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초가比 수익률 하락ㆍ보수적 예심ㆍ꺾인 글로벌 붐...올해 IPO '기대 접어라'
입력 2022.04.07 07:00
    올 1분기 시초가 대비 현 주가 하락률 평균 36%
    거래소 인력 바뀌며 신중 모드 '3개월 넘게 심사'
    美 IPO 시장 6년來 최악...'외국인도 단타에 집중'
    올해 1조 이상 대어 아직 많지만 '분위기 묘하네'
    • 파티는 끝났고 발빠른 사람들은 이미 시장을 빠져나가고 있다. 대어급 기업공개(IPO) 거래가 잇따라 시동을 걸며 군불을 지피곤 있지만, 시장은 그리 우호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있다. 아직 무대에 올라야 할 댄서들은 많은데 음악은 일찌감치 끊겨버린 형국이다.

      우선 투자자들의 수익 기대감이 크게 낮아진 상황이다. 공모가가 문제가 아니라 시초가 대비 수익률이 문제다. 한국거래소의 심사 기조도 눈에 띄게 보수적으로 돌아섰다. 무대에 오를 기회를 받기 조차 쉽지 않다는 평가다. 글로벌 IPO 시장 분위기는 이미 6년 만에 최악 국면에 접어들었다.

      5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현재 연내 상장을 목표로 움직이고 있는 기업은 시가총액 1조원 이상만 따져도 10여곳에 이른다. 이들의 예상 시가총액 합계는 약 50조원, 예상 공모 규모는 10조원에 가깝다. 당장 SK그룹 계열 원스토어와 SK쉴더스가 5월 공모 청약을 목표로 공모 청약 절차에 착수한 상황이다.

      지난 1월 13조원을 공모하며 시가총액 70조원 규모로 상장을 완료한 LG에너지솔루션 이후에도 '대어급' 거래들이 잇따라 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이 모두 무사히 증시 입성에 성공한다면, 올해 IPO 시장 전체 공모 규모는 최소 23조원으로 역대 최대였던 지난해의 19조원을 가뿐히 뛰어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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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문제는 상황이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올해 펼쳐질 IPO 시장의 모습은 지난 2020~2021년의 모습과 정반대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분석이다.

      지난 5일 기준, 올해 1분기 국내 증시에 상장한 21개 기업(기업인수목적회사 제외)의 공모가 대비 주가 상승률은 평균 39.8%였다. 13개 기업의 현재 주가가 공모가를 상회했다. 공모가 대비 주가 상승기업 비율은 62%였다. IPO 시장 분위기가 절정에 달했던 지난해 상반기만은 못하지만, 여전히 '나쁘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만한 수치다. 

      IPO 시장 관계자들은 지금 같이 증시가 약세일 땐 '공모가 대비 수익률'이 아니라 '시초가 대비 수익률'을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신규 상장주의 첫 거래가격이 정해진 이후 어떤 움직임을 보이느냐가 투자 심리를 좀 더 정확히 반영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올해 1분기 신규 상장주들의 시초가 대비 현재 평균 주가 상승률은 마이너스(-) 36% 수준이다. 지난해 상반기엔 시초가 대비 반기말 주가도 평균 30% 이상 수익이 났다는 점을 고려하면 시장 분위기가 확실히 뒤집어졌다고 볼 수 있다. 시초가 대비 현재 주가가 더 올라있는 기업 수도 21곳 중 5곳(24%)에 불과했다. '따상'이라는 말이 유행했던 지난해엔 이 수치가 90% 이상이었다.

      이는 더이상 시장의 투자자들이 신규 상장주를 유망한 투자처로 보고 있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다. 신규 상장주의 시초가 대비 주가 하락세는 대기업 여부, 시가총액, 업종을 가리지 않았다. '공모주'라는 묶음 내에서 '일단 손에 들어온 이익을 실현하는 게 우선'이라는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이다.

