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에 죽고 文에 살아난 두산그룹
입력 2022.03.03 07:00
    취재노트
    脫원전 정책에 직격탄 맞은 두산
    막대한 공적자금에 기사회생
    외형은 축소…사업 재편은 ‘결실’
    文 원전 정책 “원전 기저 전원으로 활용”
    탈원전 기조에 원전 생태계 붕괴한지 5년만
    다시 주목받는 두산그룹…주식 시장도 화답
    정책 리스크 대비 반드시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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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두산그룹이 채권단 관리 체제를 벗어났다. 유동성 위기가 본격화한지 2년만, 채권단과 재무구조 개선 협약을 맺은지 20개월여 만이다.

      두산그룹 자체의 노력은 인정할만하다. 그동안 진행된 자구안을 통해 수 많은 자산들을 매각했고 외형은 크게 쪼그라들었다. 회사를 떠나야했던 임직원은 물론, 수 차례의 유상증자를 통해 주주들도 고통을 분담했다. 한 때 재계 10위권을 넘나들던 두산그룹은 이제 국내 굴지의 대기업과는 비교하기 애매한 수준이 됐다.

      두산그룹 유동성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을 따져보면 정부 정책에 따른 원전 사업의 ‘중단’이 가장 큰 요인이었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주력 사업을 멈춰야했던 그룹은 자의반타의반으로 사업 재편을 꾀해야만 했다.

      대마불사(大馬不死). 마치 원전 사업의 중단에 대한 보상이라도 하듯이 국책은행(산업은행, 수출입은행)들은 두산그룹에 막대한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때마침 현 정부의 추진과제 중 하나인 그린뉴딜정책이 추진되며 그룹은 ‘친환경’ 기업으로 탈바꿈을 시도했다. 그러다보니 한편으론 현 정부의 정책에 가장 발을 잘 맞추게 됐다.

      외형은 쪼그라들었지만 그린뉴딜 정책 등에서 ‘두산’이 언급될 때마다 주가로 대변되는 기업가치는 상승했다. 올해 ㈜두산의 주가는 3년내 신고가를 경신했고 10년내 최고 수준에 근접해 있다.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간 것은 물론이고 부실을 떨어내며 오히려 더욱 슬림하고 단단한 기업이 됐다는 평가마저 나온다. 

      “문재인 정부의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그룹이자, 반대로 가장 큰 수혜를 입은 그룹”. 이것이 현재의 두산을 바라보는 투자자들의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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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년 6월 19일 고리원전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

      대통령 임기 말, 두산그룹에 안긴 가장 큰 선물은 ‘탈원전 기조’의 번복이다.

      대통령 선거를 불과 2주 앞두고 문재인 대통령은 현 정부의 핵심 정책이던 탈원전 기조를 완벽하게 뒤엎었다. 지난 25일 문 대통령은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 현안 점검회의에서 “원전을 향후 60년간 주력 기저 전원으로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집권 직후인 2017년 6월 ‘신규 원전 건설 백지화’를 선언한지 채 5년이 지나지 않은 시점이다. 대통령의 이번 발언 또한 정부 차원의 중장기 전략에 빗대어 정교하게 설계된 것이었는지는 지켜봐야한다.

      대통령의 발언에 두산그룹 계열사들의 주가는 연일 고공행진중이다. 채권단 관리에서 벗어났다는 호재도 분명 반영됐지만, 멈춰선 원전사업을 되돌릴 수 있다는 투자자들의 기대감이 투영된 측면이 더욱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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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원전을 기초로 한 두산그룹의 사업체계는 이미 재편돼 있다. 

      ㈜두산을 중심으로 한 전자, 두산밥캣의 건설장비, 두산중공업의 에너지 사업 등 세 축이 자리잡았다. 두산중공업은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가스터빈과 수소터빈, 풍력발전, 소형원전(SMR), 연료전지 등의 신성장 사업에 집중하겠단 의지를 밝혀왔다. 최근의 유상증자를 통해 확보한 자금의 상당 부분은 해당분야(가스터빈 3000억원, 풍력발전 2000억원, SMR 1500억원, 연료전지 700억원)에 투입한다. 아직은 그룹의 주력으로 삼기엔 과거의 원전과 비교해 글로벌 경쟁력이 미미한 분야들이다.

      새 정부의 구체적인 중장기 에너지 계획이 수립돼야 명확해지겠지만 현재로선 두산그룹의 원전 사업 정상화에 대한 기대감은 상당히 높다. 그룹 차원에서 이를 대비한다면, 사업 구조의 재편 그리고 중장기 전략의 수정도 이뤄져야 한다.

      그룹 미래 먹거리에 대한 새 틀을 마련해 둔 상황에서 원전 사업이 단순히 추가되는 수준으로 보긴 어렵다. 탈원전 정책 기조 속에서 발생한 ‘기회비용’에 대한 값을 치러야하는 시점이 다가온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무너진 원전 생태계를 복원하는 것은 범 정부 그리고 원전 사업에 앞장선 기업이 짊어질 숙제다. 2017년 원자력산업실태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원전 건설과 관련한 중소 협력사 비중은 약 93%, 이 가운데 도산 위기에 처한 기업들이 상당수이다.

      지난 5년 두산그룹은 정책 리스크에 가장 노출된 그룹중 하나였다. 

      새 정부 그리고 그 다음 정부에서 이 같은 위험에 또 다시 노출되지 않으리라고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다수의 기업들, 그리고 두산그룹이 주력으로 삼는 ‘수소 에너지’ 사업도 원전 정책이 증명 하듯 언제든 뒤집힐 수 있다. 그렇기에 그룹의 지향점, 장기적이고 뚜렷한 방향성을 투자자들에게 명확히 제시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창립 이래 가장 큰 위기를 넘긴 두산그룹에 축하를 보내는 것과는 별개로 그룹이 앞으로 있을지 모를 외풍에 얼마나 잘 대비하고 있는지 투자자들은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