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대선후보 판박이 자본시장 공약…변수는 개미투자자 세금 득실 판단
입력 2022.02.24 07:00
    대선 앞두고 경기 침체…주식·코인 시장 띄우기가 화두로
    여야 후보들, 물적분할·ICO 등 주요 사안에 비슷한 공약
    李 "증권거래세 폐지" vs. 尹 "주식양도소득세 폐지" 차이
    세금 공약 평가는 분분…"실질 떠나 표심에 영향 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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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여야 대통령 후보들은 주식시장에서 소액주주들의 공분을 샀던 제도를 정비하고 가상자산은 폭넓게 허용하는 등 판박이 자본시장 공약을 내고 있다. 정책이 대체로 엇비슷한데 주식 관련 세금 정책은 크게 엇갈린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증권거래세 폐지,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양도소득세 폐지안을 각각 꺼내들었다.

      개미투자자들이 내년부터 전면 확대되는 양도소득세와 이익 실현과 무관하게 붙는 거래세 중 어느 쪽을 더 부담스러워 하느냐가 대선 표심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지난 수년간 개인 투자자들은 주식과 가상화폐 시장에서 자산을 증식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작년까진 분위기가 괜찮았지만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경기가 차갑게 식었다. 자본시장 분위기를 어떻게 회복시키느냐가 대선의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고, 후보들은 잇따라 정책을 내놓았다.

      이재명 후보는 지난달 SNS를 통해 ‘물적분할 후 재상장 금지’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모회사와 신설 자회사의 동시 상장 금지, 모회사 주주에 주식매수청구권 부여 방침을 밝혔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도 신사업을 떼내 별도 상장할 경우 기존 모회사 주주들에게 신주인수권을 주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물적분할은 작년과 올해 주식 시장의 뜨거운 감자였다. 기업들은 손쉽게 성장 자금을 조달한 반면, 소액주주들은 알짜 사업이 빠져 모회사 주식 가치가 훼손된다며 반발해왔다. 두 후보의 공약은 대기업과 오너 일가의 결정에 끌려갈 수 밖에 없는 소액주주에게도 선택권을 주겠다는 취지다.

    • 개인투자자들은 공매도 역시 기관투자가와 외국인에게만 허용된 불공평한 제도라며 비판해 왔다. 이에 정부가 공매도를 금지할 때도 있었지만 실효성은 크지 않았고, 오히려 한국 시장의 후진성만 드러낸다는 지적이 있었다. 공매도 폐지는 새 정부에도 득이 되지 않기 때문에, 여야 후보는 공매도 제도의 형평성을 보완하기로 했다. 이 외에 대주주의 불법행위, 주가조작 등을 강력히 제재하는 등 개인 투자자 보호 강화에도 뜻을 같이 하고 있다.

      이재명 후보와 윤석열 후보는 가상자산 법제화에 공을 들이고 있다. 개인투자자들은 이번 정부의 규제 기조에 부담을 느껴 왔다. 여야 후보는 이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 가상자산 공개(ICO)를 허용하고, 가상자산 양도·대여 소득 기본공제 한도도 현행 250만원에서 5000만원까지 늘리겠다는 계획도 공히 밝혔다. 투자자 보호 및 시장 교란 방지 장치에도 공을 들일 계획이다.

      벤처캐피탈(VC) 시장의 젖줄인 모태펀드에 대해 이재명 후보는 10조원 확충, 윤석열 후보는 2배 확대 계획을 제시했다. 창업연대기금 1조원 조성 및 유니콘 기업 100개 육성(이재명), 스타트업 성장 공정거래시스템(윤석열) 등 공약도 있다. 유망 초기 기업의 성장은 이후 개인투자자의 투자 기회로 이어질 수 있다.

      이처럼 여야 후보들의 자본시장 관련 공약은 대동소이하다. 투자자 표심 확보라는 목적이 같으니, 개인투자자들의 목소리가 일치하는 영역에서 굳이 다른 목소리를 낼 이유가 없었다는 지적이다. 한 후보가 선심성 공약을 내걸면 다른 후보가 즉시 받아가는 모습도 보인다.

      두 후보의 공약이 유일하게 엇갈리는 부분은 주식 관련 세금이다.

      윤석열 후보는 작년 말 ‘자본시장 선진화 공약’을 통해 증권거래세를 폐지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었으나, 이후 이를 뒤집고 주식양도소득세 폐지로 선회했다. 이를 비판하던 이재명 후보는 지난 21일 증권거래세 폐지 공약을 담은 '자본시장 개선 공약'을 발표하며 윤 후보의 대척점에 섰다.

      정부는 내년부터 금융투자소득 과세를 전면 확대 시행한다. 종전엔 대주주만 양도소득세를 부담했는데, 앞으론 개인투자자도 연간 5000만원 이상의 양도차익을 거두면 세금을 낸다. 대신 증권거래세는 인하해 가기로 했다. 정부는 금융투자 손익을 통산해 과세를 합리화하기 위함이란 입장인데, 두 후보의 공약은 정부안과는 거리가 있다.

      양도소득세 과세대상은 2000년 100억원 이상 주식 보유 주주에서 현행 3억원까지꾸준히 낮아졌다. 외국인 대주주 요건(지분율 25%)은 강화되지 않는데 국내 주주의 부담만 커진다는 역차별 논란도 있었다. 국내 과세 요건이 강화할 때마다 대주주 회피 물량이 쏟아지며 주가가 하락하기도 했다. 대주주가 아닌 투자자에 소득세 부담을 지우면 증시 불안을 더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 각 후보에 정부안 폐지를 요청하는 목소리도 있다.

      한 자본시장 관계자는 “정부가 양도소득 과세를 확대하겠다는 취지는 좋지만 세율이 높고 고액 개인투자자들이 빠져나갈 수 있다”며 “시장이 꺾이고 양도소득세는 덜 걷힐 상황이라 시기가 좋지 않다”고 말했다.

      증권거래세는 거래만 이뤄지면 세금이 부과된다. 시장 왜곡 우려가 있어 이론적으로는 폐지하는 것이 맞다는 의견도 있다. 반면 완전 폐지할 경우 외국인의 국내 주식매매에 대해 과세를 할 수 없고, 고빈도 매매 및 자전거래 등 폐단이 나타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정부도 증권거래세를 유지하되 세율을 낮추는 정책 기조를 보여 왔다.

      여야 후보간 자본시장 공약의 변별력이 크지 않으니 결국 개인투자자가 어느 쪽 세금 공약이 유리하다고 판단하느냐가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후보는 증권거래세가 '개미와 부자가 똑같이 낸다'는 점을, 윤석열 후보는 '개미들이 양도소득세를 원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정부는 2020년 금융투자소득 과세 계획을 밝히며 전체 투자자의 95%는 증권거래세 인하에 따라 세부담이 감소한다고 밝힌 바 있다.

      다른 자본시장 관계자는 “세금 확보엔 여야가 없고, 어느 후보든 세수 재원을 놓치고 싶지 않을 것”이라며 “실제 효과가 어떻든 두 후보의 엇갈린 공약이 개인 투자자들의 투표 심리를 가를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