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 호황 대가(?) 톡톡히 치르는 현대중공업
입력 2021.12.22 07:00
    취재노트
    최근 통상임금 소송 패하며 대규모 자금 부담
    조선업 호황 상황에서 '신의칙' 적용 어려워
    LNG운반선 독주에 대우조선 M&A도 불투명
    최근 구인 본격화…과거 구조조정 사례 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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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현대중공업그룹은 조선업 호황을 누리면서도 고민이 많다. 최근 통상임금 소송에서 패하며 웬만한 경영 위기가 아니면 기업이 이기기 어렵다는 점이 드러났는데 사업이 잘 되는 현대중공업 입장에선 두고 두고 부담이 될 전망이다. 대우조선해양 M&A는 조선업 호황과 시장 점유율 상승이 맞물리며 성사 여부가 불투명하다. 조선 일손 부족으로 계열사에서 인력을 끌어오려 하는데 과거 불황기 구조조정 관련 잡음이 있었던 터라 얼마나 호응이 있을지 미지수다.

      유수의 기업들은 오랜 기간 통상임금 문제로 고심해왔다. 판례에 따르면 일정한 간격으로 계속해서 지급(정기성), 일정 조건을 달성한 모든 근로자에 지급(일률성), 성과 등 추가 조건과 무관하게 지급(고정성)하는 경우 통상임금으로 본다. 기업 입장에선 통상임금 인정 폭이 넓어지면 이를 기본으로 산정되는 각종 수당이 늘어나고 소급해서 지급할 금액도 늘어나니 부담이 커진다. 그러니 기업들은 정기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지 않았다.

      대법원은 2013년 통상임금 첫 재판에서 노동자의 추가수당 요구가 기업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면 신의칙에 위배되므로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다른 재판의 결론은 사안이나 심급마다 왔다갔다 했는데, 아시아나항공·금호타이어 등의 1심에선 신의칙이 적영되지 않아 노동자가 승소했다. 대법원은 한진중공업, 기아자동차 사건에서 근로자의 손을 들어줬고, 쌍용자동차 때는 회사의 편을 들었다. 대체로 재무구조가 악화하고 자력 생존이 어려운 기업들에 신의칙이 적용됐다.

      현대중공업 소송에서 1심에선 근로자가, 2심에선 신의칙 위배를 주장한 회사가 이겼는데 상고심 재판부는 다시 근로자 손을 들어줬다. 기존엔 ‘경영 악화 가능성’을 가장 중요하게 판단했다면 상고심에선 더 구체적으로 추가 수당의 규모나 기업의 실적 추이, 경영상 어려움을 극복할 가능성 등까지 고려해 지급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현대중공업 사건에선 2014~2015년 무렵 경영이 악화하기는 했지만 충분히 예견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조선업은 주기를 탈 뿐만 아니라 현대중공업은 글로벌 1위 조선업체로서 대응력도 경쟁사보다 우위에 있다. 회사가 보수를 소급해서 지급할 시기는 과거지만 최근의 조선업 호황도 재판부의 판단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현대중공업은 3분기까지 매출 5조8322억원, 영업손실 3195억원을 기록하고 있다. 전년 대비 매출은 줄고 영업이익은 손실전환했지만, 올해 수주 호황을 기록하고 있어 내년부터는 실적이 크게 개선될 것이란 예상이 많다. 최종 결론은 파기환송심에서 나겠지만 회사가 경영 위기 상황으로 보기 어려운 데다 향후 전망이 어둡지 않은 만큼 현대중공업의 소명에 힘이 실리긴 쉽지 않다.

      현대중공업은 대우조선해양 M&A 전망도 점점 어두워지고 있다. 2019년 초 인수 발표 후 3년이 다 돼 가지만 분위기는 점점 나빠지는 상황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핵심인 유럽 시장에서의 기업결합 승인 절차가 늦어지기도 했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결합 시 시장 지배력이 너무 높아진다는 것이다.

      매각자인 산업은행은 거래 초기 컨테이너선 분야의 시장 점유율이 너무 높다는 점을 우려했지만, 실제 유럽연합(EU)에서 문제가 된 것은 고부가가치 선박인 LNG운반선 분야다. 한국 조선 빅3가 LNG운반선 신규 수주를 싹쓸이하다시피 하며 분위기가 달라졌다. 현대중공업은 경쟁사에 기술 이전 등 계획을 제시하기도 했지만 실질적으로 점유율을 낮출만한 수단으로 보기는 어렵다.

      지금이야 수주도 잘 되고 일감도 많으니 문제될 것이 없고, 현대중공업도 조선지주사를 설립하는 등 실익이 있었다. 다만 대우조선해양 M&A가 무산되면 현대중공업도 대우조선해양도 조선업 하향기에 고행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정기선 사장 체제로 빠르게 전환하며 신사업을 구축하고 있지만, 본업의 경쟁력을 키울 기회를 놓친다면 두고두고 아쉬울 수밖에 없다.

      현대중공업그룹의 현대일렉트릭은 최근 조선 계열사로 적을 옮길 직원을 모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은 내년부터는 2015년 이후 7년 만에 생산직 정규직 채용도 재개하기로 했다. 국내 조선사 모두 수주 호황으로 일손이 부족한 터라 인력 쟁탈전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현대중공업은 지금이야 일손이 부족하지만 과거 조선업 불황기엔 인력 관리 문제로 구설수에 오른 바 있다. 수년전 그룹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일부 직원을 선정해 직무교육과 휴업을 반복했다. 주요 교육 대상자가 희망퇴직이나 이직을 거부한 직원들이 대부분인 것으로 알려지며 사실상 구조조정 아니냐는 논란이 되기도 했다. 조선업에 몸담으려는 직원이나 인력 입장에서는 현대중공업의 전적(前績)을 신경 쓸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