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 매각 번번이 실패에 회수율도 낮아…"이런 성과면 부산으로 가도?"
입력 2022.04.04 07:00
    산은, 수십조원 혈세 지원에 회수율은 2~30%
    M&A식 구조조정 추진..."대우조선해양 대표적 실패사례"
    "부산 못 간다" 산은 몽니에 이전 여론 힘실려
    • 산업은행이 문재인 정부 하에서 추진한 매각이 번번이 실패하면서 ‘구조조정 역할론’에 대한 비판이 제기된다. 수조원을 투입하고도 기업 정상화가 되지 못한 데다 회수율도 낮다는 지적이다. 최근에는 부산 이전 가능성도 언급되면서 내부적으로 뒤숭숭한 상황이다. 

      이번 정부 들어서 산업은행은 M&A를 통한 구조조정을 추진했다. 이 과정에서 ‘속도전’으로 밀어붙이면서 여러 잡음이 발생했다. 산업 구조조정 차원에서 야심 차게 진행된 딜 등이 제대로 진행이 안 되면서 정부 지원 부담만 늘고 있다. 

      이전만 하더라도 산업은행은 자금지원을 중심으로 기업회생을 도왔다면, 문 정부 하에선 기업 간 M&A를 통해서 산업재편을 중심으로 구조조정의 방향이 바뀌었다. 이전과 달리 업황이 꺾인 산업에 대해서 자금 지원만으로는 회생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평가다. 또한 그만큼 산업은행에서 각 기업에 들어간 자금 부담이 커진 탓도 있다.

      산업은행에서 이번 정부 들어서 M&A를 추진한 기업들에 들어간 자금지원 규모를 보면 기업별로 수조원에 달한다. 우선 대우조선해양은 작게는 7조원에서 많게는 10조원 이상의 자금지원이 이뤄졌다. 작년 유암코-KHI 인베스트먼트에 매각된 STX조선해양에는 5조원이 넘는 자금이 투입됐다. HMM에 3조원, KDB생명 1조1500억원 등의 자금지원이 이뤄졌다. 문 정부 들어서 구조조정된 두산중공업에는 수출입은행을 포함한 지원금 규모는 3조원, 아시아나항공에는 3조6000억원, 대한항공에는 2조원이 들어갔다. 이 자금만 합쳐 기업회생에 들어간 산은 지원금만 수십조원으로 추산된다. 

      이 중에서 회수율은 굉장히 저조하다. 국민의당 이태규 의원실이 2019년 국정감사에서 밝힌 내용에 따르면 2010년에서 2019년 사이 산은이 구조조정에 투입한 자금 규모만 22조5518억원에 이른다. 이 중에서 98%가 대기업에 투입됐다. 산업별로는 이 기간 조선업에만 9조3414억원이 투입됐다. 이외에도 철강, 중공업 등에 정부 지원이 이뤄졌다. 하지만 이들에게서 다시금 돌려받은 회수율은 30%에 불과하다.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이 작년 국정감사에서 밝힌 산업은행을 통해 제출받은 자료도 위와 별반 다르지 않다. 산업은행은 2016년부터 2020년까지 구조조정을 진행한 기업 49곳의 지원총액 대비 회수율은 23.6%에 불과했다. 구체적인 숫자로 따져보면 이 기간 동안 구조조정 대상 기업에 지원한 총액은 6조375억원으로, 그 중 1조4257억원을 회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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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김라래 기자)

      그나마 두산중공업이 성공적인 사례로 꼽힌다. 두산중공업은 1년 11개월 만에 채권단 관리체제에서 벗어났다. 이 과정에서 8500억원에 두산인프라코어를 현대중공업 그룹에 매각했다. 산업은행의 역할을 부정할 수 없지만, 시장에선 체질개선에 능한 두산그룹이었기에 가능했던 사례로 꼽힌다. 일각에선 탈원전 등 정부 정책에 두산중공업이 희생되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 M&A 업계 관계자는 “여러 차례 체질개선을 단행한 바 있는 두산그룹이 발빠르게 매각 작업에 나섰던 것이 유효했다”라고 말했다.

