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해양 M&A 3년 허송 끝 무산...경쟁력 하락·채권단 부담 장기화 우려
입력 2022.01.17 07:00
    국내 조선업 개편 명분으로 추진했으나 EU서 13일 불허
    경쟁 제한성 커질 우려…예견 가능했으나 안일했다 평가
    현대重 지배구조 개편할 동안 대우조선은 불확실성 노출
    민영화 난항시 채권단 부담 가중…거래 무산 책임론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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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대우조선해양 M&A가 결국 유럽연합(EU)의 벽을 넘지 못했다. 해외 시장에서의 반발이 불 보듯 뻔했음에도 정부와 산업은행이 상황을 너무 낙관하고 안일하게 글로벌 1, 2위 조선사 통합을 추진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3년간 불확실성에 노출된 대우조선해양은 경쟁력 약화가 우려되고, 이를 야기한 채권단도 책임론을 피하기 여려울 것으로 보인다. 대우조선해양을 정상화할 카드가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재무부담을 나눠져야 하는 채권단의 고민도 길어질 전망이다.

      EU 집행위원회(EC, European Commission)는13일(현지시간)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기업결합을 금지한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승인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예상이 많았고 작년 말부터는 현대중공업도 EC에 별다른 소명 작업을 하지 않고 있다. EC는 20일까지 심사를 하겠다 했었는데 불허 발표를 공식화할 시기라는 평가가 나왔다.

    • 산업은행은 2019년 1월 깜짝 대우조선해양 M&A 계획을 밝혔다. 전해 늦은 여름부터 현대중공업그룹과 머리를 맞대고 논의한 끝에 신설 조선지주회사에 대우조선해양 주식을 현물출자하고 조선지주사 지분을 받아오는 구조를 짰다. 현대중공업은 직접적인 현금 유출이 없고, 산업은행은 경영권 지분을 2대주주 주식으로 바꾸는 꼴이라 대기업 특혜 논란이 있었다.

      산업은행이 상장사 지분을 처분하니 국가계약법에 따라 공개경쟁입찰을 진행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있었는데, 정부는 ‘매각이 아니며 국가계약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유권해석을 냈다. 이 판단을 근거로 ‘투자계약’이 맺어졌다. 삼성중공업에 대해 인수 의향을 묻는 것도 형식적으로만 이뤄졌다. ‘빅2’ 체제로 가야 한다는 당위성이 강했기 때문에 다소간의 논란은 M&A에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다만 대우조선해양 M&A 추진 과정이 얼마나 면밀히 이뤄졌는지는 의문이다.

      조선산업이 하강 국면에 접어들며 국내 조선사들에선 여러 부실과 위험이 드러났다. 국내 산업 개편이라는 명분이 있었다. 그러나 이런 논리가 해외 경쟁당국에서까지 받아들여지기는 쉽지 않다. 특히 유럽은 세계에서 가장 큰 선박 수요처라 대우조선해양 M&A에 민감했다.

      최근 참고할만한 사례도 있었다. 작년 초 이탈리아 핀칸티에리와 프랑스 아틀란티코의 크루즈 조선사간 기업결합이 무산됐다. 두 회사가 합쳐지면 대형 크루즈선 점유율 50% 이상을 차지할 수 있었는데, EC는 경쟁사가 1곳(독일 Meyer Werft)만 남게 돼 경쟁 제한성이 우려된다고 봤다. 주력 분야에서의 점유율이 높으니 독과점으로 판단될 가능성이 컸다.

      EC는 2019년말 1단계 심사 결과를 통해 대우조선해양 M&A시 대형 컨테이너선, 유조선, LPG선, LNG선 등 4개 시장에서 경쟁 제한성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조선업은 특성상 선종이 달라도 도크 등 각종 설비를 공유하는 경우가 많다. 즉 주력 선종 중 하나라도 경쟁 제한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기업 전체의 결합 승인을 얻기 어려워진다. 유럽은 LNG선 수요가 많은데 조선 빅3가 최근 글로벌 LNG선 수주를 독식하며 기업결합 심사의 벽이 더 높아졌다. 2015~2019년 EC 2단계 심사를 거친 사건 중 무조건승인 비율은 13%에 불과하다.

