이 진행될 거란 예상이 많다.

      중국의 확장정책은 국내 증시에 우호적으로 작용해왔다. 하이투자증권은 "올해 국내 증시가 약세를 보인 것은 중국 리스크가 국내 증시와 환율에 반영되었기 때문"이라며 "중국 정책이 완화적으로 전환된다면 PER 할인이 멈출 것으로 판단된다"라고 내다봤다.

      다만 최근 다시 급등하고 있는 달러 가치는 외국인 수급과 이어지는 이슈다. 10월 이후 약세를 보였던 달러인덱스는 최근 2년만에 전 고점 갱신을 시도하고 있다. 미국은 여전히 양적완화를 지속하고 있지만 테이퍼링이 시작됐고, 영국과 호주가 예상과는 달리 기준금리를 동결하며 달러 가치가 상대적인 강세를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한 중견 자산운용사 주식운용본부장은 "반도체를 비롯해 2차전지ㆍ콘텐츠ㆍ바이오 등으로 수출 품목이 다변화되며 국내 산업 체질이 개선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며 "수출 비중 등의 이유로 중국과 한 덩어리로 묶여 저평가받고 있는 현 상황이 개선된다면 내년 이익 전망치 둔화에도 지수는 오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