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그룹 지주사들의 고민은 여전히 '주가’ 또 ‘주가’
입력 2021.12.16 07:00
    코로나 이전으로 회기한 코스피
    주가 상승은 경영진 KPI에 적극 반영
    결국은 주가로 평가받는 대기업들
    지배구조·사업재편 앞둔 기업들 주가 관리 ’사활’
    대세 상승장에 ‘실적’보단 ‘신사업’에 주목도 높아
    가상화폐·NFT 등 모호한 사업에 ‘샛길’ 빠질 우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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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국내 증시는 지난 2년간 팬데믹을 거치며 부침을 겪었다. 실적이 안정적인 기업의 주가는 무겁고, 실체가 모호한 신사업을 꺼내든 기업의 주가엔 불이 붙으니 기업들의 혼란도 컸다. 특히 유동성이 뒷받침된 강력한 대세 상승장에도 편승하지 못한 기업들의 위기감이 고조됐다.

      최근 주요 기업의 주가 흐름은 ‘소비자’ 또는 ‘소비자와 일부 동일시되는 투자자’의 현재 관심사를 반영함과 동시에 미래 기업가치도 대변한다. '코로나 반사이익'에 대한 기대는 저물었다. 앞으론 과거보다 똑똑해진 다수의 기관, '개인투자자들에게 기업의 전망과 비전을 얼마나 잘 어필하느냐', 그리고 '재무제표 상의 현재 숫자를 초월해 미래 가치를 설명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 화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주가가 기업의 미래 생존 가능성을 표상하게 됨에 따라 각 기업과 경영진의 '주가 부양' 고민은 더 커지게 됐다. 주요 그룹사 경영진의 성과평가지표(KPI)에 주가가 중요 항목으로 반영되고 있다. 각 그룹사들의 지배구조·사업적 구조개편 또는 신사업 추진이 가속화하는 과정에서 유의미한 주가 상승은 투자자의 암묵적 ‘지지’와 ‘동의’를 이끌어 낸 것으로 평가 받을 여지가 크다. 결국 실적이 뒷받침돼야 하겠지만 최근 대기업 계열사의 분할·합병과 유니콘 기업 등의 상장 과정에선 ‘미래가치’가 ‘숫자’에 우선하는 경우를 종종 찾아볼 수 있었다.

      국내 대기업 가운데 주가 흐름을 경영진 KPI에 가장 적극 반영하고 있는 곳은 SK그룹이다. 최근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등 다양한 유·무형 사회적 가치도 중시하지만 경영진들의 최대 관심사는 역시 연초 대비 연말 주가가 얼마나 오르느냐다.

      SK그룹은 올해  초 SK㈜의 시가총액을 2025년까지 현재의 7배 수준인 140조원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를 위해선 계열사들의 가치 상승도 중요하다 보니, 각 계열사들은 경쟁적으로 파이낸셜스토리를 써내려가고 있다. 올해 인적분할된 SK텔레콤과 SK스퀘어는 '메타버스' 색채 더하기에 분주하다. SK스퀘어의 경우 각 자회사의 기업공개(IPO) 성과가 중요하다.

      정의선 회장 체제가 공고해진 현대차그룹은 지난달 5000억원 규모 자사주 매입 계획을 밝혔다. 2005년 이후 16년 만에 역대 최대 규모다. 대규모 자사주 매입을 통해 적극적인 주주환원에 나서겠단 의지로 비쳐진다. 현대차그룹의 숙원인 지배구조 개편을 완료하기 위해선 일부 계열사들의 주가 부양이 필요하다. 정의선 회장이 승계 자금을 마련해 지분을 오롯이 물려받으려면, 정 회장이 주요 주주인 기업들의 성장 스토리를 만드는 작업이 수반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현대글로비스는 수소 및 플랫폼 사업 등 기존 물류회사에서 벗어나려는 다각화 전략을 펼치고 있다. 정 회장이 2대주주인 현대엔지니어링 또한 증시 입성을 앞두고 있다.

      현대차뿐 아니라 네이버, KT&G, 한샘 등도 자사주 매입 또는 소각에 동참하고 있다. 코스피가 박스권에 갖힌 상황에서 대규모 자사주 매입을 통해 주가를 부양하겠단 의지로 해석할 수 있다.

