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가 곧 유권자?…표심 잡는 親주주 정책, 긴장도 높아진 재계
입력 2022.01.20 07:00
    대선 앞두고 주주친화 공약 봇물
    공매도ㆍ세제 개편에 차등의결권 여파

    국민연금 주주대표소송도 논란
    기업들 전반적으로 전략 수정 불가피

    소액투자자 잡아야 '표'심 얻는다 판단
    제도 실효성ㆍ반(反)시장적 요소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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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대선을 앞둔 시점, 새해 초 자본시장의 논제들이 정치권 화두와 밀접하게 연관 지어진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주식시장에선 연령과 성별을 망라한 개인투자자들이 이미 1000만명 이상으로 크게 늘었고 기관투자가와 외국인을 압도하는 모습까지 나타났다. 

      최근 떠오르는 주주권익 보호, 주주가치 제고란 화두는 더 이상 자본시장 안에 국한한 문제가 아니게 됐다. 주주들의 표심을 잡는 것이 선거 결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판단에 유력 대선 후보는 물론이고 정치권까지 가세했다.

      ‘소액주주 보호’라는 대전제가 자본시장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는 만큼 기업들의 긴장도는 더욱 높아졌다. 재계에선 소액주주 보호 장치 마련이 자칫 반(反)기업 제도 개편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도 나타나는 가운데 일부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재무·경영 전략의 대대적인 수정도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기업의 물적분할 및 재상장을 제도적으로 보완하는 방안은 대통령 선거에 나선 유력 후보들이 유권자들의 표심을 잡는 주요 공약으로 자리잡았다. 윤석열 후보(국민의힘) 는 물적분할 시 모회사 주주에게 신주인수권을 부여하는 방안을, 이재명 후보(더불어민주당)는 신주인수권을 포함해 반대 주주에게 주식매수청구권을 주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물적분할 및 자회사 재상장에 대한 논의는 지난해 LG화학이 물적분할을 통해 신설한 LG에너지솔루션이 기업공개(IPO)에 나서며 모회사(LG화학)의 주가가 하락하는 상황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최근 진행한 LG에너지솔루션의 기관수요예측에선 경쟁률 2023대 1, 약 1경5000조원 이상의 자금이 몰리며 시장의 유동성을 흡수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초 주당 100만원을 넘나들던 LG화학의 주가는 최근 70만원대까지 주저 앉았다. 핵심 사업을 떼낸 모회사에 디스카운트 요인이 발생하고 있는 것인데 소액주주들을 중심으로 반발이 거세지자 정치권 논의로까지 확대했다. 

      사실 자회사 설립과 외부투자자 유치, 상장을 통한 자금마련 등 선순환 구조를 통해 기업들이 대규모 투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던 점은 일부 긍정적인 요인으로 꼽히기도 한다. 과거 기관과 외국인 중심이었던 국내 주식시장에 이제는 개인투자자, 소액주주가 주요한 주체로 자리잡으면서 소액주주권 보호란 측면이 부각되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논의의 시발점을 차치하고 정치권·금융당국의 물적분할 및 재상장 규제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 질수록 이같은 전략을 활용하려 했던 대기업들의 고민은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올해 IPO 시장의 최대어로 예상됐던 이마트와 SK이노베이션에서 각각 물적분할한 SSG닷컴과 SK온 등은 현재 상황에선 원활한 상장작업을 예단하기 어렵게 됐다. 지배구조개편 작업을 추진해야 하는 현대차그룹, 주요 계열사 상장 계획을 세운 CJ그룹도 꺼내들 카드가 제한될 여지가 있다. 특히 각각의 자회사 상장을 통해 그룹 기업가치를 끌어올리는 전략을 펼치는 SK그룹과 카카오 등의 재무 전략에도 비상등이 켜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한동안 투자 시장의 풍부한 유동성을 바탕으로 대기업 계열사들의 기업공개가 이어지며 주식시장이 활기를 띄었으나 일명 ‘빅샷’이 위축될 조짐이 보이자 금융투자업계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1000만명 이상의 개인 투자자들에 대한 맞춤 공약이 대선의 향방과도 직결할 수 있는 만큼 세운 유력 대선 후보들의 ‘주주친화적’ 자본시장 공약도 속속 구체화하고 있다. 주식 장기보유 투자자에 대한 우대 세율을 적용하고, 공매도를 규제하는 방안 등은 공통적인 자본시장 공약 중 하나다.

      정치권의 움직임과 더불어 국내 최대 기관투자가인 국민연금도 ‘주주권 보호’ 움직임에 동참했다. 기금운용본부는 지난해 12월 주주가치 훼손과 관련한 사건이 발생한 기업을 대상으로 비공개 서한을 발송했다. 해당 기업 가운데는 삼성전자, SK이노베이션, SK네트웍스 등 국내 주요 대기업들 상당수가 포함된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연금은 추후 수탁자책임위원회에서 소송 여부에 대한 판단을 맡길 계획이다. 

      주주대표소송은 과거 국민연금의 주요 주주권행사 방안인 주주서한 발송, 경영진 면담, 표결 행사 등을 뛰어넘는 강력한 조치이기 때문에 재계의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국내 대기업 계열사 상당수의 주요주주로 자리잡고 있는 국민연금의 기업과 경영진을 대상으로 한 소송 제기는 기업 이미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이에 한국경영자총협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상장사협의회 등 7개 경제단체는 공동성명을 통해 주주대표소송 추진에 대한 전면 재검토를 요청한 상태다.

      문재인 정부의 핵심 공약 중 하나인 벤처기업 활성화, 유니콘 기업 육성과 밀접한 법안도 ‘투자자 보호’라는 전제에 일단 가로막혔다. 벤처기업 창업주의 경영권 보호를 위해 의결권을 주당 10개까지 허용하는 내용이 담긴 ‘벤처기업법 개정안’은 지난해 말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를 통과했으나 법제사법위원회 내 일부 여당 의원들의 투자자 보호를 이유로 반대에 나서며 입법에 제동이 걸린 상태다. 

      해당 법안은 정부가 2019년 3월 복수의결권 발행 허용 방안(제2벤처 붐 확산전략 보고회) 발표를 시작으로, 2020년 더불어민주당의 총선 공약 그리고 정부의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도 포함된 내용이다. 지난해엔 문재인 대통령이 “복수의결권 주식 발행 허용 법안 통과와 관련해 국회의 협조를 구하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주식시장의 큰 손으로 자리잡은 소액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한 공약들이 제시되고 금융당국과 정치권을 중심으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됨에따라 추후 자본시장 내 상당부분 제도 개편이 예상된다”며 “주주 친화 정책도 물론 필요하지만 제도의 실효성과 반(反)시장적 요소가 있는지를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