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SAMSUNG’ 간판 내거는 삼성전자, 변신 어디까지?
입력 2021.12.16 07:00
    訪美 이재용 부회장, '위기' 언급
    기대 이상의 대대적 개편 단행
    부품과 세트로 사업 축 간결화
    비메모리 M&A 기대감 크지만
    현시점 합리적 매물 없어 고심
    경쟁사 대비 주가 관리 어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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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한국 주식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영향력은 여전히 막강하다. 최근 주가 하락과 지지부진한 횡보로 ‘7만전자’라는 오명까지 얻었지만 삼성전자가 코스피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가 넘는다. 삼성그룹주, 삼성전자 연관 금융상품, 동종산업의 경쟁사 주가까지 포함하면 그 비중이 더 커지다보니 삼성전자 안팎의 사안들은 모두 ‘초미’의 관심사다.

      오너가 상속 이슈, 경영진 인사 및 조직개편, 투자 계획, 글로벌 경쟁사들의 움직임, 국가간 역학 관계 등 계산기를 두드려봐야 할 문제는 한 두가지가 아니다. 지난 8월, 가석방 출소한 이후 ‘뉴삼성’이라는 화두를 던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최근 두달 간 쉴 틈 없는 해외 출장 일정을 이어가고 있다. 대대적인 변화를 예고한 삼성전자, 내년에 정말 ‘새롭게’ 달라질 수 있을까. 달라진다면 얼마나 달라질까.

      위기론에 꺼내든 JY의 카드는 대대적 조직개편

      ‘뉴삼성’을 언급하면서 인사 및 조직 개편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지금 당장 변화의 의지를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카드다.

      당초 시장에선 변화 보단 안정을, 그래서 기존 경영진의 유임을 점쳤다. 그런데 60대 대표이사였던 김기남(DS), 김현석(CE), 고동진(IM) 3인은 모두 물러나고 기존 가전(CE)·스마트폰(IM)·반도체(DS)·디스플레이(DP) 등 4개의 사업부문은 세트(CE·IM)와 부품(DS·DP)으로 축소 재편됐다. 세트장과 부품장은 50대 대표이사 한종희 부회장, 경계현 사장이 맡게 됐다.

    • 일단 시장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신임 CEO 2명이 기술 이해도가 높은 개발실장 출신의 엔지니어들로 향후 기술 리더십 확보가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CE와 IM을 통합한 세트 부문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메타버스 같은 신성장 분야 성장 과정에서 IoT(사물인터넷)가 더욱 중요해질텐데 가전과 무선통신의 통합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란 평이다. 외국계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는 이를 두고 “의미있는 변화라고 믿는다”며 “보다 빠른 의사 결정을 내리고 소프트웨어 역량을 강화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경영진 교체와 세트 부문 통합이 거시적 변화를 상징한다면 인사제도 개편은 보다 세밀한 변화를 꾀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부사장-전무 직급을 통합해 부사장 이하 직급 체계를 부사장-상무 2단계로 단순화하는 등 능력 중심의 수평적 조직 문화를 구축하겠다는 게 삼성전자의 설명이다. 실제로 이번 임원인사에서 198명의 승진자가 있었고, 30대 상무와 40대 부사장들이 대거 등장했다.

      효과에 대해선 반신반의하는 분위기다. 호칭 단순화, 직급체계 축소, 동료 인사평가 등은 다른 IT 기업에서도 이미 하고 있어 그리 신선하지 않고, 거대한 대기업 조직 체계에서 이런 문화가 자리잡는 데는 예상보다 훨씬 긴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것이다. 직원들의 이탈 가능성은 현 시점에서 가장 신경써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실제로 사내에선 이번 인사제도 개편안 진행 과정을 두고 말들이 많이 나왔다. 개편안 ‘동의’ 과정의 공정성 문제와 파이를 키우는 게 아닌, 파이의 조각 수만 더 늘리는 것 아니냐는 불만들이 감지된다. 

      재계 관계자는 “철저한 성과주의를 지향하겠다는 건데 그 과정에서 임원이 눈 앞에 있는 과장, 차장 등 이른바 ‘낀 세대’들은 경쟁에서 밀릴 위기감을 느끼고, 보다 파격적인 변화를 원하는 MZ세대 직원들은 성에 차지 않는 개편”이라며 “글로벌 인재들을 끊임없이 수혈하면서 동시에 전체 직원들을 어떻게 달래고 갈 지가 경영진 교체보다 더 중요한 문제”라고 설명했다.

      새로울 것 없는 ‘뉴삼성’의 신사업…결국 비메모리 M&A?

      주가는 지지부진 하지만, 사업적으로 보면 삼성전자는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도 선전 그 이상의 성적표를 보여줬다. 지난 3분기 매출은 분기 기준으로 70조원을 처음으로 돌파했고, 올해 연간 매출은 역대 최고치인 2018년 243조원을 크게 앞지를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매출과 영업이익도 우상향하고 있다.

      IM부문은 시장 포화 상태에 다다랐지만 여전히 시장점유율은 견고한 편이고, CE부문은 TV뿐 아니라 생활가전까지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다. IM-CE 통합은 두 부문의 추가 성장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동안 같은 카테고리에 있으면서도 두 부문으로 나눠져 소프트웨어 통일성 등이 떨어지는 문제점이 있었는데 이번 통합으로 해결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IT기업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비스포크 홈(BESPOKE HOME)’에서 강조하는 것처럼 이젠 가전과 통신이 하나가 되는 맞춤형 홈 솔루션이 대세가 되고 있다”며 “이런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선 두 사업의 통합은 당연한 일이고 오히려 너무 늦은 감이 있다”고 평했다.