      포스코그룹은 지주회사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분기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고, 이익잉여금만 50조원에 달하는 초우량기업이지만 국내 시가총액 순위는 10위권 밖이다. 철광 산업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투자자들이 많아 주가 상승 여력이 크지 않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지주사 전환을 택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회사는 올해 들어 공격적인 탄소배출 감축 목표를 제시하고, 2차전지 소재 및 수소 등 신사업에 공을 들이고 있는데 이는 결국 투자자들의 이목을 끌어오기 위함이다. 지주사 전환을 계기로 사업가치를 증시에서 제대로 인정받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최근 KT그룹은 IDC·클라우드 사업부 분사 및 투자 유치를 추진하고 있는데, 이 또한 포스코의 행보와 비슷한 맥락으로 풀이된다.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지난달 2023년까지 10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회장은 한동안 대외 행보를 자제했지만, 최근엔 적극적인 경영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올해 과거 10년치 그룹 시가총액 추이를 보고 받은 후 그룹 미래 전략을 고심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CJ㈜의 주가는 수년 전 30만원을 넘나 들었으나 현재는 10년내 최저점에 가까운 상태다. 그룹의 주력인 CJ제일제당·CJ대한통운·CJ ENM도 새로운 성장동력을 모색해야 한다. CJ ENM은 최근 미국 제작사 엔데버를 인수하며 화제를 모았는데, 콘텐츠 부문을 물적분할하기로 하며 주가는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올 한해 주식시장을 뜨겁게 달궜던 기업중 하나는 LG화학이다. LG에너지솔루션(LG엔솔)의 분할 과정의 적합성을 두고 투자자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펼쳐졌고 주가 역시 출렁였다. 내년 초 한국 증시의 가장 큰 이벤트 또한 약 9조원 규모의 LG엔솔의 공모가 될 것으로 보인다.

      유통기업의 라이벌 롯데그룹과 신세계그룹 역시 주가 흐름에 경영진들이 상당히 민감한 것으로 전해진다. 두 기업은 올해 가장 큰 규모 M&A로 기록된 이베이코리아 인수전에서 맞붙었다. 신세계는 이베이코리아, 더블유컨셉 등을 인수하고 휴젤도 살피는 등 경영권 거래에 주력했다면 롯데그룹은 한샘, 중고나라 등 소수지분 투자 사례가 많았다. 전략은 다소 갈렸지만 두 그룹 모두 어떻게 시너지 효과를 내느냐가 주가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신세계와 롯데는 중요한 IPO 과제도 남아 있다. 신세계는 쓱닷컴 기업가치에 온 신경이 몰려 있고, 롯데는 호텔롯데 상장을 완료해야 지배구조 개편의 마침표가 찍어진다.

      국내 기업들의 밸류에이션(기업가치평가)은 이미 실적과 영업이익, 상각전영업이익(EBITDA), 주가수익배율(PER)과 같은 전통적인 평가 방식에서 벗어나는 양상을 띠고 있다. 물론 기업의 펀더멘털을 대표하는 ‘실적’이 단기간의 증시 이벤트로 여전히 작용하겠지만 코로나 상황에서 확인했듯 무수히 많은 변수들로 인해 이를 상쇄할 수 있는 장기적 ‘비전’을 보여줘야하는게 더욱 중요한 상황이 조성되고 있다.

      장기적이지만 구체적이고 뚜렷한 전략을 투자자들에게 제시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최근엔 다소 실체가 모호한 신사업을 내세워 투자자들의 이목을 끌고, 이를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최우선수단으로 삼고 있는 모습도 종종 찾아 볼 수 있다. 대기업들의 자본 투자 과정에선 이종산업에 대한 투자, IT·플랫폼·가상화폐 또는 대체불가토큰(NFT) 사업과 같은 최근 글로벌 트렌드를 따라가려는 움직임도 나타나지만, 자칫 모호한 방향성과 구체적 전략 부재로 인한 기업의 정체성마저 잃어버릴 수 있단 우려도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