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나올 곳이 없다"…정권 교체기 투자시장 자금 경색 장기화
입력 2022.04.11 07:00
    대출규제 여파로 주요 기관 출자여력 타격
    국내 연기금·공제회, 올해 출자규모 대폭 축소
    정권교체 영향도…차기정부, 정책자금 회의적
    투자사들은 관망, 기업들은 버티기 돌입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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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투자시장 자금 경색이 장기화하고 있다. 대출 규제 여파로 출자여력이 전같지 않은 데다 정권 교체도 변수가 됐다. 차기 정부의 정책자금 출자 전략이 바뀔 가능성이 있어 금융권 전반이 보수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운용사들은 자금 유치 시기가 늦어지고 있고, 투자를 받아야 하는 기업들은 당분간 버티기에 돌입할 가능성이 커졌다.

      국내 주요 연기금과 공제회들은 올해 자금 집행 속도 조절에 나서려는 분위기다. 출자기관 전반적으로 대규모 자금 집행에는 회의적으로, 사모펀드(PEF)와 벤처캐피탈(VC) 대상 출자 규모를 예년보다는 줄이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나온다.

      일단 시장 상황이 좋지 않은 면이 크다. 작년까진 투자 성과가 좋았지만 연말 연초를 거치며 국내외 경제에 악재가 출회, 시장 관계자들의 행동 반경도 줄었다. 투자를 않을 수는 없다면서도 연초 분위기가 워낙 좋지 않으니 시장 상황을 더 살펴보자는 분위기가 많다.

      최근 국내 사모투자 위탁운용사 선정공고를 낸 국민연금은 작년보다 출자규모를 3분의 1로 줄였다. 작년 정기 출자금액이 총 1조8500억원이었지만 올해는 6500억원에 그칠 전망이다. 수시 출자를 점차 늘려가고 있어, 운용 전략이 크게 달라졌다 단정하긴 어렵지만 표면적인 금액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운용사들이 새로 국민연금과 관계를 맺기 어려워질 수 있다.

      한 대형 PEF 관계자는 "최근 각종 매크로 변수 영향으로 대형 기관 사이에서도 시장을 관망하는 분위기가 많다"며 "코로나 국면에서 돈을 많이 풀기도 했기 때문에 속도 조절에 나서려는 생각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직원공제회는 올해 PEF 정기 출자 없이 VC 운용사만 선정할 계획이고, 프로젝트 성격 투자도 당분간 줄이기로 했다. 작년 이후 이어진 대출 규제 여파로 회원들의 자금 수요가 늘면서 투자할 돈은 부족해졌기 때문이다. 다른 공제회나 MG새마을금고중앙회 등 회원이나 고객 자금을 굴리는 곳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오래 전부터 추진하던 해외 대형 연기금과의 공동 투자, SK온 투자 등 랜드마크 성격 거래가 아니면 최대한 투자를 늦추려 할 가능성이 크다.

      한 기관투자자(LP) 관계자는 "돈이 없어 상반기까지는 출자 계획이 없다"며 "프로젝트 펀드 출자는 최소화하되 기존 블라인드펀드 운용사가 가져오는 거래 정도만 볼 것"이라고 말했다.

      정권 교체란 대형 변수도 있다. 통상 이 시기엔 금융권 전반의 행동 반경이 좁아지는 경우가 많다. LP가 위축된 현재 상황에선 은행과 증권사가 그나마 자금여력이 있는 곳으로 꼽히지만 이들도 당분간 보수적 행보를 보일 수밖에 없다.

      차기 정부가 정책자금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도 살펴봐야 한다. 현 정부는 '뉴딜'에 공을 들였지만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한국판 뉴딜정책을 추가경정예산안 편성을 위한 지출 구조조정 1순위로 꼽고 있다. 홍남기 부총리가 "2025년까지의 투자는 계획대로 진행돼야 한다"며 맞섰지만 사실상 추진 동력이 상실된 것 아니냐는 반응이 많다. 어쨌든 지금 상황에선 '한국판 뉴딜'에서 다뤄진 영역은 기관과 금융사들이 보수적으로 불 수밖에 없다.

      PEF 운용사와 VC들은 이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 "시장에 돈 있는 기관이 거의 없다" "LP들이 돈줄이 말라 힘들긴 한 것 같다. 요즘 투자할 때 전보다 더 꼼꼼히 본다" "1분기는 조용했는데 2분기도 당장 움직일 분위기가 아니다" 등 위기를 토로하는 목소리가 많다. 팬데믹 기간 중 막대한 유동성이 풀리고, 운용사들이 난립했기 때문에 체감 경쟁 강도도 높아진 상황이다.

      운용사들의 자금을 받아쓰려던 기업들도 버티기에 돌입할 가능성이 크다. 한 대형 VC 대표는 "당장은 지켜볼 타이밍이지만 밸류에이션이 전반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투자자들은 그 시점을 기다릴 것이고 회사는 버티려 할 것이다"라 내다봤다.

      물론 이런 자금 경색 분위기가 영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데는 의견들이 일치한다. 장기적으로 보면 매년 투자를 거를 수는 없다. 당장 여유가 부족해도 랜드마크 거래나, 대형 운용사 출자도 빠지기 어렵다. LP들은 지금부터 검토를 해야 3~4분기 출자 성과를 기대할 수 있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금융사들도 대출 문턱을 점차 낮추고 있다. 회원이나 고객이 공제회나 중앙회를 찾지 않아도 되면 다시 투자 여력이 생긴다. 기관들이 당장 '뉴딜' 테마를 살피는 것은 부담될 뿐, 새 정부도 과거 정부들처럼 '이름만 다른' 정책금융 카드를 꺼낼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꼽는 신사업이라는 것이 뻔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출자 시기만 살짝 늦어지게 될 것이란 평가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