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권 진입 임박한 가상자산…美 CBDC 발행 신호탄에 국내도 촉각
입력 2022.03.31 07:00
    중앙은행 발행 디지털화폐 연구개발 속도
    미국 행정명령 이어 한국은행도 준비 박차
    제도권 진입 임박 시그널…체질 달라질 전망
    • 주요국들이 중앙은행 발행 디지털화폐(CBDC·Central Bank Digital Currency) 연구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중국에 이어 미국까지 CBDC 발행 신호탄을 쏜 가운데 한국은행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CBDC가 각국 주요 정책과제로 자리잡은 만큼 기존 가상자산의 체질 자체가 달라질 가능성에도 주목된다.  

      CBDC는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형태의 법정화폐다. 비트코인은 가치 변동에 개입하는 중앙장치를 두지 않지만, CBDC는 국가가 법률로 원장 내용을 보증, 가치를 보장해준다는 차이가 있다. 법정화폐에 가치가 고정된다는 점은 민간 발행 스테이블코인과 유사하다. 

      중국 달러 패권 위협에 방아쇠 당긴 美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CBDC 연구를 위한 행정명령이 공포탄이 됐다. 조 바이든은 행정명령 발표와 함께 비트코인에 대한 당국의 태도 변화를 시사했다. 당장 그림이 가시화한 것은 아니지만 대통령이 각 부처를 포함한 연방기관들에 조율을 직접 지시했다는 점에서 역사적이란 평가가 나온다.

      미 연방준비제도는 그간 연구와 실험이 더 필요하단 명분으로 CBDC 발행에 신중한 태도를 보여왔다. 디지털 달러 도입에 미온적이었던 미국이 최근 논의를 급진전한 하게 된 배경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가상자산 시장이 기존 금융시장과의 경계가 점차 허물어지면서 가상자산 붕괴(크립토 크러시) 우려가 확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트코인 투자가 합법화하면서 기관 투자자의 편입이 늘어나고 있고 투기적 욕구도 커지면서 공급량이 점차 감소, 가격 폭등이 지속되는 상황이다. CBDC 도입은 전통 금융시장의 안정성 측면에서 거론되고 있다. 

      글로벌 빅테크 주도의 민간 스테이블 코인 확산세도 중앙은행과 금융시스템에 위기의식을 초래하고 있다. 미 PWG(대통령 직속 금융시장실무그룹)는 높은 수수료, 개인정보의 상업적 이용, 진입장벽 형성 등을 이유로 빅테크의 지급결제 지배력을 견제하고 있다. 시가총액 기준 최대 스테이블 코인인 '테더(USDT)'는 앞서 계열사(Bitfinex) 손실 보전을 위해 고객 준비금을 유용한 혐의로 뉴욕주 검찰의 수사를 받았고 2020년 1850만달러 벌금에 합의한 바 있다. 

      둘째, 올해 중 CBDC 발행을 예고한 중국에 통화 패권을 놓치지 않기 위한 대비 및 견제 차원에서다. 중국은 지난달 열린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대규모 CBDC 실험을 성공적으로 마쳤고, 1억명이 넘는 디지털 위안화 사용자를 보유 중이다. CBDC가 IT기술 전체국가 시스템을 완성시키는 데 필수조건으로 언급되는 만큼 중국은 일찍이 시범운영에 나서왔다.

      미국의 위기의식은 '미래에 달러를 대체하는 새로운 제1 기축통화가 암호화폐에서 나오지 않을까'하는 데에 있다. 금융시장에 미칠 파장이 커 발행에 신중해 왔지만 중국이 빠르게 치고나가는 상황에서 미국도 주도권 싸움에서 더이상 손을 놓을 순 없게 됐다. 

      작년 말 중국의 가상자산 규제 정책이 미국이 가상자산 제도화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 도화선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법인 대상 가상자산 자문사 관계자는 "작년에 중국 당국이 가상자산 서비스 금지 조치로 관련 산업이 크게 위축됐다"며 "올해 초 바이든 행정부가 행정명령에 서명하는 등 가상자산 제도화에 나서게 된 배경도 중국이 잠시 주춤한 사이에 이 패권을 선점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촉발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도 글로벌 CBDC 도입 시점을 앞당기는 촉매가 됐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전쟁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자 9개 가상자산으로 기부를 받는 공식 웹사이트를 개설, 1억달러 이상의 자금을 모집했다. 러시아도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망 축출을 계기로 가상자산을 대체 수단으로 더욱 주목하는 계기가 됐다. 

    • 국내도 제도권 진입 임박…가상자산, 체질 자체가 달라질 전망

      국내도 미국 행정명령을 계기로 논의가 더욱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은 현재 CBDC 도입에 전향적인 태도를 취하며 적극 준비하고 있다. 

      한은은 지난해부터 카카오 블록체인 계열사 그라운드X와 함께 ‘중앙은행 CBDC 모의실험 연구 사업’을 시작했다. 현재 모바일 기기를 통한 오프라인 결제와 국가 간 송금 등 2단계 실험을 진행 중으로, 6월 이후론 금융기관과 협력을 넓혀갈 계획이다. 

      당장 실제 도입과는 무관하다는 게 공식 입장이지만 내부선 CBDC 도입에 대한 정책적 판단을 더이상 늦출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있다. CBDC와 관련한 다수 보고서에서도 도입 필요성이 재차 강조되고 있다.

      국내 가상자산의 체질 자체가 달라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그간 가상자산은 대체지급 수단 혹은 인플레이션 리스크를 회피하는 상품으로 인식됐다. 인플레이션율이 오르면 비트코인 가격 상승 압력도가 높아졌고, 시장 유동성을 줄이고 이자율을 높여 부채 부담감을 높이는 긴축은 가격을 떨어뜨리는 요소 중 하나였다.  

      가상자산 시장에 정통한 한 전문가는 "비트코인 등 기존 가상자산의 존폐를 다투는 악재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을 냈다. "CBDC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선 기존 암호화폐 시장에 대한 규제를 강화할 수밖에 없다. CBDC 발행은 곧 가상자산 산업 분야가 금융에 편입된다는 것을 의미하고, 결국 강한 규제로 관련산업이 위축될 가능성도 함께 시사한다"는 설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