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사에 '발권력' 주니 튀어나온 P2E...암호화폐 광풍에 '본질' 잊었다
입력 2021.12.14 07:00
    시총 15兆 NC소프트, NFT 언급만 했는데도 상한가
    베트남 P2E 게임사는 1년 만에 2兆 매출...게임의 미래?
    유저 간 거래에 게임사가 자체 발행 화폐로 개입ㆍ중계
    국내선 불법...게임 본질 흐리고 수명 단축 시킬 우려도
    • 11월 11일, 시가총액 15조원의 초대형주 NC소프트가 상한가를 기록한 것은 증권가에 일대 사건이었다. 비결은 NFT(대체 불가 토큰)이었다. NFT 게임을 출시한다는 계획만으로 폭발적 매수세가 몰렸다. 불과 3개월만에 텐베거(ten-begger; 주가가 10배 오른 주식)가 된 '위메이드'의 영향이었다.

      위메이드가 텐베거가 된 건 모바일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미르4'의 덕분이었다. 위메이드는 미르4에 NFT를 기반으로 한 'P2E'(Play to Earn)시스템을 적용했다. 유저가 게임 내에서 특정 아이템을 캐거나 생산해내면 게임사에서 이를 자사에서 발행한 암호화폐(코인)로 교환해주는 방식이다. 당연히 이 코인은 거래소에서 원화나 달러화 등 법정화폐로 환전할 수 있다.

      이 방식을 통해 미르4는 글로벌 동시 접속자 수가 130만명에 달하는 '초대박 게임'이 됐다. 2018년 글로벌 히트한 크래프톤의 '플레이어언노운즈 배틀그라운드'(이하 배그)의 역대 최고 동시 접속자 수가 130만명 안팎이었다. 

      미르4와 함께 P2E 게임의 1세대로 꼽히는 '엑시 인피니티'는 올해 1월 월간 매출액이 1억원에 불과했지만, 현 시점까지 올해 연간 매출액이 2조원을 넘어섰다. 이 게임 개발사인 베트남 스타트업 '스카이마비스'는 최근 3조5000억원 가치로 시리즈B 펀딩에도 성공했다. 베트남 현지 언론에 따르면 엑시인피니티 유저의 한달 평균 수익은 원화 가치로 40만~50만원에 달하며, 이는 베트남 근로자 평균 임금(2020년 기준 약 35만원)보다 높은 수준이다.

      유저가 게임 내에서 얻거나 만들어낸 아이템에 게임회사가 보상을 해주는 건 새로운 모델이 아니다. 여기에 NFT를 비롯한 블록체인 생태계가 끼어들며 판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블록체인-암호화폐-NFT-P2E는 '한 몸'으로 연결돼 있다는 게 투자업계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핵심은 게임회사가 중앙은행 같은 '발권력'을 손에 넣었다는 점이다. 

      기존에도 게임 내 아이템을 '현금화'하는 시장은 존재했다. 다만 불법과 편법 사이의 경계에 위치한 사설 거래소에서 거래가 이뤄졌다. 구매한 아이템이 해킹이나 복제로 만들어진 불량품일 위험도 존재했다. 유저 간 거래를 완전히 막을 순 없었기에, 게임회사를 이를 사실상 방임해왔다.

      블록체인을 통해 발권력을 얻은 게임회사는 이제 이런 '현금화 수요'를 직접 관할할 수 있게 됐다. 유저가 생산한 아이템에 게임회사는 NFT로 '디지털 공인 인증서'를 부여한다. 유저는 이를 게임회사나 다른 유저에게 코인을 받고 판매한다. 게임회사의 코인이 거래의 매개체인 '통화'가 되는 셈이다. 이 코인은 거래소에서 다른 투자자에게 판매해 법정화폐로 바꿀 수 있다. P2E의 핵심이다.

      이 과정에서 게임회사는 손해볼 것이 없다는 평가다. 어차피 유저에게 지급하는 코인은 본인들이 발행한 '가상'의 화폐다. 코인이 활발히 거래돼 가치가 오르면 게임회사가 보유한 코인의 가치도 오른다. 

      자사 게임을 중심으로 한 P2E 생태계 활성화 비용 역시 코인으로 지급하면 된다. 실제 위메이드가 발행한 코인 '위믹스'의 백서를 보면, 총 10억개의 위믹스 코인 중 10%는 초기 정착을 위한 프라이빗 투자에, 7%는 마케팅에, 9%는 생태계에 기여한 구성원에게 지급한다고 쓰여있다.

      게임회사 입장에서 P2E란 유저를 끌어들이는 강력한 마케팅의 수단이지만, 막상 실제 현금이 들어가는 비용은 거의 없는 '땅 짚고 헤엄치기'식 장사인 셈이다. 국내 게임사들이 NFT나 P2E를 입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주가가 폭등한 배경이다.

      다만 이는 현재 국내법으로는 용인되지 않는다. 위메이드 역시 미르4의 글로벌 서버에서만 P2E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바다이야기' 트라우마로 인해 합법화 과정 역시 지난할 것으로 예상된다. NFT나 P2E가 결국 '구호'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지점이다.

      위정현 한국게임학회 회장(중앙대 경영학부 교수)은 "NFT, P2E 등이 합법화되는 순간 소셜카지노 등 사행성 게임들이 밀고 들어와 '환전성'을 강조할 것이다"라며 "냉정하게 말하면 지금의 P2E 게임이란 '리니지'같은 게임의 매크로 작업장(불법 프로그램 등의 기계적 반복를 통해 얻은 게임의 화폐를 사설 거래소에서 현금화하는 사업체)과 똑같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즐기기 위한 게임'이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한 게임'이라는 한계도 비교적 명확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비슷한 류의 게임이 앞으로도 계속 출시될텐데, 게임의 재미가 받쳐주지 않는다면 수급의 균형이 무너지며 코인 가격이 하락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코인 시세 하락은 수익성을 낮춰 결국 유저 이탈로 이어지게 된다.

      실제 미르4의 경우 '레벨 40'부터 코인으로 환전이 가능해지는데, 대다수의 유저가 레벨 40 이후 콘텐츠를 즐기지 않고 코인으로 교환할 수 있는 아이템 채집에 열중하는 모습이 관측되고 있다. 신규 일반 유저들의 진입도 제한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게임업계에선 P2E가 오히려 게임 수명 단축이나 유저 수의 급격한 변화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게임은 '재미'를 위해 존재한다는 '본질'이 흐려질 거라는 비판도 호응을 얻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글로벌 최대 게임 유통 플랫폼인 '스팀'은 최근 NFT 연관 게임의 입점을 금지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위메이드 역시 이 같은 상황을 인지하고 있다. 위메이드 관계자는 "벌기 위한 플레이(P2E)가 아닌, P&E(즐기고, 번다)를 지향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