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확장 고민에…'플랫폼' 우군 찾기 나선 CJ ENM
입력 2022.03.25 07:00
    그룹 성장동력 핵심 '콘텐츠' 사업 확장에 고민
    KT에 투자 후 협업 계획…플랫폼 활용 나설 듯
    SM엔터 인수 중단, 물적분할 철회 등 전략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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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CJ그룹이 지난해 중기비전으로 ‘향후 3년간 10조원 이상 투자’ 포부를 밝힌 후 콘텐츠 사업을 맡은 CJ ENM도 전략 마련에 분주하다. 지난 연말 미국의 엔데버콘텐트를 인수하고, 올초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티빙’의 외부투자 유치를 완료하며 확장에 속도를 내고 있다. SM엔터 인수 등 일부 계획은 제동이 걸린 가운데 스튜디오 신설, 외부 '동맹 맺기' 등에 나서고 있다.  

      24일 CJ ENM은 이사회를 열고 현금 출자 방식으로 예능과 드라마, 영화, 애니메이션 등 멀티 장르의 콘텐츠 제작 스튜디오를 신설하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말 물적분할 방식으로 스튜디오를 신설한다고 밝혔지만 주주 반발과 당국의 규제 마련 가능성 등으로 계획을 수정한 것이다. CJ ENM은 물적분할 논란 이후 대기업 중에서는 처음으로 계획을 잠정 중단했는데, 콘텐츠 제작이 핵심 사업역량인 점과 올해 올리브영 상장 등 그룹 차원의 과제가 많은 상황을 감안하면 굳이 이슈를 키울 위험을 피하자는 위한 판단이었다.

      다만 ‘물적 분할’이 아닐 뿐, 신규 스튜디오를 설립하는 건 그대로이기 때문에 기존 인력 재배치, 사업 개편 등 뒤따르는 내용을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기존 CJ ENM의 스튜디오도 콘텐츠 제작을 담당하고 있어 과연 기존 사업부와 어떤 차별점을 보여줄 지도 관건이다. 

      앞서 22일 CJ ENM은 KT와 콘텐츠 사업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KT스튜디오지니(스튜디오지니)에 1000억원 규모 지분 투자를 한다고 발표했다. CJ ENM은 ▲KT스튜디오지니가 제작한 콘텐츠 구매 및 채널 편성 ▲KT스튜디오지니와 콘텐츠 공동제작 ▲음원사업 협력 ▲실감미디어 사업을 위한 공동펀드 조성 ▲미디어∙콘텐츠 분야 공동사업을 위한 사업협력위원회 구성 등에 나선다. CJ ENM 측은 “스튜디오지니 투자는 tvN, OCN 등 CJ ENM 캡티브 채널과 OTT 티빙의 콘텐츠 경쟁력을 높이려는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MOU가 대대적인 ‘콘텐츠 동맹’으로 비춰지고 있지만, 아직은 콘텐츠 사업을 두고 고민이 많은 CJ와 KT 두 대기업의 ‘고민 상담’ 단계란 평이다. CJ ENM는 OTT로 티빙이 있고, 콘텐츠 분야는 국내에서 우위를 가지고 있어 KT 측과 단순히 ‘콘텐츠 동맹’에 나설 유인은 크지 않다. 다만 불과 지난해만 해도 국내 OTT들 사이에서 ‘1위만 살아남는다’ 식의 긴장감이 있었지만 생각보다 성장 폭이 미세하고 글로벌 진출 등 공동의 과제가 많아 협업 방안을 찾는 분위기다.  

      시장에서는 CJ ENM이 통신사인 KT와의 협업을 통해 플랫폼 비즈니스에서 시너지를 내려는 목적이 큰 것으로 분석한다. 스튜디오지니가 계열사로 두고 있는 스토리위즈(웹툰·웹소설 등 기획·제작·유통), 밀리의서재(독서 플랫폼), 지니뮤직(음원 스트리밍) 등 IP 및 콘텐츠를 ‘뽑아낼’ 플랫폼들과의 시너지 및 활용 가능성이 있다.