      이를 감안하면 대우조선해양 M&A가 유럽의 벽을 넘기 어려울 것이란 점은 어느 정도 예상 가능했다. 특히 공정거래위원회 내부에선 산업은행이 해외 경쟁정책에 대한 이해 없이 무리했다는 분위기도 있었다. 공정위가 미리 나섰다면 더 빠른 결론이 났겠지만, EU의 눈치만 보며 시간을 끌었다. 작년엔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공정위에 결단을 촉구했을 정도다.

    • 현대중공업 입장에서는 크게 아쉬울 게 없다. 

      대우조선해양 M&A를 추진하며 조선사 지배구조를 정리했고, 건설기계부문 중간지주사 현대제뉴인도 설립하며 신사업 확장 계기를 마련했다. 

      산업은행의 덕도 많이 봤다. 산업은행 자회사와 함께 산업은행 관리기업으로부터 두산인프라코어를 사들였다. 두산인프라코어의 해외 사업 우발 위험도 산업은행이 나서서 정리해줬다. 대우조선해양 인수 후 1조5000억원을 증자하기로 했는데 이런 부담은 사라졌다. 채권업계에선 재무상황이 좋지 않은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호재라는 평가가 나왔다.

      대우조선해양은 상황이 다르다. 3년간 주인이 모호한 상태를 거치며 영업력이 약화했다는 지적이다. 임직원 수도 2018년말 약 1만명에서 작년 9월말 8805명까지 줄었다. 

      지금이야 몇 년치 일감이 몰려들고 있지만 불과 몇해 전만 하더라도 수주 부진과 실적 저하에 허덕였다. 조선업이 하강 주기에 접어들면 자체적으로 버티기 힘들어질 수 있다.

      산업은행 입장에선 다음 계획을 세워야 한다. 빅2 전략은 어렵다는 점이 확인됐으니 다른 방식을 찾아야 하는데 뾰족한 수가 없다. 사업부별로 쪼개 파는 방안은 쉽지 않다는 것이 결론났고, 제조업 특성상 우리금융지주 민영화처럼 지분율을 낮춰가는 방식도 어렵다. 작년부터 포스코와 한화 등이 잠재 원매자로 거론되고 있지만 이들도 채권단 지원금 상환 부담, 취약한 재무구조가 부담스럽다.

      20년간 이어진 산업은행의 대우조선해양 관리 체제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 과거처럼 낙하산 인사와 각계 각층의 간섭이 다시 생겨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채권단은 대우조선해양의 부실이 생길 때마다 추가 자금 투입을 두고 골머리를 앓아야 한다.

      한 거래 관계자는 “앞으로 조선업 재편 과제는 빅2 체제 확립이 아니라 대우조선해양 민영화로 바뀔 것이지만 M&A를 다시 추진하는 외에 마땅한 수가 없다”며 “잠재 인수후보 기업들은 저마다 디지털, 친환경 등 새로운 사업에 공을 들이고 있어 조선업에 관심을 가질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산업은행 입장에선 아쉬운 점도 있다. 초반 상대적으로 우호적이던 심사 책임자가 바뀌었고, 코로나 팬데믹에 유럽-러시아 갈등으로 인한 가스값 인상 등 악재도 많았다. 현대중공업이 사전에 계획이 알려지면 손을 떼겠다 한 터라 대우조선해양 M&A 계획의 실현 가능성을 따질 인력도 최소화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산업은행이 대우조선해양을 3년간 불확실성에 노출시켰고, 결과적으로 조선업 개편도 달성하지 못했다는 책임은 남는다. 

      산업은행이든 현대중공업이든 책임을 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우조선해양 M&A를 주도했던 인사들은 승승장구하고 있다. 금호타이어, 아시아나항공 등 굵직한 구조조정 공도 많은 최대현 부행장은 작년 선임부행장에 이어 올해 수석부행장에 올랐다. 대우조선해양 M&A ‘기안자’ 역할을 맡은 것으로 알려진 안영규 당시 기업금융1실장은 작년 기업금융부문장(부행장) 직무 대리, 올해 기업금융부문장으로 승진했다.

      한 M&A 자문사 관계자는 "국내 문제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과 달리 대우조선해양 M&A는 글로벌 차원에서도 워낙 큰 문제라 기업결합이 쉽지 않았는데 산업은행이 너무 순진하게 접근했다"며 "산업은행도 거래 무산에 대한 책임이 있지만 담당자들은 건재하기 때문에 거래 자문사들이 불편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