봇물 넘치는 주주제안에도 불구, '알아서' 침묵하는 증권사 리포트
입력 2022.03.11 07:00
    주주제안, 즉각적으로 주가에 영향 미칠 요소
    증권사 리포트 언급조차 안해
    'sell' 리포트 없는 것과 같은 이유
    회사와 마찰 꺼리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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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동학개미 운동에서 시작된 주식투자 열풍이 ‘세이브 코스피’ 운동으로 번지면서 주주들의 권리 찾기 움직임이 거세지고 있다. 이에 발맞춰 운용사들을 중심으로 주주제안이 봇물처럼 이어진다. 그럼에도 증시 최전방에 있는 증권사들은 침묵한다. 어느 증권사 리포트에도 해당 주주제안에 대한 의견을 찾아 볼 수 없다는 지적이다.

       주주행동주의 움직임을 보이는 운용사가 어림잡아 다섯 곳은 될 정도로 주주총회 시즌을 앞두고 이들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얼라인파트너스는 이수만 회장의 개인회사인 라이크기획과의 20년 넘게 지속 중인 프로듀서 용역 계약을 종료하라고 요구한다. 이를 승인하는 이사회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곽준호 KCF테크놀로지 전 최고재무책임자(CFO)를 감사로 선임하는 주주제안을 했다. 앞서 제안한 배당 확대에 대해선 SM엔터테인먼트가 수렴해 창사 이후 처음으로 배당을 실시하기도 했다.

      VIP자산운용은 지난달 9일 한라의 지주회사인 한라홀딩스에 자사주 매입 후 소각과 자회사 지분 100% 취득을 요구했다. 더불어 중기 주주환원정책을 수립해달라고 제안했다.

      안다자산운용은 SK케미칼에 배당 증대와 함께 소액주주 권리 극대화를 위한 ‘집중투표제’ 도입을 요구했다. SK케미칼의 감사위원회 위원인 사외이사 후보로 박철홍 안다자산운용 ESG본부 대표를 추천하기도 했다. 법률과 ESG 전문가인 박철홍 대표가 지배구조 투명성을 높이고 이사회 운영의 독립성을 확보하라는 취지다.

      트러스톤자산운용도 언더웨어 전문회사인 BYC에 주주서한을 보내 합리적인 배당정책 수립과 부동산 자산 효율화 활용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의 의견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이러하다.

      우선은 배당을 늘리고, 자사주 매입 및 소각 등 적극적인 주주환원 정책을 요구하고 있다. 이 정도는 이전부터 주주서한 등을 통해서 회사에 제안이 됐던 부분들이다. 주주서한은 어디까지나 회사에 “이렇게 해주세요”라는 요청에 불과하다. 실질적으로 회사가 어떠한 행동을 할 이유는 없다. 이전과 달라진 점은 이런 주주서한을 보낼 때 공개함으로서 소액주주들의 주의를 환기시키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점이다.

      무엇보다 달라진 양상은 ‘주주제안’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주주서한과 주주제안의 무게감은 확연히 차이가 난다. 주주서한이 ‘내용증명’ 수준이라면 주주제안은 상법상 주주들의 권리로 주총 안건에 올라와 통과가 된다면 법적 효력을 지니게 된다.

      최근의 주주제안 흐름은 사외이사 선임에 대한 안건 요구가 늘어나는 추세다. 올해 주주총회에서도 SM엔터테인먼트의 경우 감사 선임을 놓고 SM엔터테인먼트 측과 얼라인파트너스 측의 표대결이 이뤄진다. 신규 감사로 얼라인파트너스의 감사인이 선임되면, 해당 감사는 이사회를 감시하고 잘못된 의사 결정을 내리는 이사진들에 소송을 할 수 있다. 아직 국내에 도입되지 않은 ‘이사의 책임 및 충실 의무’를 감사 선임을 통해서 가능케 할 수 있다.

      이런 주주제안을 하는 이유는 주가 부양을 위해서다. 주식의 가치보다 주가가 현저히 낮다고 판단되었을 때 이에 대한 개선 요구를 회사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배당을 늘리건, 자사주를 매입한건, 나아가 신규 감사를 선임할 경우 주가에 즉각적인 영향이 미칠 수 있다. 일테면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회장과 라이크 기획과의 용역계약이 새로운 감사 선임으로 바뀌게 된다면 이는 주가에 즉각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하지만 국내 증권사 어느 곳도 해당 주주제안에 대한 분석을 다루고 있지는 않다. 정부에서조차 '기업지배구조보고서'의 공시 의무를 강화하고 그 대상을 넓히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했다. 특히 내부거래에 대해선 철저하게 공개하도록 유도하는 방향이다.

      예를 들어 SM엔터테인먼트의 경우 대부분의 증권사 리포트들이 코로나 사태 이후의 높아진 지적재산권(IP)의 가치 등에 집중됐다. 그나마 언급이 되더라도 회사가 받아들인 제안 정도에 대한 긍정적인 코멘트가 다수를 이룬다. 기업지배구조보고서에 실릴 만한 내용에 대한 분석은 찾아보기 힘들다.

      더불어 주주제안의 내용이나 해당 이슈가 받아들여졌을때 주가 영향에 대한 리포트를 낸 곳도 없다. SK케미칼도 안다자산운용이 제시한 주주제안과 관련한 리포트는 찾아 볼 수 없다. 비단 이들뿐만 아니라 주주제안에 대한 분석 리포트는 아직까지 증권사가 다루지 않는 영역이다. 국내 증권사에 ‘SELL’ 리포트가 없는 것과 같이 주주제안을 다루는 것이 ‘금기’시 되기 때문이다.

      이는 증권사 리서치의 구조와도 관련이 있다. 증권사들은 회사 IR팀과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 회사에 대한 정보를 파악한다. 회사 탐방 등 회사의 도움을 받아야 할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그러다 보니 회사에 부정적인 리포트를 내는데 있어서 주저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증권가에선 소문처럼 어느 애널리스트가 회사에 ‘출입제한’ 됐다라는 내용이 심심찮게 도는데 사실 여부와 무관하게, 애널리스트 입장에선 회사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를 잘 표현한 말이다.

      마치 관행처럼 되어 있다 보니 이제는 굳이 회사가 나서지 않아도 애널리스트들이 알아서 몸을 사리는 일이 비일비재 하다는 설명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주주제한 관련 리포트, 셀 리포트 등이 안나오는 구조적인 이유가 있다”라며 “회사가 굳이 나서지 않아도 애널리스트들이 이런 내용을 담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