      신사업이라고 내세울 만한 마땅한 카드는 보이지 않는다. 기존 산업의 효율성을 높인다든지, 기존 산업을 중심으로 조금씩 살을 붙이고, 산업간 결합을 통한 업그레이드, 아니면 투자 규모를 늘리는 정도다. 그렇다보니 시장은 삼성전자가 비메모리 M&A를 통한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을지에만 주목하고 있다.

      최근 반도체업계는 메모리 부문의 다운사이클 우려에도 견조한 수요량과 비메모리 부문의 장밋빛 전망으로 훈풍이 불고 있지만 삼성전자는 웃을 수 없다. 이재용 부회장은 2019년 ‘시스템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했지만 기술력이나 시장점유율에선 좀처럼 간격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에선 대만의 TSMC가 5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데 삼성전자는 20%에 못미친다. 두 회사 간 점유율 격차는 오히려 더 벌어지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의 미국 출장에서 170억달러 규모의 미국 제2 파운드리 공장 건설 계획을 확정했지만 인텔 같은 경쟁사들에 비하면 속도가 더디다.

    • 삼성전자는 지난해 컨퍼런스콜에서 3년 내 의미 있는 규모의 M&A 추진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이번 조직개편과 인사를 통해 어떤 딜(Deal)이라도 이뤄질 것이라는 기대감은 더 커졌다.

      DS부문을 맡게 된 경계현 사장은 대표적인 메모리 전문가다. 메모리 부문은 비메모리 투자를 위한 안정적 현금 창출고 역할을 하는데, 만약 이게 부진하다면 삼성전자의 비전 2030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경 사장의 선임을 메모리 사업 지배력을 더욱 공고히 함으로써 현금창출력을 유지 또는 높이겠다는 의지로 해석한다.

      비메모리 M&A는 사업지원TF가 주도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부회장으로 승진한 정현호 사업지원TF(태스크포스)장은 전략기획실, 미래전략실 등을 거친 전략기획통이다. 사업지원TF가 전면에 드러나진 않겠지만 부회장급으로 격상된만큼 M&A에서의 영향력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비메모리 분야에서 경쟁이 치열한만큼 매물 수가 많지가 않고, 가격 역시 고점을 찍고 있는 상황이라 협상테이블에서 셀러(Seller)가 우위를 쥘 수 있다는 점은 부담이다. 인수 후 단기간 내 효과를 내지 못하면 오히려 주가에 부정적일 수도 있다.

      ‘NEW’ 삼성전자, ‘10만전자’ 보다 내부관리 더 중요 

      파격이라고 불리는 이번 세대교체와 조직 개편을 두고 부정적인 반응이 없는 건 아니다. 진작 했어야 했는데 너무 늦었다는 평가, 이재용 부회장이 내건 ‘창의’가 이번 개편만으로 가능하겠냐는 의심 등등이다. 현 시점에서 ‘뉴삼성’을 앞세운 배경이 뚜렷하지 않다는 점, 그 내용이 그리 새롭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한다.

      김기남 삼성종합기술원 회장은 여전히 회사에 남아있고, 두 명의 신임 CEO도 이전 CEO들과 나이 차가 크지 않아 진정한 세대 교체라고 평가하기엔 무리가 있다. 또 이건희 전 회장 시절 이미 30대 임원들이 등장했던 만큼 이번 임원 인사가 파격적이라고 하기엔 아쉬울 수도 있다.

      코로나 상황에서도 선방했고, 비메모리 경쟁 격화도 해묵은 이슈인데 굳이 이 시점에서 이 부회장이 ‘뉴삼성’을 꺼내들고 회사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의도, ‘위기감’ 이외의 명확한 메시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의문이다. 일각에선 큰 변수로 부상한 노동조합에 대한 불안감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친 것 아니냐고 보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당장 마땅한 주가부양 카드가 없는 상황에서 조직 개편을 통한 변화의 시그널을 주는 것일 수도 있다.

      올해 삼성전자의 최고점은 9만6800원으로 ‘10만전자’ 희망고문만 이어지고 있다. TSMC, 인텔 주가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지만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엔비디아, AMD 등 글로벌 IT기업들이 급격한 우상향을 보여주는 것과 비교하면 삼성전자의 주가가 답답하긴 하다.

      내년 반도체 수급 상황, 미중 갈등 양상 등 대외 환경에 실적이 연동될 수밖에 없어 주가를 더 끌어올리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그럴만한 카드를 계속 꺼내야 한다. 인사 및 조직 개편으로 변화 가능성을 시사하고, ‘의미있는’ M&A가 성사되면 흐름을 바꿀 수는 있을 것이다. 물론 M&A가 주가 상승에 긍정적으로만 작용할 지는 확답을 내기 어렵다.

      확실한 건 젊은 임원들을 자리에 앉힌다고 해서 미래성장동력 발굴이 알아서 되는 것도, 급변하는 IT 시장에 적극 대응할 수 있게 되는 것도 아니다. 50년간 구축된 수직 구조의 조직 문화가 단숨에 평평해지길 기대하는 것은 욕심이다. 그 과정에서 회사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게 될 테고, 조직은 흔들린다. 이재용 부회장이 얘기한 ‘위기’는 밖이 아닌, 안에서 시작될 지도 모른다. 주주들 입장에선 서운할 지도 모르겠지만 ‘NEW’라는 간판을 달게 될 삼성전자의 목표가 ‘10만전자’가 돼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