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 배분도 번거롭다…장기 투자 모색하는 국내 출자자(LP)들
입력 2022.02.24 07:00
    시장 불확실성 확대에 자금 회수해도 재출자 부담 커
    대형 LP들 '우량기업에 오래 투자하자' 기조 강해져
    안정적 배당만 받아도 인력 부족한 LP들 부담 줄어
    시장 트렌드지만 "PEF 역동성 떨어뜨린다" 지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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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국내 기관출자자(LP)들이 자산을 장기 보유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좋은 투자처를 매번 발굴하기 어려워지는 상황에선 안정적인 배당 수익만 나온다면 굳이 자금을 회수하고 배분하는 수고를 감수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LP들의 자산 규모는 늘어나고 관리 인력은 부족한 터라 자산 장기 보유 움직임이 잦아질 것으로 보인다.

      작년 7월 스타벅스커피인터내셔널(SCI)은 가지고 있던 스타벅스커피코리아 지분 50% 중 32.5%를 싱가포르투자청(GIC)에 팔았다. 당시 GIC 외에 국민연금도 관심을 보였는데 SCI의 지분 매각 소식을 늦게 접한 터라 성과는 거두지 못했다. 국민연금은 회수에 연연하지 않고 스타벅스커피코리아를 장기로 보유하겠다는 의도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교직원공제회는 작년 30년 만기의 부동산 투자 블라인드펀드를 결성했다. 이 펀드는 주로 국내 부동산 자산 투자를 위해 만들었다. 굳이 부동산을 몇 년마다 사고 팔지 않더라도 임대료 수익만 안정적으로 나오면 쏠쏠한 장기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봤다. 새마을금고중앙회도 작년 대체투자본부 부동산 투자 조직을 떼내 프로젝트금융본부를 만들었다. 상대적으로 장기 투자가 용이한 실물 투자를 키우려는 것이란 평가가 있었다.

      대체투자 시장이 안정적으로 성장할 때는 주기적으로 돈을 나눠주고 회수해도 돈을 버는 데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최근 수년간은 코로나 팬데믹, 국제 정세 등 변수로 인해 투자 시장의 불안정성은 커지고 있다. 전통 산업은 외면받는 반면 일부 초우량 기업엔 돈이 몰리는 양극화는 심해졌다. 갈수록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는 상황에선 기존 전략을 고수하기 쉽지 않다.

      사모펀드(PEF) 등 대체투자 영역에서도 안정적이고 다양한 투자 전략이 중요해졌다. LP들은 배당만 꾸준히 나와줘도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보기 시작했다. 아울러 이왕 투자한 좋은 기업을 오래 보유하려는 경향은 강해지고 있다.

      이는 국내 LP들이 처한 상황과 맞물려 있다. 운용해야 하는 자산은 매년 늘어나지만 이를 관리할 일손은 넉넉지 않다. 세계적 큰손인 국민연금조차 전문가 확충은 커녕 기존 인력을 지키는 데 급급한 모습이다. 예전처럼 개별 투자건을 일일이 살필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새마을금고중앙회와 같이 프로젝트펀드 영역에서 존재감을 발휘하는 경우도 있지만, 행정공제회처럼 재간접펀드에 투자해 관리 부담을 줄이려는 곳도 늘고 있다.

      인력 여유가 없는 LP 입장에선 나갔던 자금이 돌아오는 것이 달가운 것만은 아니다. 기껏 1조원을 출자했는데 5000억원이 돌아오면, 순수 투자 집행금은 5000억원에 불과해진다. 투자 집행 실적에 허덕이지 않으려면 좋은 기업에 오래 발을 걸쳐 두는 것이 편하다. 망할 위험이 없고 배당도 적당히 해주는 기업이라면 감시하는 데 애를 쓸 이유가 없다.

      한 PEF 업계 관계자는 “LP 입장에선 투자금을 회수해도 또 출자해야 하는 부담이 크다”며 “안정성 있고 배당도 적당히 하는 기업이라면 경영에 간섭하거나 회수 조건을 설정하는 데 힘을 빼지 않아도 되니 굳이 회수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 이런 흐름은 해외에서 먼저 있었다. 해외 LP들은 원래 국내 LP들보다 투자 만기를 여유있게 주는 경우가 많았지만 최근엔 우량 기업을 오래 보유하려는 목적이 얹어졌다. 투자 규모가 갈수록 커지면서 경영권 지분을 원하는 시기에 팔기 어려워진 영향도 있었다.

      글로벌 LP의 기조에 맞춰 운용사(GP)들도 장기 전략을 펴고 있다. KKR, 칼라일, TPG 등 유수의 글로벌 PEF들은 짧게는 15년, 길게는 30년까지 펀드 만기를 설정하기도 했다. 우량 자산을 새로운 펀드로 옮겨 담는 컨티뉴에이션펀드(Continuation Fund)도 이런 전략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국내에선 IMM PE가 롱텀(Long term) 펀드 전략을 내놨다. 첫 투자 대상은 작년 말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이 내놓은 삼성생명 지분 1.7% 중 1%다. 성장성이 크지 않지만 1등 기업이고 사업이 안정적이라는 점에 주목했다. 이 외에 안정성 있는 우량 기업 한 두 곳에 더 투자할 의향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외에선 한 하우스 안에서도 산업 펀드의 자산을 목표 수익률이 낮은 인프라 펀드로 옮기기도 한다. 이 경우 입찰 등 가격 설정 절차를 거치긴 해야 하지만 우량 자산을 계속 보유할 기회를 가질 수 있다. 국내에서도 이런 사례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 일부에선 리츠(REITs)를 활용해 자산을 사실상 영구 보유하려는 고민을 하고 있다.

      LP들의 자산 장기 보유 전략을 긍정적으로만 볼 것은 아니란 평가도 있다. 일부 불가피한 면이 있지만, PEF 시장의 역동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것이다. 운용 자산을 20년간 묶어두면 LP는 다른 자산을 관리하는 데만 집중하면 되니 편하지만, PEF의 위험투자 성격은 옅어진다. 지금 의사 결정을 한 담당자는 20년 후에는 없기 때문에 실패한 투자가 되더라도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워진다는 지적도 있다.

      다른 PEF 업계 관계자는 “PEF 투자는 결국 회수를 하기 위한 것인데 자금을 장기로 깔아두는 것이 꼭 긍정적인지는 의문”이라며 “우량 자산에 오래 투자한다는 취지는 좋지만 PEF 시장의 긴장감을 떨어뜨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