      한 운용사 관계자는 "지난해에도 '상장 첫 날 시초가에 던져라'라는 말이 유행했지만, 지금은 '시초가에 던지지 않으면 손실'이라고 봐도 될 정도"라며 "지수와는 관계없이 신규 상장주에 유입되는 수급 자체가 악화됐다는 느낌이 강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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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한국거래소의 상장 예비심사 기조도 이전 대비 보수화했다는 평가다. 이전 대비 상장 심사에 걸리는 기간이 늘어났고, 질적 심사도 꼼꼼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당장 올해 IPO 대어로 꼽히는 현대오일뱅크와 교보생명보험은 3개월 반째 심사에 발이 묶여 있다. 기업인수목적회사를 제외하면, 올해 들어 예심을 통과한 기업 수는 코스피 3곳, 코스닥 6곳 등 총 9곳에 불과하다. 지난달 30일 예심을 통과한 원스토어도 심사 통과에 4개월이 걸렸다.

      거래소 안팎의 사정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거란 분석이다. 우선 연초 거래소 인사로 인해 상장심사 관련 인력의 절반 가까이가 교체된 것이 주된 배경으로 꼽힌다. 인수인계 과정에서 시간이 걸렸고, 새로 심사를 맡은 인력들이 평가에 신중을 기하며 전체적으로 일정이 밀렸다는 것이다.

      내부적인 기조 변화도 감지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상장 후 문제를 일으킨 바이오 기업 심사를 담당했던 직원이 조직을 떠나는 등 여러 이슈가 있었다"며 "최근엔 증시가 약세를 보이고 있는만큼, 공모가 산정(밸류에이션)과 지분 구조 등 상장 후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변수 점검에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IPO 시장 추이는 이미 꺾인지 오래다. 글로벌 컨설팅업체인 언스트앤영 따르면, 지난 1분기 미국 IPO 시장은 건수와 규모 면에서 모두 지난 6년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거래 건수는 72%, 규모는 95% 줄었다. 유럽 역시 건수는 지난해 1분기 대비 38%, 규모는 68% 줄었다. 유일하게 아시아태평양 지역만 규모가 늘었는데, 이는 LG에너지솔루션 때문이었다.

      2분기 글로벌 IPO 시장 전망도 그리 밝지 않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비롯된 지정학적 이슈, 중국 코로나 재확산에 따른 공급망 문제, 전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인플레이션 이슈,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이슈 등으로 인해 전례없이 기업의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운 시기가 계속되고 있는 까닭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국내 증시에서만 IPO 붐이 지속되길 기대하긴 어렵다는 지적이다. 국내 대형주 수급의 핵심을 차지하는 외국인 투자자들이 이전보다 방어적인 자세로 시장에 참여하고 있는 까닭이다. 공모주 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미 지난해부터 외국인 공모주 투자자들은 '보호예수 없이 상장 당일 차익 실현'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한 증권사 IPO 담당자는 "증시가 좋을땐 롱펀드(long-fund;장기투자자)들이 공모에 참여해 장기적으로 우호적인 주주 관계를 맺어가는 경향이 많았지만, 지금은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 외국계 투자자들도 국내 증시에 단타 위주로 접근하는 성향이 짙어진 것 같다"며 "외국인 투자자들이 투자 기간을 줄이고 목표 수익률을 낮추는 건 절대 국내 증시에 이롭지 않다"고 말했다.

      이전처럼 낮은 리스크로 충분한 수익이 난다는 신뢰가 없다보니, 공모가에도 점점 예민해지는 분위기가 읽혀진다. 당장 SK쉴더스의 경우 증권신고서를 제출하자마자 고평가 논란이 불거졌다. 보안부문 업계 1위 에스원의 시가총액이 2조8000억원 안팎인데, SK쉴더스 공모희망가 밴드 최상단 시준 시가총액이 3조5000억원에 달하는 까닭이다. 컬리 역시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력할 때라면 모를까, 지난해 말 마지막 투자 유치 당시 기업가치(4조원)를 지금도 인정해줄 순 없다는 지적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