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그룹, 이사회 중심 경영 속도내는데…M&A·사업확장은 무풍지대?
입력 2022.04.22 07:00
    SK그룹, 이사회 힘 싣지만 아직 ‘거수기’ 색채 남아
    대기업 이사회는 사외이사도 반대 목소리 내기 부담
    M&A 등 투자 결정도 비슷…다만 일부선 반대 의견
    사업 불확실성 크거나 그룹 내 조율 안될 경우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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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SK그룹은 이사회 중심 경영을 앞장서서 천명하고 강화해가고 있지만 ‘거수기’에서는 완전히 탈피하지 못한 모습이다. 특히 그룹 차원에서 파이낸셜 스토리를 앞세워 적극적인 확장 전략을 펼치고 있다 보니 M&A나 투자 안건에 대해 계열사 이사회가 제동을 걸기 쉽지 않았다.

      다만 그룹 내에서 조율이 되지 않은 경우, 혹은 통제하기 어려운 변수가 있는 경우에는 이사진이 반대의사를 내거나 부결되는 사례가 있었다.

      SK그룹에서 이사회 중심 경영은 최태원 회장의 부친인 고(故) 최종현 회장 시절부터 강조해 온 오래된 화두다. 작년 SK그룹은 여러 차례 ‘거버넌스 스토리 워크숍’을 열고 대표이사 평가와 보상을 각 이사회에서 결정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SK㈜는 올해 주주총회에서 이사회 경영진 평가를 지주사가 지분을 가진 계열사로 확대해 가기로 했다.

      갈수록 SK그룹 계열사의 이사회에 힘이 실리고 있지만 아직 거수기 색채가 다 빠졌다고 보기는 어려운 모습이다. 작년 사례를 살펴 보면 이사회가 모든 안건에 대해 100% 찬성을 한 계열사도 여럿 있었다. 이사회 상정 안건은 사전에 조율되는 경우가 많으니 웬만하면 이견이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그보다는 지주사 체제와 오너의 영향력이 공고한 상황이라 다른 뜻을 내기 부담스러운 면이 있다는 평가다.

      SK그룹은 지난 몇 년간 M&A와 투자에 공을 들이고 있었다. 일정 규모 이상의 거래는 이사회 의결을 거쳐야 하는데, 각 계열사들이 경쟁하듯 확장에 나서는 상황이다. 회사가 정한 성장 목표에 이사회도 힘을 실어주지 않을 수 없었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외부 전문가로 초빙된 사외이사라 하더라도 오너가 이끄는 대기업 이사회 안에서는 기업이 나가는 방향에 대해 이견을 제기하기가 부담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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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만 일부 투자 거래에선 이사회에서 반대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불확실성이 크거나 회사의 검토가 부족한 경우, 그룹과 조율이 되지 않은 경우 등 확신이 들지 않은 사례들이다. 이사 과반 참석, 참석자 과반의 찬성이 없으면 이사회를 넘을 수 없다.

      SK하이닉스는 작년 재단법인 숲과나눔 기부금 출연 안건에 대해서 이사진 전원이 반대표를 던졌다. 재단 운영계획과 출연 금액에 대해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이 안건은 몇 개월 뒤 기부금 출연 조건을 추가해 수정 가결됐다.

      회사 이사회는 작년 11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부지 분양 계약 체결 안건에 대해서도 전원 반대 의사를 냈다. 사업 내용 전반적으로 추가 심의가 필요하다고 봤다. SK하이닉스는 2019년 초 정부와 함께 클러스터 조성 계획을 밝혔지만 토지 보상과 각종 규제 문제로 늦어졌다. 회사는 몇 주 뒤 수정안건을 올렸고 이사회 전원의 동의를 받았다.

      SKC는 작년 9월 실리콘 음극재 업체 지분 투자 안건을 이사회에 올렸다 부결됐다. 서두르다가 SK그룹과 사업 영역 조율이 잘 되지 않은 것 아니냐는 분석이 있었다. 당시 SK㈜와 합병을 앞둔 SK머티리얼즈가 대규모 실리콘 음극재 사업 진출 계획을 밝혀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완재 당시 SKC 사장은 찬성, 장동현 SK㈜ 대표이사와 이성형 SK㈜ 재무부문장은 반대표를 던졌다.

      SKC는 한 달여 뒤 수정안을 올렸는데 그 때는 이사회의 만장일치를 받았다. 영국 넥시온과 합작법인(JV) 설립을 꾀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여러 재무적투자자(FI)를 끌어들여 지분 투자하는 형태로 축소됐다. 회사는 이사회에서 사업 진출 시점과 계약 조건에 대해 보완하라는 주문이 있었지만 그룹에서 음극재 사업 진출에 대해 반대한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SK에코플랜트는 친환경 기업으로 색채를 빠르게 바꿔가고 있다. 작년에만도 다양한 영역의 환경기업들을 인수하며 이사회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다만 클렌코 인수에서는 만장일치가 아니었다. 클렌코가 지자체와 벌이고 있는 공방에 부담을 느꼈을 것으로 풀이된다. 청주시는 클렌코가 허용 물량보다 많은 폐기물을 소각하고, 시설을 무단 증설했다는 점을 문제삼았고 이후 법적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작년 6월 M&A 계약 체결 후 결론이 나지 않는 상황이다.

      SK네트웍스는 작년 11월 온라인 매트리스 기업 지누스 지분 인수 및 증자 참여를 추진했으나 이사회를 넘지 못했다. SK그룹 쪽 이사들이 반대표를 던진 것 아니냐는 시선도 있었는데, 실제 반대표를 던진 것은 모두 사외이사들이었다. 회사는 휴대폰 중심 정보통신 유통사업, 글로벌 트레이딩 사업들을 주력이고 자회사 SK매직은 렌탈 사업을 하고 있다. 사외이사들은 많은 돈을 들여 지누스를 인수하기에는 기존 사업과 시너지 효과가 불확실하다고 봤다. 일부 사외이사는 타이어픽사업 현물 출자 건에서도 반대의 뜻을 냈다.

      다른 투자업계 관계자는 “SK네트웍스 사외이사들이 매트리스 사업이 왜 필요하냐는 의견을 보여 지누스 인수가 무산됐다”며 “SK네트웍스의 거래 조건이 현대백화점이 지누스를 인수하는 데 기준점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SK네트웍스의 경우 작년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보니 이사회가 보다 적극적인 의사 개진을 했어야 할 가능성도 있다. 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은 작년 3월 횡령배임 혐의로 구속됐다. 최 회장은 그해 9월 구속기간 만료로 출소했고, 10월 회장직을 포함한 모든 직책에서 사임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