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만에 돌아온 '원유 카지노'...커진 변동성에 달려드는 개인투자자
입력 2022.04.05 07:00
    WTI인버스ETF, 지난해 12월 대비 거래량 70배 증가
    ETN 상품 포함 원유 간접투자 상품 일일 1000억원 거래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폭등 폭락 반복하며 수요 몰려
    "2분기까진 변동성 지속되다 하반기들어 점차 진정될 듯"
    • 국제 원유값이 요동치며 큰 변동성을 연출하자, 단기 수익을 노린 개인투자자들이 달려들고 있다. 상장지수펀드(ETF) 등 간접상품을 통해서다.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국제 유가가 일방적으로 폭등할 거란 전망과는 달리 급등과 급락이 반복되자, 추세를 역(逆)으로 추종하는 인버스 상품 거래량 역시 급격히 늘었다.

      원유 같은 상품(커머디티) 가격은 실물과 옵션 시장이 맞물려 균형을 이루는데, 최근 전쟁 등 대외 변수가 잇따르며 하루는 폭등, 하루는 급락으로 극단적인 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2분기까지는 이런 변동성이 지속되다 하반기부터는 점차 다시 안정세를 띌 거란 전망이다.

      미국 서부 텍사스산 중질유(WTI) 선물에 투자하는 KODEX WTI원유선물 ETF의 3월 일평균 거래대금은 164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12월(46억원) 대비 3배, 지난 2월(66억원) 대비로는 1.5배다. WTI 선물 가격을 반대로 추종하는 KODEX WTI원유선물인버스 ETF의 3월 일평균 거래대금은 220억원에 달했다. 지난해 12월(3억원) 대비 무려 70배나 뛰어올랐다.

      거래 주체는 대부분 개인투자자들로 파악되고 있다. 가장 거래량이 많은 KODEX ETF를 비롯, 상장지수증권(ETN)등 원유 관련 간접투자 상품을 모두 포함하면 하루 거래량이 1000억원에 가깝다는 분석이다. 

      2년만의 '투자 붐'이다. ETF를 통한 원유 간접투자는 지난 2020년 3월 크게 유행했었다. 당시 코로나19로 인한 락다운 여파로 변동성이 매우 커졌던 까닭이다. 

      당시 WTI 선물 가격이 사상 최초로 마이너스(-)로 전환하며 주당 1만원대였던 WTI선물인버스 ETF 주가는 장중 한때 4만원 가까이 치솟기도 했다. 2만2000원대에서 3000원대까지 수직 낙하한 WTI선물 ETF 역시 저점 매수세가 몰렸다. 4월30일 이 ETF의 하루 거래규모는 3500억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이후 백신 접종 및 경제 재개로 국제 유가가 배럴당 40~60달러 안팎의 안정세를 띄며 원유 관련 간접투자 붐 역시 잦아들었다. 2020년 3월 저점에서 1년간 나스닥 지수는 100% 가까이 올랐는데, 이 기간 국제 유가 상승률은 20% 안팎에 불과했던 까닭이다. 성장주에 돈이 몰리며 원유 관련 간접투자상품은 잊혀졌다.

      지난해 하반기 인플레이션 우려가 수면 위로 드러나며 원유 관련 상품 투자도 다시 조금씩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여기에 기름을 끼얹은 게 지난 2월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었다. 

      러시아산 원유의 공급이 막힐 거란 우려에 하루에 10%씩 국제 유가가 뛰어올랐다. 지난 9일 글로벌 투자은행 바클레이즈가 "국제 유가가 배럴당 20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코멘트를 내놓자 포모(FOMO;소외)에 대한 투자자들의 두려움이 절정에 달했다.

      상승 일변도였다면 간접투자상품에 대한 수요는 금새 가라앉을수도 있었다. 배럴당 123달러까지 치솟았던 WTI 선물 가격은 지난 15일 배럴당 96달러로 뚝 떨어졌다. 미국 셰일가스의 시추공 숫자가 꾸준히 늘고 있는데다, 그간 미국의 규제로 원유 판로가 막혔던 이란이 원유시장에 돌아오며 러시아를 대체할 공급원이 되어줄 거란 기대감이 작용한 결과였다.

      배럴당 100달러선 아래에서 안정세를 되찾을 것 같았던 WTI 원유 가격은 23일 배럴당 115달러선으로 다시금 급등했다. 당초 3월 초 발표된 미국과 유럽연합(EU)의 대(對) 러시아 규제안에 에너지 관련된 부분은 거의 빠져있었다. 그러나 전쟁이 격화하며 EU가 '러시아산 원유 수입 금지'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란산 원유가 아직 국제시장에 복귀할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지정학적 이슈가 불거지자, 다시 변동성이 커진 것이다.

      WTI선물 가격은 최근 다시 배럴당 100달러대 초반으로 급락했다. 중국 상하이시가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락다운에 들어가는 등, 중국발 수요 감소 우려가 대두한 까닭이다. 미국 휘발유 평균 가격이 14년만에 갤런당 4달러를 돌파하며, 높은 유가에 놀란 소비자들이 차량 사용을 줄일 수 있다는 전망도 작용했다.

      불과 한 달 사이 일어난 일이다. 최근 일주일간 WTI 원유선물 가격의 하루 평균 변동폭은 3.06%에 달했다. 올랐던 내렸던 하루에 3%, 1년 은행 금리 이상의 수익 혹은 손실이 발생한 것이다. 수익에 목마른 개인투자자들이 이 변동성을 통해 수익 창출을 시도하며 관련 간접투자 상품의 거래량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분석된다.

      글로벌 투자은행들도 유가 전망에 난항을 겪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최근 '중국발 수요 감소 우려에도 유가가 안정화되려면 더 많은 수요 파괴가 필요하다'며 올해 2분기 북해산 브렌트유 평균 가격이 배럴당 135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재보다 25%가량 높은 수준이다. JP모건은 올해 2분기 브렌트유 가격을 배럴당 114달러, WTI 가격을 배럴당 111달러로 전망하고 있다. 다만 전쟁으로 인한 공급차질과 중국의 락다운으로 인한 불확실성이 커졌다고 언급했다.

      증시 전문가들은 일단 2분기까진 국제 유가의 커진 변동성이 유지되며 관련 간접투자 상품에 자금이 몰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지속 여부와 중국의 코로나19 관련 정책, 인플레이션에 따른 긴축의 속도 등 외부 변수에 따라 하반기에 조금씩 진정 국면에 접어들 거란 전망이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국제 유가는 파생상품 시장과 맞물려 오를 땐 폭등했다가, 반대로 떨어질 땐 폭락하는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며 "수요 파괴 부담으로 인해 배럴당 200달러까지 오르진 못하겠지만, 전체적인 수급이 타이트해진건 확실한만큼 지난해보다는 높은 수준으로 유가가 유지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