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역시 힘 못 쓴 국민연금…도마위에 오른 수탁자책임위원회
입력 2022.04.06 07:00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방향 대다수 '반대'에도
    이사회 결론 대부분 주총 통과
    하나금융 주총선 일관성·형평성 논란도
    9명 수탁위 구성원 다수결로 표결 행사
    전문성 논란 속 주주대표소송 권한도 이관 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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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국내 주요 기업들의 주요 주주로 이름을 올리고 있는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방향은 주주총회 시즌의 가장 큰 관심사로 꼽힌다.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한 국민연금은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하겠단 의지를 밝혔지만 주주제안, 이사추천을 통한 기업의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어 내는 등 결과물을 만들어 내진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막을 내린 올해 주주총회 시즌에서도 국민연금의 의사가 반영된 사례는 역시 드물었다.

      일부 기업들의 주주총회에선 '공정성·일관성’이 결여된 의결권을 행사하며 여론의 뭇매를 맞기도 했다. 국민연금의 주요 투자기업에 대한 의결권 행사 방향을 결정하는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이하 수탁위)의 전문성과 실효성에 대한 논란도 불거졌다.

      국민연금은 올해 주주총회 시즌에 앞서 주요 이슈가 있는 기업들 약 16곳의 의결권 행사방향을 발표했다. 이 가운데 국민연금의 의사대로 주총에서 통과 또는 부결된 안건은 KB금융지주의 노조추천 이사 선임, 하나금융 함영주 회장의 사내이사 선임, 금호석유화학과 셀트리온의 이사회 측 제안 등이 전부였다. 대부분의 나머지 안건은 국민연금의 표결과 반대의 결과가 도출됐다.

      대표적으로 국민연금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사내이사 선임안에 기업가치 훼손과 주주권익 침해 이력이 있다고 보고 반대표를 행사했으나 최 회장은 주주들의 동의를 얻어 사내이사 재신임에 성공했다. 최 회장은 지난 2016년, 2019년 두 차례 모두 국민연금 반대에도 불구하고 SK㈜ 대표이사에 오른 바 있다.

      국민연금은 지분 12.7%를 보유한 신세계 주주총회에선 국민연금은 임원들의 보수한도에 대해 경영 성과 대비 보수가 과하다는 이유로 반대표를 행사했다. 신세계의 이사 보수한도(100억원)가 경영성과 등에 비춰 과다하다고 판단했는데 해당 안건은 주주들의 80%를 동의를 얻어 통과했다.

      건설업 등록 말소 위기에 놓인 HDC현대산업개발 주총에서도 국민연금의 의결권은 힘을 쓰지 못했다. 감독의무에 소홀했다는 이유로 반대 결정을 내린 권인소 사외이사 재선임 건은 전체 주주의 78.3%의 압도적인 찬성표를 얻어 통과했다.

    • 금융지주회사의 국민연금의 표결이 주효한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가장 관심을 모았던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회장의 사내이사 선임 안건은 논란의 대상이 됐다. 당초 투자자들의 예상을 깨고 국민연금은 함영주 회장의 이사 선임안건에 찬성표를 던졌다. ISS와 한국지배구조원 등 의결권 자문사들의 반대 결정과 대비되는 결론이기도 했다.

      함 회장 이사 선임 안건의 찬성률은 60.4%, 반대표는 39.4%를 기록했다. 하나금융지주의 지분의 절반 이상(68%)는 외국인이 보유하고 있고, 국민연금이 9.2%를 보유한 단일 최대주주이다. 19%는 국내기관투자가 및 개인주주가 보유하고 있다. 결국 국민연금이 반대표를 행사했다면 이사 선임이 부결될 수 있는 상황이기도 했다.

      논란의 이유는 과거 신한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 등의 사내이사 선임 안건에 국민연금이 반대표를 행사한 상황과 대비되기 때문이다. 함 회장은 2020년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상품(DLF) 사태로 금융당국으로부터 징계 처분을 받고 현재는 행정소송을 진행 중이다. 비슷한 사례로 과거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은 라임사태,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은 DLF 사태가 있다. 수탁위는 2020년 주주총회에서 두 회장의 이사 선임안에 대해 반대 의견을 내놨다. 

      주요 이슈가 있는 기업들에 대해선 국민연금은 기금운용위원회 대신 수탁위에서 의결권 행사를 결정하도록 한다. 수탁위는 2018년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 제정 이후 2020년부터 의결권 행사를 결정하는 주요 조직으로 자리잡은 상태다.

      수탁위는 총 9명( 노동자, 사용자, 지역가입자 단체가 각각 3명)으로 구성돼 다수결로 표결 방향을 의결한다. 9명의 인사가 다수결로 결론내는 구조이다보니 일부 인사가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며 의결권 방향을 결정짓게 되는 모습도 연출된다. 논란이 일었던 이번 함 회장에 대한 의견도 위원들의 의견이 팽팽히 맞선 것으로 전해진다.

      수탁위 구성원의 전문성에 대한 논란은 꾸준히 이어져 오고 있다. 이번 하나금융의 주총을 차치하고도 지난해 주식시장을 뜨겁게 달궜던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물적분할 과정에서 국민연금 수탁위는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의 권고안을 따르지 않고 ‘반대’ 표결을 행사하며 투자자들과의 상당한 괴리감이 있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이러한 논란 속에서 국민연금은 주주대표소송의 권한을 기금운용본부에서 수탁위원회로 넘기는 방안을 추진하며 경재계 단체의 반발에 부딪히기도 했다. 주주대표소송과 관련한 안건은 이달 다시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