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감 몰아주기 규제 강화 코앞, 현대글로비스 지분 10% 향방은?
입력 2021.12.28 07:00
    30일부터 사익편취 규율 대상 ‘일가 지분 30%→20%’ 확대
    정몽구·정의선 글로비스 지분 29.99% 보유…10% 더 줄여야
    2015년 블록세일 단행…또 추진하면 글로비스 지배력 축소
    뜻 맞는 우군 FI 등판 가능성도…현대차·글로벌 PEF 윈윈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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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공정거래법 전부 개정안 시행이 한 주 앞으로 다가옴에 따라 현대차그룹 오너 일가의 현대글로비스 지분 10% 향방에 이목이 모이고 있다. 2015년처럼 블록세일로 시장에 지분을 처분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는데, 이번엔 오너 일가 지분율이 20%로 낮아진다는 부담이 있다. 

      우호 세력으로서 향후 해외 사업 확장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글로벌 사모펀드(PEF)에 지분을 매각하는 것도 유력한 선택지로 거론된다.

      작년 말 공정거래법 제정 후 40년만의 전부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현행법은 대기업집단 소속 회사가 총수 일가 지분율이 30% 이상인 상장사(비상장 20%)에 부당한 이익을 제공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는데, 개정안에선 상장사도 지분 기준이 20%로 강화된다. 개정안은 오는 30일 시행된다.

      정몽구 현대차 명예회장과 정의선 회장이 지분 29.99%를 가지고 있는 현대글로비스도 규제 대상에 새로 포함된다. 회사는 최근 신사업 확장에 공을 들이지만, 완성차의 해상운송과 자동차 부품 수출 등이 주력 사업이라 아직 그룹 계열사 의존도가 높다. 공정위의 칼날을 피하려면 오너 일가의 지분 10%를 덜어내야 한다.

    • 정몽구·정의선 부자는 2015년에도 강화된 일감 몰아주기 규제에 맞춰 대규모 지분 매각을 단행했다. 2014년말 정 명예회장과 정 회장의 현대글로비스 지분율은 43.4%였는데, 이듬해 1월 지분 13.4% 블록세일을 추진했다. 1차 블록세일 시도는 무산됐지만, 2월 2차 시도에 성공하며 지분율을 30% 미만으로 낮췄다. 오너 일가는 1조1576억원을 손에 쥐었다.

      블록세일이 가장 빨리 일감 몰아주기 사정권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다. 오너 일가가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20% 이상으로 유지한다면 공정위로부터 시정조치나 과징금(최대 매출액 10%)을 부과받을 수 있다. 30일에 곧바로 제재가 따르는 것은 아니지만 가능하다면 공정위 눈밖에 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낫다. 2015년에도 공정거래법 개정안 시행 며칠을 앞두고 블록세일이 성사됐다.

      블록세일을 추진할 때 오너 일가가 신경써야 할 부분도 있다. 2015년 블록세일 직전엔 주가가 30만원대를 오갔으나, 최근엔 17만원 수준이다. 주가와 할인 등을 감안하면 지분 10%를 팔아도 손에 쥘 수 있는 자금은 6000억원가량에 그친다. 현대모비스 지분을 더 확보해야 하는 정의선 회장 입장에선 아쉬울 수 있다. 주가가 크게 뛰지 않는 한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현대모비스에 현물 출자하려 해도 받아올 지분이 많지 않다.

      오너 일가의 지분율이 30%일 때와 20%일 때의 무게감도 다르다. 정몽구·정의선 부자가 지분 10%를 팔면 현대차와 현대차 정몽구 재단의 지분율까지 포함해도 지분율이 30%에 미치지 못한다. 개정 공정거래법에선 공익법인의 의결권도 제한하려 한다. 현대엔지니어링과 함께 정의선 체제 완성의 핵심 카드인 현대글로비스가 외부 세력의 공세를 받게 될 수도 있다.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PEF에 매각하는 방안도 고려할 만하다. 뜻이 맞는 재무적투자자(FI)를 우군으로 끌어들이면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

      현대차그룹은 FI를 유치하는 데 아주 적극적이지는 않았지만 PEF와 손을 잡은 사례는 있었다. 모건스탠리PE는 2006년 유상증자 및 구주 인수 등으로 현대로템 2대주주에 올랐고, 2014년엔 아이솔라캐피탈 등과 함께 비상장사이던 이노션 지분 30%를 인수한 바 있다. 스틱인베스트먼트도 2013년 신한금융그룹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현대차정몽구재단의 이노션 지분 10%를 인수했었다.

      현대차그룹과 밀접한 거래 관계가 없던 글로벌 수위권 PEF들도 잠재적인 투자 후보군으로 꼽힌다. KKR, 칼라일그룹, 블랙스톤 등 쟁쟁한 운용사들은 지한파 경영진들이 한국과 접점을 넓히려 노력하고 있다. 이들은 자금력이 풍부하고 크레딧펀드, 인프라펀드 등 투자 수단도 다양하다. 정의선 회장은 2019년 이규성 칼라일그룹 대표와 면담하기도 했는데, 칼라일그룹 크레딧펀드 인사들과도 관계가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그룹은 대형 투자와 M&A를 거듭하며 글로벌 시장의 큰 손으로 떠올랐는데, 글로벌 PEF를 초빙하면 해외 사업 확장 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현대차는 삼성동 GBC(글로벌 비즈니스 센터)도 건립해야 하는데 막대한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 해외 큰손 투자자의 도움이 필요할 것이란 예상이 많다.

      물론 정의선 회장이 PEF이 손을 잡으려면 투자와 회수 조건을 놓고 서로 뜻이 맞아야 한다. 현대차그룹은 글로벌 기업답게 투자자나 금융사와 협상 시 주도권을 쥐는 경우가 많다.

      한 PEF 운용사 관계자는 “정의선 회장 재산 거의 전부가 현대글로비스와 연동돼 있어 어떻게든 활용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며 “대형 PEF들이 관심을 갖겠지만 상장사의 소수지분 투자고 사업도 자동차를 나르는 것이다 보니 선뜻 나서긴 부담스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