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적'된 크래프톤에 입 다문 증권사 리서치가 불편한 이유
입력 2022.01.14 07:00
    취재노트
    뉴스테이트 흥행 참패에도 여전히 '낙관론'
    대부분 '사전예약 5000만명' 11월에 머물러 있어
    매출 청사진 틀어졌는데 업데이트는 '아직'
    • '뉴비(초보 게이머)는 고인물(숙련 게이머)이 쫓아내고, 고인물은 핵(hack;불법 프로그램 사용자)이 몰아낸다.'

      배틀그라운드:뉴스테이트(이하 뉴스테이트)는 지난해 11월 새로 나온 신작이지만, 이른바 '고인물 게임'이기도 하다. 2017년 3월 출시된 PC판 배틀그라운드(이하 배그)를 계승하고, 2018년 2월 나온 배그 모바일 버전의 공식을 그대로 따랐다. 신작이지만, 5년 이상 경력을 갖춘 숙련자들이 득실거린다는 이야기다.

      마지막 1명이 되기 위해 싸워야 하는 배틀로얄 장르의 특성상, 배그라는 게임은 뉴비에게 불친절할 수밖에 없다. 어디서 날아온지도 모르는 총탄에 싱겁게 탈락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모두가 배그를 즐길 땐 괜찮았다. 뉴비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던 까닭이다. 사용자 수가 줄어들면 진입장벽이 높아지기 시작한다. 지금의 배그는 '마니아' 게임이 됐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확장성이 떨어진다는 말이다.

      배그 개발사 크래프톤에 대한 투자의견을 내고 있는 증권사 리서치센터들의 전망은 아직도 뉴스테이트에 매우 우호적이다. 

      초반에 잠시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뿐, 점차 사용자가 늘고 매출도 늘어날 거라는 전망이 지금도 주류를 이루고 있다. 보수적인 삼성증권조차 뉴스테이트의 매출액을 지난해 4분기 일평균 6억원에서 내년 4분기 일평균 34억원으로 점차 늘어날 것이라 제시했다. 다른 증권사 리서치는 '초반 부진은 배틀로얄 장르의 특성'이라고도 주장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2017년 3월 출시된 배그의 성장 곡선을 보면 일견 맞는 말처럼 들린다. 배그는 '얼리 억세스' 출시 이후 조금씩 입소문을 타다가 2017년 하반기 사용자가 급증했고, 2017년 12월 정식 출시 후 한달 뒤인 2018년 1월 사상 최고 동시접속자 수를 기록했다. 출시부터 최대 매출까지 걸린 기간은 11개월이었다.

      게임업계 관계자들은 이를 두고 '배틀로얄 장르의 특성'이 아니라, '입소문으로 대세가 된 게임의 특성'이라고 말한다. 얼리 억세스를 통해 먼저 게임을 접한 유저들이 '재밌다'고 소문을 내고, 게임 스트리머들이 달려들며 게임 영상을 방송하고, 점점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며 광범위한 일반인들까지 게임을 접하게 되는 구조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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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뉴스테이트도 이런 구조를 따를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이미 전작의 후광을 입고 접할 사람은 모두 접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사전 예약자만 국내 인구 수에 육박하는 5000만명이었다. 이 중 실제로 게임을 다운로드한 사람이 4000만명이었다. 이들 중 상당수가 두 달 만에 게임을 지우고 떠났다. 

      뉴스테이트는 입소문을 타고 글로벌 대세가 된 2017년의 '배그'의 길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기대작으로 추앙받으며 엄청난 관심을 초기에 집중적으로 받았다가, 막상 출시 뒤 실망한 유저들이 떠나버리는 '실패한 대작'의 길에 들어섰다는 평가다. 뉴스테이트가 배그보다 나은 건 신작이라 '핵'이 아직 별로 없는 것 정도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크래프톤의 실적이 나락으로 갈 것이란 말이 아니다. 이미 현장의 운용역들 사이에선 '크래프톤은 제 2의 넥슨'이라는 말이 돌고 있다. '던전 앤 파이터'라는 게임의 중국 매출로 먹고 사는 넥슨처럼, 크래프톤 역시 배그의 중국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화평정영'의 로열티 매출로 충분히 먹고 살 수 있다는 말이다.

      미국 모바일 앱 분석업체 센서타워에 따르면, 화평정영을 포함한 배그 모바일 버전의 지난해 글로벌 매출액 추산치는 28억달러(약 3조3300억원)이었다. 글로벌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 압도적인 1위다.

      수많은 게임의 흥망성쇠를 재무적인 관점에서 지켜봐온 인터넷ㆍ게임 담당 연구원들이 이 같은 상황을 모를 리 없다. 특히 모바일의 경우 초기 대규모 마케팅을 통해 사용자 트래픽을 확보한 뒤, 이를 최대한 유지하며 과금요소를 점차 늘려나가는 것이 BM(매출 모델)의 공식으로 통한다. 트래픽이 나락으로 떨어진 모바일 게임이 '역주행'을 거쳐 살아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크래프톤을 커버하고 있는 국내 증권사 리서치센터의 레포트는 거의 대부분 11월에 멈춰서 있다. 글로벌 사전등록 5000만명을 강조하며 뉴스테이트 예상 연간 매출액을 1조~2조원으로 예상한 시점에서 나아가지 못했다. 12월 이후 나온 레포트가 없진 않지만, 이 역시 '초기 잠시 부진하지만 곧 매출이 늘어날 것'이라는 낙관론만 강조하고 있다.

      '출입 기업'과의 관계 유지 차원에서 출시한 지 두 달밖에 안된 뉴스테이트에 사망 선고를 내리는 일이 쉽지 않을 수는 있다. 그러나 적어도 출시 두 달차인 지난해 12월 뉴스테이트 글로벌 매출액이 월간 합산 200만달러(약 24억원)라는 추정치가 나왔을 때, 올해 뉴스테이트로만 연간으로 5000억원에서 2조원의 매출을 올릴 거란 전망치는 수정해야 하지 않았을까.

      일부 연구원의 시각은 올해 하반기 나올 대작인 '칼리스토 프로토콜'로 향하고 있다. 물론 '글로벌 1000만장 이상 판매 기대'라는 낙관적인 시선과 함께다.

      칼리스토 프로토콜에 대한 낙관론의 근거는 단 하나다. '콜 오브 듀티' 시리즈 및 '데드 스페이스'의 개발자인 글렌 스코필드가 디렉터로 참여한다는 부분이다. 콜 오브 듀티 시리즈는 2009년 등장한 이후 18개 타이틀을 출시해 누적 매출 180억달러(21조원)을 기록한 초대작 프랜차이즈다. '데스 스페이스' 역시 우주 배경 액션 호러 장르에서 항상 언급되는 대작 중 하나다.

      이를 두고 게임업계 일각에선 엔씨소프트와 리처드 개리엇의 일화를 언급하기도 한다. 리처드 개리엇은 현대 역할수행게임(RPG)의 시초라고 불리는 고전명작 '울티마 시리즈'를 개발한 천재 개발자다. 엔씨소프트가 그를 영입해 내놓은 '타불라 라사'라는 게임은 시장에서 완전히 외면받았고, 미국 현지에서 단돈 1달러에 팔리기도 했다. 흥행 참패 이후 해고당한 리처드 개리엇은 엔씨소프트를 상대로 스톡옵션에서 손해를 봤다며 2400만달러(약 280억원) 규모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