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시장 '3월 이후'만 기다리는 기업들…러-우크라 갈등·한전채는 변수
입력 2022.02.24 07:00
    높아진 조달금리…투심 저조에 AA도 미매각
    'ESG 요소' 미달되는 기업에 투자자들 '외면'
    한전채 쏟아지며 수급 불안정…"1분기 고점"
    3월 금리 불안정 해소 기대…물가상승 촉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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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2월 국내 채권 시장엔 ‘불안함’이 가득했다. 금리 상승에 스프레드(가산금리)까지 벌어지면서 기업들의 자금 조달 환경이 녹록지 않은 상황이다. 수요예측에선 대기업 계열사들까지 미매각이 이어지고 있다. 채권 시장에서는 금리 변동성과 더불어 한전채 같은 공사채 추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지정학적 리스크의 장기화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금리 상승에 앞서 선조달 하려는 기업들의 수요는 많다. 하지만 회사채 투자심리는 좀처럼 회복되지 않으면서 조달 부담은 더욱 높아졌다. 낙찰되는 금리 수준은 민간채권평가사 금리보다 높거나 금리 밴드 상단에서 이뤄지고 있다. AA급을 포함해 미매각도 속출했다. 

      A급 회사채 상황은 더욱 빡빡하다. 채권시장 전반이 좋지 않지만 투자자들은 그나마 우량등급을 선호하고 있고, 금리 인상으로 채권 손실 규모가 커지면서 A급의 주요 매입자인 증권사 리테일 등의 매입 여력도 줄어들었다. A등급의 발행 금리는 모두 상단에서 낙찰되고 있다. 

      SK그룹의 A급 계열사들도 연이어 부진을 보였다. SK어드밴스드(A)에 이어 SK에코플랜트(A-)도 올해 첫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미매각을 기록했다. 1500억원 모집에 -30~30bp의 금리밴드를 제시했지만 모집물량을 채우지 못했다. 3년물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채권 중 ‘녹색채권(그린본드)’으로 구성했지만 투심을 끌지 못했다. SK에코플랜트는 작년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두 차례 연속으로 1조원을 상회하는 자금을 받아내면서 흥행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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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가운데 한국전력공사의 무분별한 조달이 시장의 수급 부담을 가중하고 있다. 한전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물량을 쏟아내면서 스프레드 확대 부담을 키우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까지 발행이 없던 한전은 7월 이후 매월 1조~2조원 수준의 한전채를 발행하고 있다. 최근 수익성 악화로 현금흐름이 악화된 상황이라 도매전력대금 지급을 위한 자금 부족이 발행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파악된다.

      올해 들어서는 더욱 공격적으로 한전채를 발행하고 있다. 1월 2조3600억원의 한전채를 발행하면서 공사채 전체 발행 중 31%를 차지했고, 크레딧 채권 약세 압력을 가중시켰다. 2월에도 셋째주 기준 1조6000억원 규모를 발행했다. 

      크레딧 시장의 수요가 따라준다면 큰 문제가 없겠지만, 최근 금리 상승기와 맞물린 시장 분위기에선 공급부담이 수급악화로 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한전채의 금리 자체도 많이 높아졌고, 이에 공사채 금리도 같이 높아진 상황이다. 

      한전채 발행이 줄어들려면 근본적으로 한전이 적자규모를 해소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전기요금 인상 혹은 전기 매입 도매가가 낮아져야 하지만 가능성이 높지 않다. 다만 원자재 가격과 관련해 글로벌 IB들이 1분기를 고점으로 전망하고 있고, 4월 전기요금 인상 가능성도 한전 주가에 높게 반영되면서 1분기가 한전채의 고점이고 그 뒤 하향안정화 될 것이란 긍정적인 관측도 나온다.

      한편 국내 채권 시장에서 "ESG에 반대되는 기업엔 투자하지 않겠다"는 투자자들의 경향은 더욱 뚜렷해졌다. 특히 에너지 관련 기업에는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분위기다. 다만 시장에서 ‘ESG 채권’ 자체를 향한 관심은 지난해에 비해 크게 줄었다. 기업들의 발행도 한 풀 꺾인 상태다. 

      공장 폭발사고가 발생한 여천NCC는(A+) ‘수요예측 0건’을 기록했다. 2000억원의 자금 조달을 위해 회사채 수요예측에 나섰지만 전량 미매각됐다. 꾸준한 영업현금창출로 높은 수익성을 보여 펀더멘털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지만 인명사고가 발생하면서 투자자들의 외면을 받았다. 

      한국석유공사와 SK가스가 울산 북항 탱크터미널 사업을 위해 설립한 합작회사 코리아에너지터미널(AA-)도 첫 공모 회사채 수요예측 흥행에 실패했다. 액화천연가스(LNG) 탱크 건설 자금 마련을 위해 1000억원을 모집했지만 700억원의 주문만 들어왔다. 

      SK그룹의 울산지피에스도 ESG 채권 발행에 나섰지만 체면을 구겼다. 수요예측에서 3년물 1000억원 모집에는 300억원, 5년물 500억원에는 ‘제로’ 주문이 들어왔다. SK가스 계열사로 편입된 후 처음으로 발행하는 공모채로, 지급보증한 SK가스의 등급(AA-)을 적용받았지만 투심 끌기에 역부족이었다.

      한 채권업계 관계자는 “ESG 채권은 시장에서 작년에 반짝 관심을 보였는데, 일반 채권 발행과 큰 차이가 없다보니 시장서도 ‘별거 없네’라는 인식이다. 다만 ESG 경영을 선포한 금융지주의 수많은 금융계열사들을 선두로 채권 투자자들이 ‘ESG 요소’에 걸리는 투자처를 꺼리는 분위기는 확실히 자리잡고 있고, 한전채 수요가 부진한 점도 ESG 이슈 영향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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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싸늘한 시장이 계속되고 있지만 크레딧 업계에서는 3월 이후엔 연초보다는 상황이 나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금까지 크레딧 시장이 약세를 보인 데에는 금리 변동성이 크게 작용했다. 이달 24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있고, 3월 중순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가 있기 때문에 ‘고비’가 지나고 나면 시장금리가 안정화로 접어들 것이란 관측이다. 

      무엇보다 3월에는 회사채 발행 자체가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분기말로 수요가 떨어질 수 있지만, 기업들의 결산 시즌과 맞물려 발행도 줄어들면서 수급 면에서 조정이 될 전망이다. 

      최근의 러시아-우크라이나 간 긴장이 크레딧 시장에 미칠 영향은 ‘장기화’ 여부가 가를 전망이다. 현재로선 간접적으로 금리 변동성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장기전으로 이어진다면 원자재 가격 상승 등 인플레이션 심화를 부추기게 된다. 이때 발전사, 한국전력, 철강사 등 원자재를 많이 사용하고 구입하는 기업들에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그동안 채권의 질에 상관없이 크레딧을 멀리하는 분위기가 심화됐는데, 현재 크레딧 스프레드가 가격적으로 상당히 매력적인 구간이기 때문에 3월 초 이후 시장이 조금 안정되면 매수세가 어느 정도 붙을 것으로 본다”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갈등은 크레딧 시장에 직접적인 영향은 크지 않지만 장기화되면 물가상승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간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