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반사효과에 늘어난 대기업 여신…2022년엔 속도 조절 가능성
입력 2022.01.06 07:00
    2020~2021년 중 은행 대기업 여신 빠르게 늘어
    팬데믹 초기 위축…신사업·M&A 펼치며 증가세
    기업들 올해도 확장 예고…은행 대응 부담 커져
    사업 성과 예측 어려워…기업 조달 수단 다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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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대기업들은 코로나 팬데믹 초기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였으나 이후 신사업 확장과 M&A에 적극 나서며 활발히 움직였다. 이 과정에서 은행권 여신도 크게 늘었는데, 올해부터는 증가세가 둔화할 가능성도 있다.

      우선 여신이 예년 대비 급증한 것만으로도 관리 부담이 커진데다, 신사업 관련 여신일수록 이익 창출이나 자금 상환 시기를 점치기 어렵기 때문이다. 금융사들이 대기업 여신 관리에 신중해야 할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지난 2020년 초반 대기업들은 코로나가 대확산하고 경기가 위축되자 예비 유동성을 확보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비주력 자산을 정리하고, 경영권 지분을 제외한 주식을 내다 팔았다. 긴급 자금을 융통할 필요성이 커지자 은행권 차입선을 유지하는 데도 공을 들였다.

      팬데믹은 대기업들이 체질 변화를 서두르는 계기가 됐다. 기존 사업만 고수해서는 변화의 속도를 따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경영권 승계와 맞물려 기업 가치를 높이기 위해 신사업을 꺼내든 경우도 많았다. 거의 모든 대기업이 바이오·수소·인공지능(AI)·전기차 등을 신사업으로 꼽고 적극 투자에 나섰다. 기업들은 외부 자본을 유치하거나 차입을 일으켰다.

      잠시 주춤한 듯했던 해외 대형 M&A 행렬도 줄을 이었다. 국내에만 머물러서는 미래 성장을 담보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지난 1년여 기간에 SK하이닉스(인텔 낸드플래시 사업부), CJ ENM(엔데버 콘텐트), DL그룹(크레이튼), 넷마블(스핀엑스), 이마트(이베이코리아), 네이버(왓패드) 등 대기업이 대형 크로스보더(국경간 거래) 성과를 냈다. 자산을 유동화하고 보유 현금을 활용하는 한편 은행 차입금도 일으켰다. 산업·수출입·농협은행은 최근 1차 종결된 인텔 낸드사업부 M&A와 관련해 30억달러 규모 대출을 집행하기도 했다.

    • 은행권의 대기업 대상 대출 규모는 증가세를 보였다. 팬데믹으로 위축됐던 경영 행보를 만회하기 위한 수요가 많았다는 평가다. 2018~2019년 은행(인터넷전문은행 제외)의 대기업 대출은 160조원 수준이었지만 2020년엔 약 184조원, 작년 9월엔 약 189조원으로 늘었다.

      시중은행보다 국책은행 등 특수은행의 대출 증가세가 가팔랐다. 기업들은 국내 사업 확장에 신경을 썼지만 해외에 더 공을 들였는데, 해외 사업 지원 역량과 여력도 시중은행보다 국책은행이 더 낫다. 특수은행은 신사업은 물론 구조조정과 그룹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도 지원 부담이 컸을 것으로 보인다.

      올해도 대기업들은 신사업 확장에 분주히 나설 것으로 보인다. 주요 그룹 총수들은 2022년 신년사에서 위대한 도전정신, 혁신, 사업 생태계 확장, 기민 등 표현으로 이러한 포부를 드러내고 있다.

      자연히 추가 자금 소요가 생길 수밖에 없지만 은행권이 올해도 적극 자금 집행에 나설지는 미지수다. 여신 증가 속도를 조절할 필요성이 커졌고, 대기업들이 펼치는 신사업 자체의 위험성도 높기 때문이라는 평가다. 기업의 변화가 항상 성공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새로 손을 대는 사업은 이익이 나고 대출금을 상환하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가능성이 크다. 15년짜리 장기 프로젝트라면 은행 입장에선 5년 만기 대출을 2번 이상 차환해야 하는 부담이 생긴다.

      한 은행 대기업 담당 임원은 “팬데믹 이후 여러 대기업이 승계 국면에서 신사업에 적극 뛰어들었고 코로나 반사효과까지 겹치며 자금 수요가 많았다”며 “다만 신용도가 높은 기업이라 해도 한 순간에 망가질 수 있고 자금 회수 시기도 고민해야 하기 때문에 올해부터는 달라는 돈을 모두 주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들은 기업대로 은행에 손을 벌려야 할 필요성이 줄어든 모습이다.

      팬데믹 초기엔 국가 주도로 기업유동성지원기구(SPV)를 만들 만큼 채권 시장이 경색되니 은행 외엔 마땅한 자금 출처가 없었다. 2020년 초 한 30위권 내 제조 대기업은 갑자기 조 단위 자금을 한 은행에 예치해 눈길을 모았다. 해당 산업의 장기 불황이 예상되던 시기고 갑자기 유동성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던 터라, 은행권과 미리 친밀한 관계를 쌓으려 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2020년 중반 이후부터는 웬만한 대기업의 회사채는 시장에서 소화되고 있다. 시장금리가 상승기에 접어든 것은 부담이지만 우량 채권의 조달 금리는 여전히 대출 금리보다 낮다. 기업 입장에선 사업 확장 시 은행권 자금에 의존할 필요성이 줄어든 상황이다.

      다른 은행 관계자는 “우량 대기업들은 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것보다 회사채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유리하다”며 “해외 M&A 등 은행 도움이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라면 당분간 대기업 대상으로 여신 실적을 쌓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