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채권(NPL) 눈독 들이는 금융시장…내년엔 진짜 큰 장 예상
입력 2021.12.31 07:00
    우리금융F&I, 시장 재진입 등 민간 플레이어 증가세
    만기 연장 종료·금리 상승·부동산 규제 등 악재 산적
    지표상 위험성 낮지만 실제로는 '폭풍 전야' 평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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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내년 부실채권(NPL, Non Performing Loan) 시장 규모가 대폭 성장할 것이란 예상에 힘이 실리고 있다. 정부와 금융사들의 여신 만기 연장에 힘입어 연명해온 기업들은 여신 담보 가치가 하락하면 더 이상 버티기 어려워진다. 코로나 팬데믹 타격에 금리인상까지 더해진 자영업자와 가계의 부담도 점점 커지는 상황이다. 금융사들은 NPL 먹거리가 늘 것으로 보고 전열을 정비하고 있다.

      NPL은 회수가 어렵거나 회수 가능성이 없어진 금융 채권으로, 수익은 나지 않는 반면 위험가중치는 높아 은행의 자본비율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금융사들은 자산을 묶어 전문 투자사에 매각하는 방식으로 NPL을 처리해왔다. NPL 시장 초창기엔 유암코와 우리F&I(현 대신F&I) 양강 체제였는데, 2014년 우리F&I는 대신증권에 인수됐고 외환캐피탈이 외환F&I로 이름을 바꾸며 NPL 투자사로 전환했다. 작년엔 키움F&I, 아시아F&I가 시장에 뛰어 들었다.

      최근에도 금융사의 NPL 관심은 식지 않고 있다. 이달 우리금융그룹은 내년 1월 우리금융F&I를 출범한다고 밝혔다. 2014년 우리F&I 매각 후 7년여 만이다. 투자 경험이 있고 우리종금도 관련 사업을 하고 있어 NPL 시장에 조기 정착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하나F&I는 지난 22일 NPL 담보자산 매각정보 안내 시스템을 새로 열었다. 회사가 추천하는 물건 목록을 제공해 NPL 담보 부동산의 매매를 활성화하겠다는 취지다. 내부 소조직 형태로 NPL 투자를 하는 금융사들도 인력 충원을 고민하고 있다.

      금융사들이 NPL에 관심을 갖는 것은 그만큼 시장이 커질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우리금융도 ‘코로나 사태 후 NPL시장 규모가 확대될 가능성에 대비’한다고 밝혔다. 물고기가 내려올 것으로 예상되는 목에 그물을 쳐두는 형국이라는 평가다.

    • 국내 은행들의 고정이하 여신비율은 외환위기 후 8% 안팎을 오갔지만, 현재는 역대 최저치를 매분기 갱신하고 있다. 2018년 1% 미만으로 떨어졌고, 3분기말 기준 0.51%에 불과하다. 표면적인 수치로는 NPL 증가 가능성을 점치기 어렵지만, 실상을 따지면 위험 가능성이 큰 자산이 많다는 지적이다.

      이번 정부 들어 좀비기업의 정리 필요성이 다시 대두됐지만 적극적인 구조조정은 이뤄지지 않았다. 역사적인 저금리 환경이 부실 기업의 생명 연장에 도움이 됐고, 작년 코로나 팬데믹은 기업 살리기 명분에 힘을 실어줬다. 정부와 금융당국이 나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 대한 대출 만기 연장을 독려했는데, 기한 연장은 내년 3월까지 세 차례나 이뤄졌다. 기업을 죽이지 않는 것에만 방점이 찍히니 금융사들은 차주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하기 어려웠다.

      중소기업의 경우 절반 이상이 돈을 벌어 이자비용도 내지 못하고 있다. 자체 사업만으론 대출을 일으키기 어렵지만, 부동산 시장 호황의 덕을 봤다. 기업이 보유하고 있는 공장부지 등 자산 가격이 높아지니 위험 관리에 보수적인 민간 금융사들도 큰 부담 없이 돈을 빌려줬다. 회생절차가 진행 중인 쌍용자동차도 아파트로 개발 가능한 대규모 공장 부지가 있었기에 새 주인을 찾을 수 있었다.

      다만 이런 방식의 생명 연장은 앞으로 점점 어려워질 전망이다. 시장금리가 본격적인 상승 구간에 접어들며 여신의 위험 발생 가능성도 커졌기 때문이다. 여기에 정부의 전방위적 규제까지 얹어지며 부동산 투자에 대한 불안감도 늘고 있다. 부동산의 담보력이 줄면 시중은행의 자금 회수가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 입장에선 저금리와 부동산 자산 가치라는 두가지 방패가 사라지게 되는 셈이다. 대출 만기 연장도 대통령 선거 이후엔 끝난다.

      이는 일반 기업은 물론 부동산 개발사에서도 발생할 수 있는 문제다. 자금 조달 스케줄을 맞추지 못하면 채무불이행이 발생하는데, 채권 금융사 입장에선 사업을 받아와 완수하거나 자산을 NPL 방식으로 처분해야 한다.

      한 금융사 관계자는 “많은 부실 기업이 연명한 것은 정부가 금융 지원책을 내놓은 데다 부동산 자산 가격이 상승하며 차입 여력도 늘었기 때문”이라며 “앞으로 부동산 가치가 줄기 시작하면 시중은행이 먼저 분할상환을 요청할 것이고 이에 따라 NPL 물량도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일반 가계나 개인사업자는 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강한 대출 규제를 받아왔으니 위험성도 그만큼 적을 수 있다. 그러나 2년간의 팬데믹 불황의 타격을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일부 금융사는 올해 이미 ‘리테일 NPL’ 담당 부서에 일감이 몰리기 시작했다. 대통령 후보자들이 자영업자에 대규모 자금 지원을 약속하고 있지만, 갈팡질팡 공약이라 현실성을 장담하기 어렵다. 가계의 경우 공장 부지보다 안정적인 주택담보 대출이 많다 보니, 금융사와 투자사들의 투자 경쟁이 치열할 전망이다.

      한 외국계 금융사 관계자는 “내년 하반기 이후 부동산 관련 NPL 매물이 쏟아질 것으로 예상한다”며 “NPL에 직접 투자할 수도 있지만 NPL에 투자하려는 곳에 돈을 빌려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