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분쟁·진입장벽·리스크…보험사 헬스케어 사업 진출 ‘삼중고’
입력 2021.12.31 07:00
    금융당국 “보험사 헬스케어 적극 지원”
    선불전자지급업무 겸영이 헬스케어 확장으로 보기 어려워
    보험사가 소수 플랫폼과 제휴해 사업 영위한다는 전망 나와
    • (그래픽=윤수민 기자) 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보험회사가 헬스케어 사업 진출에 집중하고 있다. 감독당국이 헬스케어 자회사 허용 등 규제 완화 의지를 거듭 밝히고 있어서다. 다만, 의료계와 해결되지 않은 법적 문제는 여전히 보험사 헬스케어 사업 성장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헬스케어 산업의 진입장벽도 높아 보험사들이 경쟁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미 제약업계는 헬스케어 서비스를 미래 비즈니스 모델로 선택해 시장에 진출했기 때문이다. 특히, 자본력이 적은 중·소보험사들은 ‘성공의 보장’ 없이는 헬스케어 자회사 설립에 부담을 느끼는 모양새다. 이에 국내 보험사들의 헬스케어 진출이 공염불에 그친다고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 (그래픽=윤수민 기자) 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윤수민 기자)

      보험업계에 따르면 내년 2월부터 보험회사가 헬스케어 서비스 운영을 위해 선불전자지급업무를 겸영업무로 영위할 수 있도록 허용된다. 구체적으로 보험사는 소비자의 건강관리 노력·성과에 따라 자체 포인트를 지급하고, 소비자는 건강용품 구매, 보험료 납부 등에 포인트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 

      가령 보험사는 걷거나 살을 빼는 등 건강관리를 하는 고객에게 보험사 자체 포인트를 지급하고, 소비자는 이를 이용해 건강용품을 사거나 보험료를 내는 방식이다. 

      앞서 감독당국은 지난해 '건강관리 서비스'를 보험사 부수 업무로 허용해준 바 있다. 지난 2월에 AI 기반 운동 코칭 서비스 출시 허용, 헬스케어 전문 자회사 설립 추진 등에 이어 7월에는 플랫폼 기반의 종합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제를 개선하기로 했다.

      이러한 추진 배경에는 저출산·고령화로 수익성이 악화된 보험사들이 새로운 먹거리 창출을 위해 헬스케어 서비스를 육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산업 자체가 어려워지고 있다. 지금의 수익구조가 힘들어진다는 건 기존 보험상품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고 있어서다. 기존의 사업에서 수익이 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수익구조를 바꿔야 한다. 그래서 보험사 입장에선 새로운 헬스케어를 고민하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22일 신한라이프의 헬스케어 자회사인 ‘신한큐브온’의 소유 인허가 신고를 수리했다. 앞서 KB손해보험은 10월 보험업계 최초 헬스케어 자회사인 ‘KB헬스케어’를 설립해 운영하고 있다.

      KB금융과 신한금융이 헬스케어 자회사 설립에 나선 반면, 삼성생명·화재, 교보생명, 현대해상 등 대형 보험사들은 자회사 설립 대신 사내에 헬스케어 조직을 만들어 서비스를 제공할 계획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보험사의 헬스케어 사업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선 의료계와 해결해야 할 법적인 문제가 남아있다고 지적한다. 현행법상 보험사가 헬스케어 서비스를 제공하는 과정에서 건강검진 데이터를 분석해 진단을 내려도 이를 의료행위로 간주하면 불법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의료법 제27조에 따르면 '의료인이 아니면 누구든지 의료 행위를 할 수 없다'고 규정돼 있다.

      업계 관계자는 “보험사의 선불전자지급업무 겸영은 어디까지나 포인트를 이용해서 건강용품을 소비자가 구매하거나 보험료 할인을 받는거지, 헬스케어라고 보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해외 헬스케어 시장과 비교하면 아직 갈 길은 요원하다는 평이다. 미국과 중국 일본 등은 이미 보험사들이 헬스케어 사업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일례로 중국 핑안보험은 자회사 '핑안굿닥터'를 설립해 원격의료 서비스, 헬스케어 이커머스, 건강검진, 질병위험 분석, 사후 모니터링 등의 소비형 헬스케어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다른 문제점으로는 의료영역에 가까운 병원 또는 제약회사 등이 직접 또는 헬스케어 자회사를 통해 이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헬스케어 산업의 진입장벽이 높아, 보험사가 경쟁하기 쉽지 않은 까닭이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보험이나 금융쪽에서는 헬스케어 서비스가 새로운 것처럼 비칠 수 있지만, 의료계에서는 오래전부터 기존 의료와는 다르게 케어해야 할 부분을 생각했으며, 이러한 부분에서 개발을 선제적으로 진행해왔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2월 GC녹십자는 자회사 GC녹십자헬스케어와 유비케어가 인수 계약을 체결을 진행한 바 있다. 유비케어는 전자의무기록(EMR)을 활용해 디지털 헬스케어 플랫폼 사업을 펼치는 기업이다. 당시 보령제약 역시 유비케어 예비입찰에 참여했던 만큼, 제약사들이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을 인수하거나 투자하는 방식은 이미 고착화 된 상태다.

      이처럼 상황이 불확실하다 보니, 중·소보험사들이 헬스케어 자회사 설립이 부담스럽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중소보험사들은 자본이라든가 인력확충이 대형 보험사보다 힘든 부분이 있다”라고 말했다. “헬스케어가 시장의 수요가 있다고 판단이 들지만, 국내 보험사의 헬스케어 사업이 성공으로 증명이 된 건 아니기 때문에 KB나 신한이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면, 비즈니스 모델로 따라갈 가능성이 높다”라고 말했다. 

      결국, 대부분의 헬스케어 플랫폼은 경쟁에서 탈락하고 보험회사는 소수의 플랫폼과 제휴하여 사업을 영위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헬스케어 플랫폼 간 경쟁이 격화하면 궁극에는 소수의 플랫폼만 남게 되는 상황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헬스케어 플랫폼의 핵심 경쟁력으로 중요한 요소가 데이터와 규모의 경제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