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전쟁도 인플레도 아닌 '침체' 우려...美 긴축에 예민해진 시장
입력 2022.04.20 07:00
    미국 경기 침체 우려 속속 높아져...가을까지 우려 지속
    물가 피크아웃-전쟁 상수화에도 연준 매파 성향 강해져
    제조업ㆍ美 수출 비중 높은 韓 산업, 이미 성장 둔화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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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미국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는 최근 향후 2년 내 미국 경기 침체 우려를 35%로 전망했다. 경기 침체를 막으며 물가도 안정시키는 이른바 '연착륙'을 달성하긴 쉽지 않을 것이라 내다봤다. 블룸버그의 정례 시장 설문조사에서도 경기 침체를 예상한다는 이코노미스트 비율이 2월 20%에서 3월 27.5%로 늘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의 비슷한 조사에서도 1월 18%였던 경기 침체 가능성이 이달 들어선 28%로 올랐다.

      금융시장의 우려가 인플레이션, 전쟁을 거쳐 '경기 침체' 가능성으로 옮겨가고 있다. 수요가 위축되며 경기가 위태위태한 가운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이하 연준)가 더욱 강력한 긴축정책을 천명하며 미국을 시작으로 전 세계 경기가 급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미국 제조업 경기는 이미 둔화가 시작됐고, 국내 제조업 경기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연준이 옳은지, 시장의 우려가 옳은지는 올 가을께 판가름날 전망이다. 일단 연준은 5월과 6월 두 차례 기준금리 50bp(0.5%포인트) 연속 인상과 양적긴축을 기정사실화한 상황이다. 연준은 이후 '긴축 충격'이 시장에서 어떻게 소화되는지 지켜보고, 통화정책의 방향을 가늠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1분기 우려의 핵심이었던 인플레이션은 2분기 중 피크아웃(고점 후 하락)이 유력한 상황이다. 3월 미국 근원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월대비 0.3% 상승하며 예상치 0.5%를 밑돌았다. 물가 상승이 본격화한 것이 지난해 2분기였던만큼, 전년대비 상승률도 점차 안정화할 전망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변수가 아닌, 상수가 되고 있다. 전쟁 직후 치솟았던 국제 유가는 수요 둔화 우려로 이달 초 한때 서부텍사스산 중질유(WTI) 기준 배럴당 95달러까지 하락하기도 했다. 전쟁의 영향을 크게 받았던 유로스탁스 지수는 3월 초 저점에서 가파른 회복세를 보인뒤 이달 들어선 안정을 유지하고 있다.

      올해 초만 해도 시장은 연준에게 기대하는 바가 컸다. 유가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이 어느정도 안정세를 보이고, 인플레이션도 피크아웃하면 '과격한 긴축'보다는 연착륙을 유도할 것이라는 의견이 주류였다. 실제로 연준은 지난 1월 첫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선 기준금리를 동결했고, 50bp 인상설이 득세하던 3월 FOMC에서도 전쟁 등 불확실성을 이유로 25bp(0.25%) 인상에 그쳤다.

      이달 들어 이런 기대감은 매우 희박해진 상태다. 3월 하순부터 연준 인사들은 극도로 매파적인 발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부터 5월 기준금리 50bp 인상 가능성ㆍ중립금리(2.4%) 이상 인상 가능성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이달 초 '극(極) 비둘기파'로 통하던 레이얼 브레이너드 연준 부의장 지명자마저 '빠르고 강력한 긴축'을 언급하자, 시장은 발작을 일으켰다. 미국 국채 시장수익률과 채권 변동성지수가 폭등하고, 증시는 급락했다.

      연준이 돈줄 죄기에 나서며 올해 들어 미국의 가처분소득 증가율은 실질적으로 마이너스에 접어들었다. 소비 지출 역시 둔화하며 미국 제조업 재고순환 지수 역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 소매판매 지수는 2020년 하반기 이후 줄곧 소매재고 지수를 웃돌았으니, 최근 재고지수가 판매지수를 따라잡았다. 소비는 줄고 점차 재고가 쌓이고 있는 것이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JP모건이 최근 1분기 실적발표를 통해 대손충당금을 14억6000만달러(1조8000억여원) 쌓았음을 밝혔는데, 이는 시장 전망치였던 6억1700만달러의 두 배가 넘는 규모"라며 "경기 침체 가능성이 높아진 점을 감안해 9억달러 이상 충당금을 늘렸는데, 최근 시장 금리 상승세에도 은행 주가가 좋지 않은 배경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 이는 국내 경기에도 이미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은 국내총생산(GDP)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28%대로 산업구조가 비슷한 독일(22%)이나 일본(21%)보다도 높다. 국내 수출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기준 14.9% 중국에 이은 2위다. 미국의 경기 침체는 국내 제조업 침체에 이어 국내 경기 침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 셈이다.

      미국 공급관리자협회(ISM) 제조업 신규주문 대비 재고지수는 한국 제조업 재고순환비율과 상관관계가 높다. 미국 ISM 제조업 지수가 꺾이며 한국 제조업 재고순환 비율 역시 마이너스대로 접어든 상황이다.

      실제로 국내 산업 회복세가 꺾였다는 점은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월 국내 산업생산은 전월보다 0.2% 감소했다. 2개월 연속 감소세였다. 설비투자는 마이너스로 전환됐고, 재고 대비 출하비율(재고율)은 116%로 전월 대비 3.4%포인트 증가했다.

      코스피지수가 최근 힘을 쓰지 못하고 있는 것 역시 이익 모멘텀이 약화되고 있는 까닭이다. 국내 코스피 전년대비 주당순이익 상승률은 지난해 7월을 고점으로 하락 전환했고, 지금도 하락세가 진행 중이다. 한국의 지난해 경기 회복세는 미국의 양적완화와 소비 회복에 기댄 부분이 있는만큼, 미국이 긴축에 들어가며 악영향을 피할 수 없게 된 셈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지난 14일 기준금리 0.25포인트 추가 인상 결정을 내렸다. 성장보다는 물가에 방점을 찍은 선택으로 풀이된다. 다만 빅스텝(한 번에 50bp) 인상이나 급격한 인상에 대해서는 다소 선을 긋는 모양새다. 경기 위축 우려가 여전한 까닭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후보는 19일 인사청문회에서 "기준금리 인상은 적절"하다면서도 "우리나라 물가상승률은 4%대로 높은 수준이지만 성장률은 미국만큼 견실한 상황이 아니라서, 미국보다 속도를 조심스럽게 가야하는 상황"이라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