      이를 제외하면 조선업 구조조정, 항공업 구조조정 등 정말 풀어야 할 굵직한 이슈들은 이번 정부에서 해결이 되지 않았다. 대우조선해양 매각 실패는 뼈아프다. 현대중공업에 대우조선해양 매각을 전격적으로 진행하면서 ‘대기업 특혜 논란’ 등이 불거졌지만, 조선업 구조조정이란 명분 하에 딜이 진행됐다. 이러한 국내의 논리로만 매각이 진행되다가 EU의 반대에 부딪혀서 딜이 좌초했다. 글로벌 산업 지형이 바뀌면서 자국 우선주의가 강화하고 있다는 흐름을 간과했다는 지적이다. IMF 시절처럼 ‘정부가 밀어붙이면 된다는 식’의 구조조정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만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더불어 최근에는 대우조선해양에 ‘알박기’ 인사 논란까지 발생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문 대통령의 동생 대학 동창으로 알려진 박두선 대표이사 임명을 두고 “비상식적인 처사”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산은의 고질적인 병폐인 자회사 인사문제가 또다시 불거진 것이다. 대우조선해양은 산은 관리 하에서 분식회계 문제로 논란이 된 바 있다. 당시에도 경영진이 분식회계에 연루되면서 회사가 망가졌다. 대우조선해양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었으나, 공기업도 아니고 민간기업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방치하며 자회사 관리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산업은행 구조조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산업은행 밑에 있으면 기업이 공기업처럼 체질이 변화한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며 “선임된 사장이 힘이 없고 임기를 채우는 게 가장 큰 목표다 보니 회사 내부에 비리나 부조리가 있어도 해결하지 않고 누적되는 경우가 많다. 대우조선해양의 분식회계 역시 이게 가장 큰 원인”이라고 말했다. 이번 알박기 인사로 이런 문제가 다시금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쌍용차 매각도 문제가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다. 인수우선협상 대상자인 에디슨모터스(이하 에디슨)가 잔금 납입을 못하면서 계약해지됐다. 매각 과정에서 에디슨의 자회사인 에디슨EV의 주가가 크게 오른 가운데 대주주 투자조합이 주식 대부분을 처분하면서 ‘주가조작’ 가능성마저 거론된다. 산업은행은 회생절차에 있는 회사와 법원의 책임이라고 발뺌하지만, 주채권은행으로서 매각과정에 참여한 장본인으로서 책임 공방에서 빠져나오긴 힘들 것으로 보인다. 산업은행이 인수위 보고 과정에서 “쌍용차 매각에 문제가 없다”고 한 부분에 대해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도 순탄치 않다. 공정위의 조건부 승인을 받았지만, 앞으로 해외 경쟁당국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KDB생명 매각도 대주주 적격심사에 가로막혀 진행이 지지부진하다. 

      이런 산은의 그간 행태에 대해서 정치권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특히 국민의힘을 중심으로 산은이 산업 재편에 해당하는 M&A 건을 진행하면서 국회와 얼마나 소통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일방통행식으로 진행되었던 딜들의 결과마저 안 좋으면서 이를 추진한 이동걸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에 대한 책임 문제가 거론된다. 

      문 정부 하에서 추진됐던 M&A 부담이 고스란히 다음 정부로 넘어가게 생겼다. 산은이 지금 추진한 방식으로 자회사 구조조정을 계속해서 밀고 나간다면 새로운 정부에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산은 산하에서 관리가 안 된 자회사들이 앞으로도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더불어 궁극적으로 산업은행의 ‘구조조정 해결사’ 역할에 대한 문제 제기도 이어지고 있다. 정부차원에서 대규모 공적자금을 투입해서 구조조정 할 산업이 이제는 얼마 남지 않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국내 산업구조가 중후장대 산업에서 4차 산업으로 전환되면서 산업은행의 구조조정 역할도 축소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오히려 기업구조혁신펀드 등 민간금융기관과 기업 등이 참여하는 방향으로 구조조정의 큰 방향이 바뀌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산업은행의 역할은 4차 산업에 대한 지원 강화 등 정체성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산업은행의 부산 이전도 이런 큰 틀에서 고민되고 있다. 부산을 ‘스마트 디지털 도시’로 만들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수위에서도 산업은행 부산이전에 대한 “구체적인 실행안”을 짜오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노조를 비롯한 민주당에서 이에 대한 반대가 있지만, 이미 국민연금을 비롯한 금융공기업들 상당수가 지방에 내려간 상태고,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산은 부산 이전에 대한 의지가 큰 것으로 전해진다. 여당이 된 국민의힘에서도 문 정부 시절 금융공기업 지방 이전 등을 적극 지원했으면서, 산은 부산 이전은 안 된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산은의 역할 변화가 있어야 한다”라며 “부산 이전도 이와 발맞춰 추진되어야 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