      지난해 CJ ENM이 SK브로드밴드, KT, LG유플러스 등 IPTV 업체들과 콘텐츠 대가(수신료)를 두고 법정 공방까지 나서며 갈등을 빚은 점을 고려하면 일종의 ‘화해의 제스처’로도 볼 수 있다. CJ ENM 입장에서도 결국 플랫폼 사업자와 함께 가는 것이 ‘윈윈(win-win)’이라는 판단에서다. 

      CJ ENM과 유료방송 플랫폼 사업자간의 갈등은 뿌리가 깊다. 지난해 6월에는 결국 모바일 IPTV 서비스 사용료에 대한 LG유플러스의 협상이 결렬되면서 CJ ENM 채널 10개의 실시간 방송 서비스가 중단되기도 했다. CJ ENM 측은 당시 KT의 ‘시즌’과도 협상을 진행했는데, CJ ENM이 제시한 ‘전년 대비 1000% 인상’ 요구에 KT가 난색을 표하기도 했다. 결국 올해 2월 CJ ENM이 LG유플러스를 상대로 제기했던 손해배상 소송을 취하하며 콘텐츠 사용료를 둘러싼 갈등은 휴전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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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T도 고민이 많기는 마찬가지다. 지난해 스튜디오지니가 출범하며 이제 막 콘텐츠 사업에 투자하고 있지만 사업의 특성상 단기간에 자체적으로 시장 내 경쟁력을 키우기는 쉽지 않다. 이에 투자 유치 등 외부와의 협력 방안을 찾아왔다. 콘텐츠 부문에 영입한 외부 인물들이 김철연 KT스튜디오지니 대표를 포함해 CJ ENM 출신이 다수인 점도 CJ 측과의 인연(?)을 키운 배경으로 전해진다.  

      CJ ENM의 1000억원 투자는 ‘보증금’ 차원인 것으로 해석된다. CJ그룹 측은 “이번 투자는 KT와 전반적으로 협업하는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향후 여러 방안들을 고민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KT 측은 CJ ENM이 첫 SI(전략적 투자자)로 나서면서 스튜디오지니가 ‘설립 1년만에 기업가치 1조원을 달성’했다고 밝혔지만, 이번 투자는 밸류에이션(기업가치)에 기반한 일정 지분 취득이 아니기 때문에 해당 밸류를 시장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기는 힘들다는 평이다. 투자자인 CJ 측은 스튜디오지니의 기업가치를 밝히지 않았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CJ가 콘텐츠·음악 비즈니스를 잘 하고 있지만 플랫폼이 약하다보니 이 부분에서 협력 방안을 계속 찾아왔다"며 "SM엔터 인수를 고려했던 것도 SM엔터가 가진 디어유(팬 커뮤니티 플랫폼) 등으로 음악 플랫폼 확장을 노렸을 것이고, KT와 손잡은 것도 콘텐츠보다는 지니뮤직 등 플랫폼 시너지 차원의 투자로 보인다"고 말했다. 

      투자 및 사업 개편 등을 총괄할 컨트롤타워 필요성이 커지며 최근 조직개편도 단행했다. 성장전략실을 신설하고 전략적 투자 및 미래 성장 신사업 양성에 속도를 낸다는 계획이다. 성장전략실은 회사 중장기 전략과 연계한 M&A(인수합병), IR 업무 등을 전담한다. 성장전략실을 총괄할 임원으로는 김윤홍 경영 리더를 영입했다. 김 경영 리더는 씨티그룹 글로벌마켓아시아홍콩 IBD 오피스 소속 MD로 아시아·한국 시장에서 다수의 M&A 및 자본시장 딜(deal)을 담당했다. TMT(테크놀로지·미디어·텔레콤) 전문가로 크래프톤, 카카오, 넷마블 등의 투자 유치를 진행한 이력이 있다. 

      한편 CJ ENM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국내 대표 엔터 기획사인 SM엔터테인먼트의 최대주주인 이수만 총괄 프로듀서의 지분을 인수하는 협상을 이어갔지만 현재 중단해 사실상 발을 뺀 상태다. CJ 측의 인수 의지는 높았지만, 이 프로듀서 측이 제시하는 거래 조건과 의견 차를 좁히지 못했다. 또 SM엔터를 인수할 시 CJ그룹의 지배구조 기준 공정거래법과 지주회사법 등 규제를 충족하기 위해선 복잡한 과정이 뒤따르는 점도 고려된 것으로 파악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