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重, 대우조선 포기했다더니 EU 소송으로 명분쌓기?…소통 없는 일방통행
입력 2022.04.01 07:00
    취재노트
    M&A 계약은 해지, 소송은 별개?
    그렇다면 소송은 왜
    인수할 땐 대대적 홍보, 무산되면 침묵
    선택적 정보 제공, 예측불가 기업으로 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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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매듭지어지지 않은 대우조선해양 경영권 인수는 현대중공업그룹에 아킬레스건이다. 그룹은 3년 넘게 각 국가 공정당국의 눈치를 살폈고, 합병을 확정짓지 못한 탓에 지주회사-중간지주회사를 설립하고도 불안정한 지배구조를 유지해야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대우조선해양 경영권 인수 계약을 맺고, 두산인프라코어(現현대두산인프라코어)마저 인수하며 오너 3세 정기선 체제를 공고히했다. 이를 통해 현 정부의 가장 큰 수혜를 받은 그룹으로 꼽혔지만, 구조적 불확실성에 따른 투자자들의 불안감이 상존해 있었다.

      유럽연합(EU)은 결국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불허(不許) 했다. 3년여 만에 나온 결론에 현대중공업그룹은 ‘유감’의 뜻을 밝히는 짧은 입장문(1월13일)과, 이튿날 ‘한국과 일본의 기업결합신고를 철회했다’는 더 짧은 공시(1월14일)로 갈음했다. 그로부터 두 달 후(3월8일), 산업은행과 투자계약을 해제했다는 공시를 마지막으로 떠들썩했던 대우조선해양 M&A는 흐지부지됐다.

      이런 와중에 현대중공업그룹이 EU에 소송을 제기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투자자들은 물론 회사를 면밀히 들여다보는 금융권 연구원들조차 알지 못했다. 현대중공업의 소송 제기가 알려진 현재까지 이에 대한 그룹의 '공식'적인 발표는 없는 상태다.

      이는 2019년 1월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발표하며 대대적인 홍보에 나선 것과는 대조적이다.

      당시 권오갑 회장은 ▲특혜 시비 ▲헐값 매각 ▲독과점 ▲노조 반발 등 수많은 논란을 뒤로한 채 현대중공업그룹의 ‘사명감과 책임감’을 언급하며 한국 조선산업의 경쟁력 강화, 지역경제 활성화 등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대한 거대한 포부를 밝혔다. 산업은행은 앞장서 글로벌 1위 조선사의 2위 조선사 인수, 초대형 국적 조선사 탄생에 대해 수년 간 기대감을 키워왔다.

    • KDB산업은행과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민영화를 위한 본계약 체결식(2019년 3월 8일, 자료=현대중공업그룹) 이미지 크게보기
      KDB산업은행과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민영화를 위한 본계약 체결식(2019년 3월 8일, 자료=현대중공업그룹)

      물론 대우조선해양의 인수 무산 책임을 오롯이 현대중공업그룹에 떠넘길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EU의 불허 결론이 난 이후 현대중공업의 입장문에 한 투자은행(IB) 관계자는 ‘이제와서? 이럴 줄 몰랐나?’ 라는 냉랭한 반응을 나타냈다. 사실 조선산업을 떠나 글로벌 회사들의 경쟁이 치열한 항공산업만 보더라도 EU를 비롯한 각 국의 자국 우선주의는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다수의 투자자들 시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으로 예상된다.

      인수의 무산, EU의 소송제기 등 그룹의 근간을 흔들만한 이슈에 현대중공업의 보다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해 보인다. 투자자들에게 제시했던 비전과 목표의 수정, 컨티전시 플랜의 발표는 선제적이고 명확해야한다.

      ‘EU에 제기한 소송의 목적이 무엇인지’, ‘EU의 판정이 번복하면 다시 합병을 추진하겠다는 것인지’ 현재로선 알 길이 없다. 지루한 소송의 결론에 따라 그룹의 입장이 어떻게 달라질지도 알 수 없다는 점은 앞으로 수년 간 그룹의 방향성을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할 것으로 보인다.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확실히 포기했다면 반대 급부로 무엇을 어떻게 채울 것인지, 미리 개편해 놓은 지배구조를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새판을 짤 것인지에 대한 명확한 답변도 필요하다.

      호재와 악재를 구분해 투자자들에게 선별적인 정보만을 제공하는 것은 기업의 책임있는 자세가 아니다. 상장회사 더 나아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1위 조선사라면 더욱 그렇다. 예측 불가능한 기업은 투자자들에게 혼란을 가져온다.

      다행(?)이라면 조선업황이 호황기를 맞아 대우조선해양 인수의 후폭풍이 모두 묻혔다는 점이다. 산업은행 또는 현대중공업그룹의 경영진과 실무진을 막론하고 이를 공론화해 책임지는 인사는 사실상 없다.

      현대중공업의 애매한 입장이 지속하는 동안 대우조선해양은 또 다시 정치권 쟁점의 중심에 섰다. 최근 신임 대표이사 선임(박두선 대표이사)을 두고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이를 ‘알박기’ 인사’로 규정하며 감사원 조사를 요청했다. 조선 산업이 정치권의 쟁점화할수록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과 관계가 깊은 현대중공업그룹 또한 외풍에서 자유롭진 못할 것으로 보인다.

      지주회사(HD현대)의 사내이사로 합류한 정기선 사장에겐 현안이 산적해있다. 대우조선해양의 인수 무산 이후 새로운 기틀을 마련해야한다. 중복 상장에 대한 논란 속 현대삼호중공업과 현대오일뱅크 등 자회사들의 기업공개(IPO)도 숙제다.

      그룹은 새로운 먹거리로 신약을 개발하겠다고 했다. 업황이 뒷받침된 시기엔 회사 결정에 투자자들의 이견은 찾아보기 어렵지만, 늘 그랬듯이 조선 업황은 언젠가 하향 곡선에 접어들게 된다. 업황이 고꾸라졌을 때, 본업이 힘들 때 예측이 불가능한 기업에 투자자들은 눈길을 주지 않는다. 현대중공업이 호황에 취해있을 때가 아니라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보여줘야 한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