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재값·금리 인상에 분양 침체까지...겹악재 건설사들 곳간 관리 ‘비상’
입력 2022.04.21 07:00
    시공 가격 인상에도 원가 부담 전가 어려워
    분양가 제한·금리인상에 수익성 저하 불가피
    분양 시장 침체도 우려...장기적 잠재 리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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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 = 윤수민 기자)

      수년간 부동산 호황을 누렸던 건설사들이 금리 인상 및 인플레이션 국면에서 좌불안석이다.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시공비용은 늘어나는데 분양가 상한제로 손발이 묶여 있고, 시장 금리가 빠르게 오르며 유동성 확보에도 비상이 걸렸다. 대출 금리 상승으로 부동산 분양 시장이 침체 신호를 보이는 것 역시 부담 요소다. 당분간은 지금까지 벌어둔 돈으로 버티겠지만 악재가 장기화하면 건설사들의 수익성 관리에 비상이 걸릴 수밖에 없다.

      최근 글로벌 인플레이션과 우크라이나 사태 여파로 건설업계 원자재 물가가 치솟고 있다. 주요 건설 자재인 철근과 시멘트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 중이다. 4월 초 기준 철근 가격은 톤당 114만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35%이상 올랐다. 시멘트 판매가격 역시 1종 시멘트 기준 톤당 9만8000원으로 이전보다 15.2% 뛰었다. 지난 1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으로 안전보건 비용이 늘어난 건설사들은 ‘엎친 데 덮친 격’이라는 반응이다.

      대형 건설사 기준 일반적인 도급 공사에서 자재 관련 직접비용 비율은 전체 원가의 약 24%고, 매출의 약 30~35% 수준으로 추산된다. 업계에선 도급액이 그대로인데 자재 가격이 10% 상승한다면 영업이익률은 약 3%포인트 하락한다고 본다. 작년 4분기 주요 건설사의 영업이익률은 4.9%로 지난해 1분기 7.7%에서 큰 폭으로 떨어졌는데, 올해도 이런 추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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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 = 윤수민 기자)

      문제는 비용 전가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통상 건설사들은 시공비용이 오르면 도급액을 늘리자고 협의하거나 분양가를 높여 충당한다. 발주자가 모든 비용과 보수를 지급하는 실비보수가산계약이나 공사 이행 후 수행 물량을 기반으로 공사비를 지급하는 단가계약 계약의 경우 자재 가격이 오르더라도 큰 타격이 없다.

      그러나 민간 공사에선 발주처에 늘어난 비용을 분담하자고 요청하기 어렵다. 공사비 총액을 미리 일정금액으로 정하고 계약하는 방식(총액계약)을 주로 쓰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민간 사업이 건설사 호황을 이끌었지만 자재비 인상이 이어지면 수익성 악화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국내 최대 재건축 사업인 둔촌주공아파트 공사는 건설사와 조합이 분양 지연 및 공사비 증액을 두고 갈등을 빚다 공사가 중단되기도 했다.

      비용 부담을 분양가에 반영하기도 쉽지 않다. 지난해 정부는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 적용 지역을 크게 확대했다. 이전까지 사실상 공공택지에만 적용되던 분양가 상한제가 민간택지로 영역이 넓어지며 주택 공급 물량이 축소됐다. 건설사들이 사업성 저하를 우려로 공사 진행을 꺼려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분양가 상한제 규제가 완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신규 사업이 아닌 기존 사업의 경우 여전히 분양가 상한제 규제를 받을 가능성이 크다. 결국 자재값 상승 등 공사비용 증가를 전가하기 쉽지 않다는 의미다. 이에 건설사들은 수주한 사업을 수행하는 데 주저하거나 신규 사업을 따내는 데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 건설 관련 기업분석 연구원은 “분양가 상한제가 다소 완화되더라도 기존 사업이 혜택을 받기는 쉽지 않다”며 “진행 중인 사업은 도급액이 이미 결정돼 있기 때문에 사업비 증액 요청을 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건설사 입장에선 시장 금리가 상승하는 점도 부담스럽다. 모든 기업들이 자금 조달 비용이 늘어나는데 민감하겠지만 건설업은 특히나 금융 지원의 중요성이 큰 산업이다. 건설비로 쓰일 자금을 모아야 하는데 대출 금리가 오르면 지분 투자자에 돌아가는 돈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시행사 입장에선 이전과 같은 수익성을 내려면 시공 비용을 줄여야 할 것이고 이는 건설사의 수익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서로 먹을 파이가 줄어들다 보니 사업 파트너로 호흡을 맞춰왔던 건설사와 프로젝트파이낸싱(PF) 전문 금융사 사이에도 갈등의 소지가 생기고 있다.

      한 증권사 PF 관련 담당자는 “현재 건설사들은 자재값이 인상되다보니 증권사 PF 부서와 서로 공사규모를 협의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건설사들은 손해를 보면서까지 공사금액을 내릴 수는 없는 노릇이라, 증권사 PF 부서에서는 시행사와 대주단까지 모집했는데 시공사 선정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건설사들의 자금조달에도 빨간 불이 켜진 상황이다. 이미 올해 초부터 일부 건설사들은 회사채 미매각 사태를 경험하고 있다. 올해 초 HDC현대EP는 300억원 규모의 회사채 발행을 준비했다가 발행을 미뤘고 현대건설 역시 2월 약 2000억원의 회사채 발행을 준비했다가 무기한 연기했다. SK에코플랜트는 지난 2월 약 1500억원 규모의 회사채 발행 수요예측을 실시했다가 수백억원 규모의 미매각을 감당해야 했다. 일부 대형사는 민평금리 이하 발행을 고집하다가 시장금리 상승으로 발행 기회를 놓치기도 했다.

      분양 시장이 침체될 것이란 예상은 점차 늘고 있다. 최근 국내 금리 인상 기조로 올해 말까지 은행권은 2%,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상단 기준 7%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여기에 그간 급격히 올라버린 국내 부동산 가격을 감안하면 올해부터 부동산 분양 시장 역시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이미 서울 도심 외곽 지역을 시작으로 아파트 청약 열기가 식어가는 추세다. 이달 초 강북구 미아동 ‘한화 포레나 미아’와 지난달 강북구 수유동 ‘칸타빌 수유팰리스’의 청약 경쟁률은 각각 7.24대 1, 4.14대 1에 그쳤다. 작년 서울 강서구나 성북구 등 지역의 청약 경쟁률이 많게는 세 자릿수까지 나타났던 점을 감안하면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물론 원자재값 인상, 조달 비용 증가, 분양 시장 침체 등 악재가 이어지고 있다고 해서 건설사들이 당장 존립을 걱정할 수준은 아니다. 지난 수년간 급격히 오른 분양가 덕에 얼마간의 원가 상승분은 감내할 수 있다는 평가다. 다만 악재가 장기화하면 살림 걱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한 건설업계 전문가는 “건설사들은 지난 호황 때 비싸게 선분양 해왔기 때문에 자재비가 일부 올라가는 정도는 수익성에 큰 영향이 없을 것이고 사업대금도 내년 이후까지 나눠받을 테니 올해 현금흐름이 나쁘지 않을 것”이라며 “다만 앞으로 분양이 되지 않거나 분양가를 낮춰야 하는 것이 훨씬 큰 부담이며 내년 이후부터 실적 하락 압박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