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금융 다시 기웃대는 은행들...금융그룹 내 '제 살 뜯어먹기' 우려
입력 2022.01.06 07:00
    과거에도 낮은 금리 앞세웠으나...금리만으로 안돼
    딜러의 영업망과 가계대출 규제 강화는 시장 진입 걸림돌
    그럼에도 MZ세대 겨냥해서 자동차금융 서비스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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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은행들이 약 40조원으로 추정되는 자동차할부금융 시장에 속속 진입하고 있다. 최근 3~4년새 캐피탈사의 전유물이었던 자동차 금융 시장에 카드사들이 진출해 쟁탈전을 벌였고, 이번엔 은행까지 낮은 금리를 무기로 본격 가세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까지는 자동차금융 시장이 급성장을 거듭해온만큼, 중고차할부ㆍ신차리스 등 세부적인 목표 시장을 구분하는 것만으로도 동시성장이 가능했다. 다만 경제규모 대비 자동차금융 시장의 크기가 어느정도 한도에 도달한데다, 가계 대출 규제를 받는 은행이 주력사업으로 취급하긴 쉽지 않을 거란 분석이 나온다.

      금융권에 따르면 우리금융은 최근 자동차금융 통합 플랫폼 ‘우리WON카’ 서비스를 출시했다. 하나은행 역시 지난해 12월 하나원큐에서 신차 견적 서비스를 시작했다. 신한금융은 지난해 10월 신한은행의 마이카와 신한카드의 마이 오토를 통합해 선보였다. 이 외에 KB국민은행은 2019년부터 KB국민카드와 함께 KB캐피탈의 플랫폼 ‘KB차차차’와 협업을 이어가고 있다.

      그동안 카드사와 캐피탈사 간 진행했던 자동차 금융의 주도권 경쟁과는 다소 차별화되는 양상이다. 은행이 참전하며 자동차금융 시장을 둘러싸고 삼각 구도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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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일단 은행의 자동차금융 진출은 그룹 내 협업 양상을 띄고 있다. 지난 2017년 27조원 수준이었던 자동차금융시장은 지난해 40조원 규모로 불과 4년만에 50%가량 성장했다. 시장이 폭발적으로 커지는 와중에, 은행-카드-캐피탈 등 소매고객 접점을 최대한 가동해 고객을 일단 그룹 울타리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포석으로 해석된다.

      한 은행 관계자는 “고객들이 자동차 구매를 하면 자금조달 측면에서 금융사를 고려하게 된다. 은행·카드·캐피탈 각 사별로 한도나 금리를 개별적으로 알아봐야 해서 그룹 차원에서 접근해 고객 이탈을 막으려 한다”라고 말했다.

      사실 은행은 예전에도 낮은 금리 경쟁력을 앞세워 자동차금융 시장에 진출한 바 있다. 2000년대 초반에도 캐피탈사와 자동차 할부시장 주도권 경쟁을 벌였었다. 

      당시 은행은 거래실적뿐만 아니라, 담보와 보증인이 필요한 경우가 많아 이용자 측면에서 불편했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행원들도 자동차할부금융이 주택담보대출 KPI보다 적어 영업 현장에서 소극적이었단 평이다. 

      한 증권사 은행 담당 연구원은 “당시 자동차금융의 시장 규모가 주택담보대출보다 현저히 작아 KPI에 메리트를 느끼지 못했던 행원들이 고객한테 금융상품을 잘 권유하지 않았다"며 "업계 1위 현대캐피탈을 이용하면 차량을 빨리 출고해준다는 소문에 구매를 결정할 정도로 은행의 금리 경쟁력이 먹히지 않던 시장이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번에는 다를까. 업계에서는 자동차금융이 딜러를 통해 실적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아 은행의 시장진입이 여전히 쉽지 않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무엇보다 은행이 여전업계보다 가계대출 규제가 강한 만큼, 자동차금융 시장점유율을 높이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다.

      한 금융지주 관계자는 “보험가입자가 보험설계사를 통해서 보험에 가입하듯이, 자동차할부금융은 딜러에 의해서 권유를 많이 받는다. 또한, 고객 신용등급별로 한도나 금리가 달라서 은행이 모든 서비스에서 훨씬 우월하다고 말을 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게다가 지속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은행 가계대출 규제 역시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자동차할부금융 역시 법인 판매가 아니면 모두 가계대출로 산입된다. 은행의 주력 대출 상품이 자산가치가 훨씬 높은 부동산 관련 상품임을 감안하면, 은행이 정해진 가계대출 한도 안에서 시장점유율을 높이기에는 한계가 분명히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금융당국은 올해 시중은행에 가계대출 증가율을 4~5%대로 관리하라고 주문했다. 이 경우 올해 가계대출 공급량은 65조~97조원대로 지난해보다 13조원 이상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KB국민·신한은행은 4~5%대, 하나·우리·NH농협은행은 4%대로 관리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 은행들이 자동차금융 시장에 속속 뛰어드는 이유는 역시 신규 고객 풀(pool) 확보 차원이다. 특히 금융을 갓 이용하기 시작하는 2030세대의 경우 주택보다 자동차 구입이 빠른 경우가 많다. 이런 고객들을 잡아두려면 자동차금융 상품이 필요했다는 전언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주택가격이 너무 올랐다. MZ세대가 주택을 소유하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존재하지만, 자동차만큼은 좋은 차를 타고싶은 니즈가 강해지고 있다. 그룹 측면에서는 MZ세대를 겨냥하고자 자동차금융 서비스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다만 국내 자동차금융 시장 규모는 이미 어느정도 한계에 다다랐다는 분석도 만만치 않다. 지금까지는 금융그룹 소매금융 계열사가 다 뛰어들어도 수익 성장이 가능할 정도로 시장이 커져왔지만, 앞으로는 이 같은 성장은 쉽지 않을 거란 전망이다.

      지난 2020년 국내 내수용 자동차 판매량은 사상 처음으로 190만대를 돌파했다. 지난해 판매량은 이보다 6만대가량 줄어든 것으로 추정된다. 올해엔 반도체 등 부품 부족으로 생산량이 전년대비 1% 가량 줄어들며 판매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긴 어려운 상황이다.

      시장이 포화상태에 접어들면 그룹 내 자동차금융 사업을 누가 주도할 것인지를 두고 알력이 생겨날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지점이다.

      은행이 자동차금융 시장에 안착하려면 결국 핵심성과지표(Key Performance Indicator;KPI)를 통해 확실히 힘을 실어줄 필요성이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자동차할부금융은 100% 비대면 서비스로 실시하긴 곤란하기 때문에 영업 일선에 있는 행원들이 얼마나 노력하냐에 따라 시장 영향이 갈릴 것"이라며 "자동차금융이 주택담보대출보다 시장 규모가 작다고 과거처럼 소극적으로 대응한다면 같은 실패가 되풀이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