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적자 시장, 그러나 버릴 순 없는…다시 중국으로 향하는 현대차
입력 2022.03.29 07:00
    베이징현대 중국 점유율 2% 미만
    전세계 제 1시장, 조 단위 적자에도 버릴 순 없어
    사드 사태 이후 연속 적자 행진
    결국 1조원 대 유상증자 결정, 현대차 5000억원 투입
    전동화 전략에 승부수 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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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중국시장은 현대차에 계륵(鷄肋)과 같은 존재이다. 해외 주요 사업장 대부분은 흑자로 돌아섰지만 중국 법인은 지난해에 1조원 이상의 적자를 기록했다.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 배치와 관련한 중국의 보복 조치 이후 좀처럼 시장 상황이 되살아 나지 못하는 가운데 현대차는 다시 한번 대규모 투자를 단행했다.

      이는 수익성을 끌어올리겠단 측면 보단 전세계를 통틀어 가장 큰 시장을 버릴 수는 없다는 판단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내연기관의 종식을 선언한 상황에서 현대차는 다양한 전동화 모델 투입을 통해 본격적인 이미지 쇄신에 나서겠단 전략을 쓸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차의 중국 합작 법인인 베이징현대(BHMC; 北京现代汽车)는 지난주 총 9억4200만달러(총 60억위안; 약 1조1500억원)를 증자한다고 밝혔다. 공동 대주주인 BAIC인베스트먼트와 현대차는 각각 4억7100만달러(30억위안; 약 5750억원)을 출자해 지분율(50%)씩을 유지한다.

      현대차 중국법인은 해외 시장 가운데 유일하게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지난해 총 포괄손익은 마이너스(-) 약 1조129억원으로 전년(- 1조1520억원)에 비해 손실 규모가 줄었으나 여전히 조단위 손실을 했다. 이에 반해 2020년 1조200억원규모의 적자를 기록했던 미국공장 법인은 지난해 2370억원의 흑자를 기록했고, 브라질법인 또한 3년만에 흑자로 돌아섰다. 미국 판매 법인, 인도·체코·터키·러시아·캐나다·호주·유럽법인 모두 흑자를 기록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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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중국 시장은 현대차에 조 단위의 수익을 안겨주던 시장이었다.

      2012년 중국과 일본이 센카쿠열도(댜오위다오)를 둘러싸고 갈등을 빚었을 당시 연간 두 자릿수 성장을 기록하던 일본 완성차 업체의 중국시장 내 점유율이 급락했다. 그 자리를 현대차가 꿰차며 점유율을 끌어올렸고 현대차의 중국 시장내 점유율이 약 7%에 육박하던 2013~2014년엔 연간 약 2조원에 달하는 수익을 창출했다.

      그러나 그 효과는 오래가지 못했다. 하이브리드 차량의 세계적인 기술력을 보유한 토요타(TOYOTA)는 중국 현지 기업에 기술 이전 등을 약속하며 대규모 투자에 나섰고, 혼다(HONDA)는 스포츠유틸리티(SUV)를 대거 투입하며 중국 시장의 침체를 빠르게 회복했다. 지리자동차(吉利汽車), 창청자동차(長城汽車)와 같은 중국 현지 기업들의 추격은 매서웠다.

      베이징현대는 사드 보복 조치 직전인 2016년까지도 1조원 이상을 벌어들였지만 사드 사태 이후부턴 돌파구를 전혀 찾지 못하고 있다. 현재 중국 내 현대차의 점유율은 2%에 채 못미치는 것으로 전해진다. 연속 적자를 기록 중인 둥펑위에다기아(东风悦达起亚汽车; 기아차 중국합작법인)도 현재 상황이 크게 다르진 않다.

      중국 시장의 부진은 5년 넘게 지속했고, 정몽구 명예회장에서 정의선 회장으로 권력이 이양되는 시점에서 문책에 가까운 인사도 진행됐다. 설영흥 전 부회장·담도굉 전 부사장 등 중국 유력 인사들과 관시(關係·특수관계)에 능하며 정몽구 명예회장의 측근으로 분류되던 인사들이 물러났다. 정의선 부회장의 측근인 권문식 부회장이 그 자리를 대신했으나 역시 오래가지 못했다. 

      권 부회장의 자리를 물려 받았던 이광국 사장도 중국 시장의 부진을 만회하진 못했다. 현재는 고문으로 임명된 이광국 사장을 대신해 중국사업은 이혁준 전무가 맡고 있다. 사실상 부회장급 사업에서 전무급 사업으로 격하 됐다.

      자동차 업계 한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은 신상필벌이 가장 엄격한 그룹 중 하나이다”며 “중국사업이 회복기에 접어들었을 때 조직의 격상이 있지 않을까 예상한다”고 말했다.

      중국 시장에서 조 단위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상황에서 현대차가 단기간 내 점유율과 수익성을 끌어올리긴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최근의 투자는 큰 수익을 기대하기 보단 글로벌 제 1 시장에서 미약하지만 점유율을 유지하겠단 의미에 ‘방점’이 찍혀있다는 평가다.

      이제까진 외국 기업이 중국 내 법인의 지분 50% 이상을 보유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다만 지난해 중국 정부는 ‘외상투자 진입 투자 관리 조치’를 통해 ‘승용차 제조부문에서 외국인 투자의 지분율을 제한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중국 정부의 이 같은 조치는 현대차 자체적으로 사업을 확장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사실 판매 및 제조 역할이 미미하고, 2017년 내홍을 겪기도 한 베이징자동차와 현대차의 관계가 그리 우호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의견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작법인의 유지, 최근의 공동 투자 등을 비쳐볼 때 수익성을 극대화하겠단 측면보단 적자 규모를 줄이고 당분간은 안정적인 사업구조를 유지하겠단 의도라는 평가다. 과거의 정치적 리스크가 또다시 불거지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기 때문에 일정 수준의 위험성을 회피하겠단 의미로도 볼 수 있다.

      투자은행(IB) 업계 한 관계자는 “현대차그룹 내부에서도 중국사업에 거는 기대가 그리 크지는 않다”며 “제 1시장이란 상징적인 의미를 포기할 수 없다는 측면도 크다”고 말했다.

      내연기관 시대의 중국시장에서 현대차는 글로벌 최고급 완성차 업체에 미치지 못했고, 중국 현지 업체에 치였다. 뚜렷한 이미지 각인의 실패 또는 현지화 전략의 실패가 다행히도(?) 사드 사태에 묻혔다는 냉정한 평가도 있다. 

      중국 정부가 내연기관의 종식을 선언하고 전기차 시대를 빠르게 열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는 점은 현대차에 기회가 될 수 있다. 베이징현대는 이번 증자 목적을 “중국 자동차 산업의 전기화를 위한 추가 투자 요구에 보다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차원”이라고 밝혔다. 중국 시장의 회복을 위해선 보다 다양한 라인업을 갖추고 과거와는 다른 명확한 현지화 전략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