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피탈社들은 왜 금융위원장에게 '읍소'했을까
입력 2021.11.24 07:00
    금융위에 규제 완화 및 부수 업무 확대 요청
    자동차금융 시장점유율 떨어지며 신성장 동력 필요
    금융당국 “캐피탈사와 카드사 직접 비교 어려워”
    • 캐피탈사들이 금융위원장과 대면한 자리에서 신사업 규제 완화를 강도높게 요구했다. '버려진 운동장'이라는 수식어까지 사용했다. 요청의 '톤'과 이후 행동 등이 상당히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이전까지의 간담회에서는 대체로 당국의 정책에 순응하는 모습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그동안 캐피탈사는 은행보다 조달에 불리하고, 카드사보다는 소비자 접점이 적다는 부담을 안고 있었다. 최근 수년간 타 업권에서 자동차할부 시장 등 기존 캐피탈사의 '텃밭'으로 밀고 들어오며 쌓인 불만이 이번에 터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금융당국은 규제 완화에 무게를 두긴 했지만, 아직 가시적인 실행 방안은 마련되지 않았다. 캐피탈사의 주장에도 일정부분 동의하기 어렵다는 모습도 보였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지난 17일 캐피탈업계와의 취임 후 첫 업계간담회를 진행했다. 이날 자리에는 현대캐피탈 목진원 대표를 비롯해 고정욱 롯데캐피탈 대표, 전영삼 산은캐피탈 대표, 정운진 신한캐피탈 대표, 윤규선 하나캐피탈 대표, 황수남 KB캐피탈 대표, 최현숙 IBK 캐피탈 대표, 김지원 아주아이비투자 등이 참석했다. 

      장관급과 CEO가 만나는 정무적인 자리인 만큼, 통상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업계의 애로사항을 전달하고 정책의 방향성을 논의하는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 날은 다소 달랐다는 전언이다. 사실상 '읍소'에 가까운 자리였다는 평가다.

      캐피탈 업계가 고 위원장과 첫 만남에서부터 ‘관심과 지원’을 요구한 까닭은 '소외감'에 있다. 캐피탈사는 그간 핵심 업무 영역을 타 금융사에게 계속 빼앗겨왔는데, 신사업 허가는 제도 미비로 빠르게 허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날 요구사항도 부수업무 확대에 주로 초점이 맞춰졌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카드사가 캐피탈사의 할부리스 시장으로 적극적으로 진출하다보니 경쟁이 치열해지고 수익성이 낮아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자동차 할부금융 시장만으로는 영업에 한계가 있으니 캐피탈사도 사업영역을 넓혀달라는 취지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 국내 캐피탈사는 양호한 자산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다만, 경상적인 이익창출력은 점진적으로 저하되는 추세다.

      나이스신용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현대캐피탈을 제외한 25개의 캐피탈사의 운용이익률 추이를 살펴본 결과 지난 2015년 6.7%에서 올해 6월 말 기준 5.8%로 하락했다. 이는 캐피탈사의 주력 자산이었던 할부리스 부문 중 자동차금융 시장점유율이 하락하며 부진한 실적을 보여서다.

      캐피탈사를 둘러싼 잠재적 영업환경 역시 악화되고 있다. 한국신용평가 역시 올해 3분기부터 금리인상 기조로 전환됨에 따라 캐피탈사의 조달환경이 비우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캐피탈사는 업종 특성상 수신기반이 없어 회사채 조달 비중이 높다. 이에 시장금리 변동성에 타격을 크게 입는 편인데, 최근 금융시장 변동성이 큰 만큼 앞으로 자금 조달비용 부담이 커질 전망이라는 것이다.

      이에 캐피탈사들은 핵심사업 성장성 정체를 보완할 수 있는 신규 사업영역 확대가 절실한 상황이다. 그러나 막상 라이선스 등 문제로 신사업 진출 등에 어려움이 크다는 게 캐피탈사의 입장이다. 

      한 캐피탈 관계자는 “캐피털사는 상대적으로 라이선스 문턱이 높고, 규제 또한 까다롭다는 점, 본업 외 일부 마이데이터 영역이 허용됐으나, 오픈뱅킹과 종합지급결제업이 가로막혀 있어 카드사 대비 형평성에 어긋나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여기에 ▲금융소비자보호법 ▲가계부채 총량규제 ▲소상공인·개인 상환유예 적용 등의 엄격한 규제도 캐피탈사에 부담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버려진 운동장'이라는 수사 역시 이런 소외감에서 비롯됐다.

      다만 금융당국은 캐피탈사의 이런 입장이 다소 과장됐다고 판단하는 기류가 아직은 더 강하다. 한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카드사와 캐피탈사는 직접 비교가 어려운데, 카드업는 지급결제 기능이 있고 캐피탈사는 신사업 투자쪽으로 좀 더 유리하기 때문"이라며 "이번 간담회를 통해 캐피탈사에 풀어주기로 한 규제도 많다"고 밝혔다.

      실제로 금융당국은 캐피탈사의 보험대리업 진출 허용과 부동산 리스업 업무 확대방안을 검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금융당국의 보험대리업 진출 허용으로 캐피탈사는 숙원 사업을 달성했다는 평이다. 현재 여신전문금융업법은 캐피탈사도 GA 업무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보험업법은 캐피탈사를 명시하지 않고 있어 GA 업무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여신업계는 꾸준히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금융당국에 여러 차례 건의했으나 수년째 답보 상태였었다.  

      다만 부동산리스업 업무의 경우 국내에서도 생소한 개념이라 캐피탈사와 얼마나 시너지를 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한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부동산 리스업무는 국내에서 이뤄지고 있던 상황이 아니라서 개별 캐피탈사가 이걸 통해서 얼마나 이익을 얻을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며 “캐피탈사가 자동차를 구매해서 소비자한테 리스 서비스를 제공하듯이 부동산을 운용할텐데, 어떻게 매출에 기여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