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투대박' 노리고 퇴사하는 매니저…운용사엔 주니어 '텅텅'
입력 2021.11.24 07:00
    이미 퇴사한 매니저들 '개투'로 100억 버는데
    낮은 연봉에 연봉인상률·성과급도 낮아
    내규상 주식투자 힘드니 돈 굴릴 기회도 없어
    회사에서 주니어를 '소모품' 정도로 생각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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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최근 '개투'(개인투자)를 하기 위해 퇴사하는 운용사 펀드매니저(이하 매니저)가 늘고 있다. 증권사에 비해 낮은 월급과 성과에 못 미치는 인센티브에 불만을 가지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이미 퇴사한 매니저가 주식으로 대박을 터트리는 사례가 늘어나자 '너도나도' 퇴사 행렬에 동참하는 분위기도 형성되고 있다. 이러다보니 주니어 매니저들의 집단퇴사로 허리 기수가 사라진 운용사들도 나오고 있다. 

      16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11월 초 기준 매니저는 703명이 등록됐으며 616명이 말소됐다. 올해 1월에 등록(430명)·말소(466명)된 매니저 수보다 각각 63%·32% 많다. 운용업계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많이 나가니 많이 뽑는다'는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주니어 매니저의 퇴사가 이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돈'으로 꼽힌다. 특히 이들은 최근 각계에서 터지는 '대박 스토리'에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본인들의 월급과 성과급에 불만을 가진 경우가 많다. 

      한 운용사 매니저는 "규모가 작은 운용사일수록 초봉 4000만원이 안되는 매니저가 생각보다 많다. 오너 경영하는 운용사의 경우 오너가 연봉을 안 올려주기도 한다"며 "업계 전반적으로 매니저는 승진하더라도 연봉인상률이 높지 않다"고 밝혔다. 

      다른 운용사 매니저는 "담당 섹터에서 '아웃퍼폼' 하더라도 성과급이 적어 낮은 연봉을 메울 수도 없다. 공모 운용사의 경우 성과가 아닌 연차별로 주는 곳도 있어 주니어는 얼마 받지도 못한다"며 "이마저도 한 번에 받는 게 아니라 3년에 나눠 받아야 하고 세금을 떼고 나면 손에 쥐는 건 얼마 안 된다"고 말했다.

    • 내부규정상 매니저는 주식투자가 금지돼있다는 점도 매니저의 퇴사에 영향을 끼쳤다. 즉 연봉과 인센티브가 적은데 자산을 불려갈 수단마저 막힌 상황이라는 것. 반면, 증권사 직원은 최대 투자금액·회전율 등의 제약은 있지만, 애널리스트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주식 투자를 할 수 있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운용사 펀드에서 담은 종목을 매니저가 개인적으로 사서 주가가 오를 경우 금감원에서 회사에 소명하라는 지시가 내려온다"며 "하우스별로 세부 내용은 상이하지만, 회사는 피곤한 일을 만들기 싫어하니 사규로 투자를 금지하고 있다. 해외주식 투자가 가능한 경우에도 컴플라이언스팀에 사전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전했다.

      코로나 이후 개인투자로 '대박'을 터뜨린 퇴사자를 보며 느낀 상대적 박탈감도 매니저 이탈에 한몫했다. 한 운용사 매니저는 "작년과 올해 장이 너무 좋았다. 주위 퇴사자를 보면 2~3배 수익은 기본이고 100억원을 번 경우도 꽤 있다"며 "먼저 나간 매니저가 잘되는 모습을 보자 배 아파서 너도나도 나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시니어 매니저를 향한 주니어 매니저의 불만도 상당하다. 시니어는 주니어를 키우려고 생각하기보다 퇴사하면 새로 데려오면 되는 '소모품'으로 생각한다는 이유에서다. 

      한 운용사 매니저는 "시니어는 주니어가 열심히 하고 잘할 수 있게 키우려는 장기적인 안목이 있는 게 아니라, 주니어가 미팅과 탐방을 나가 정리한 자료만 받아먹으려 한다"며 "본인의 힘으로 운용보고서에 들어갈 데이터를 만들고, 포트폴리오를 운용해나갈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고 밝혔다.

      다른 운용사 매니저는 "실력이 좋은 주니어에게 돈으로 보상해주기보다는 '펀드를 더 굴리게 해준다'는 등 '명예'로 퉁치려고 한다"며 "그런데 매니저는 돈과 명예를 함께 추구하러 온 사람이 많기 때문에 이해관계가 맞지 않는다"고 전했다.

      이러한 현상은 공모펀드의 침체로 운용사의 수익성이 떨어진 영향이 크다. 개인 투자자들이 직접투자를 선호하자 국내 주식형 공모펀드 설정액은 작년 3월 26일 59조7683억원에서 지난 15일 41조3427억원으로 31%가량 빠졌다. 이외에도 운용사의 상장지수펀드(ETF) 최저보수 경쟁에 업계 내부에서는 자사 펀드가 잠식당한다는 평가가 존재할 만큼 공모펀드의 입지는 줄어들고 있다.

      한 운용사 매니저는 "최근 증시가 안 좋다는 얘기가 있지만, 게임·엔터 등 되는 섹터는 잘 나간다. 주도주를 잘 선택할 능력을 갖춘 사람은 지금 퇴사해도 돈을 버는 데 전혀 지장이 없는 상황"이라며 "매니저 이탈 현상은 최근 몇 년 이어져 왔으며 앞으로도 지속될 것 같다"고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