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당금 얼마나 설정할까'...올해 금융지주 실적 가늠자
입력 2022.04.22 07:00
    22일 4대금융 일제히 실적 발표...일각선 신중론 제기
    비은행 부문 낙관 어려워...증권 최소 40% 이상 감익
    충당금 전년比 20% 상승? JP모건은 2배 이상 적립
    하반기 경기 침체 가능성 커지고 성장률 예상은 낮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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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1분기 국내 대형금융그룹 실적 시즌의 핵심 키워드로 '충당금'이 꼽힌다. 금리 상승으로 인한 대출 부실에 자영업자 대출 연장 정책, 하반기 경기 침체 등을 감안하면 충당금을 대폭 쌓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위험 예측이 쉽지 않아 자칫 주주들의 반발을 살 수도 있는 까닭이다.

      미국 상업은행인 JP모건체이스가 1분기 대손충당금 규모를 예상보다 대폭 늘리며 신호탄을 쏜 상황이다. 국내 금융사들이 이런 기조를 얼마나 따라갈 진 1분기 실적 발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을 전망이다. 주가는 이미 충당금에 대한 불안감을 반영하고 있다.

      국내 4대 금융지주는 22일 동시에 올해 1분기 실적을 발표한다. 1분기 인플레이션 우려로 인한 기준금리 인상으로 시장 금리가 급등함에 따라 은행 실적의 바로미터가 되는 순이자마진(NIM) 역시 크게 상승한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2년간 대출 자산 규모가 급증한 상황에서, 자산의 수익성까지 좋아지며 은행을 위주로 역대급 실적이 예상되고 있다.

      일각에선 팡파레를 울리기엔 다소 이르다는 신중론이 제기된다. 금리 상승으로 은행 계열사의 실적이 좋아진 건 사실이지만, 금융지주 전체적으로 보면 비은행 부문의 부진이 생각보다 깊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증권업의 경우 거래대금이 크게 줄고 채권 관련 트레이딩 손실이 우려되는데다, 기업금융(IB) 부문도 뚜렷하게 두각을 보이지 못했다. 주요 상장 5대 증권사의 지난해 1분기 당기순이익 합계는 1조5000억원 안팎이었는데, 올 1분기 순이익 컨센서스는 1조1200억원 안팎으로 형성돼있다. 여기서 10~15%가량 컨센서스 추가 하회 가능성이 크다는 게 중론이다. 지난해 1분기 대비 40% 안팎의 감익이 불가피한 상황으로 풀이된다.

      보험사 역시 상당한 부진이 예상된다. 2월 이후 시장금리가 급등하며 채권 평가손실이 누적됐다는 지적이 많다. 이번 분기에만 조 단위 평가손실을 본 곳이 있다는 흉흉한 소문이 떠돌 지경이다. 국제회계기준에 따른 자본 부담 역시 늘어날 전망이다. 금융권에서는 시장금리 1% 상승시 국내 보험사 전체 자기자본이 30조원가량 줄어드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무엇보다 시장의 관심을 끄는 요소는 은행이 반영할 대손충당금이다. 

      충당금은 위험성을 평가해 손실 우려가 있는 자산의 일정부분을 미리 적립해놓는 일종의 재무적 완충장치다. 자산의 건전성에 따라 최저 적립 기준은 규제로 규정돼있고, 기준 이상의 적립에 대해선 금융기관이 자율적으로 판단하도록 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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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표면적인 부실 위험은 역대 최저 수준이다. 2019년초 0.52%였던 원화대출 연체율은 지난 2월 기준 0.25%에 불과하다. 연체율 등 대출 자산의 부실 위험이 수치상으로 크게 줄어들자, 주요 은행들은 지난해 코로나19 확산 한복판에서도 충당금 규모를 대폭 줄였다. 연간 당기순이익 4조원을 돌파한 금융지주가 두 곳이나 나온 배경으로도 꼽힌다.

      문제는 현재 잠재 부실 규모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코로나19 확산 직후 정부는 소상공인을 중심으로 원리금 상환을 면제해주는 정책을 도입했다. 올해 초 일몰 예정이었던 해당 정책은 또 다시 9월까지 유예된 상황이다. 소상공인 대출 잔액은 그 사이 900조원을 돌파했다. 유예 정책이 끝난 후 이 중 얼마나 부실화할 진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는 판국이다.

      하반기로 갈수록 자산이 부실화할 가능성도 점차 커지고 있다. 시장금리가 치솟으며 각종 대출금리 역시 고공행진하고 있다. 지난해 2~5%였던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현재 최고 7%를 넘어서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3년간의 자산 가치 급등으로 인해 신용대출을 중심으로 가계대출이 치솟은 상황에서 이자 상환 부담이 커지면 자연스레 대출 부실율도 오를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하반기 경기 침체 우려까지 번지고 있다. 인플레이션과 전쟁, 여기에 미국의 통화 긴축정책까지 겹치며 국내 경제 성장 역시 기대를 크게 밑돌 가능성이 커졌다. 국제통화기금(IMF)은 19일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올 1월의 4.4%에서 3.6%로 낮췄다.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역시 3.0%에서 2.5%로 0.5%포인트나 하향 조정했다.

      앞서 실적을 발표한 글로벌 은행들은 이 같은 매크로 환경 변화를 예민하게 반영하고 있다. 미국 상업은행 JP모건체이스는 올 1분기 14억6000만달러(1조8000억여원)의 대손충당금을 쌓았다. 이는 시장 전망치였던 6억1700만달러의 두 배가 넘는 규모였다. JP모건은 경기 침체 가능성이 높아진 점을 감안해 9억달러 이상 충당금을 늘렸다고 설명했다.

      아직 증권가에서는 국내 금융지주들이 이정도로 선제적인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는 내다보지 않고 있다. 증권가에서 추정하는 올해 4대 금융지주의 충당금 적립 규모는 4조2000억원 안팎으로, 지난해 대비 30%가량 늘어난 수준이다. 30% 늘렸다 해도 2020년의 4조1000억원과 비슷한 수준이다. 특히 1분기 충당금 적립 규모는 전년동기 대비 평균 10~20%가량만 더 반영할 거란 추정이 우세하다.

      이런 우려들은 이미 주가에 반영되고 있다. 주요 금융지주 주가는 금리 상승기임에도 박스권에 머물고 있다. 특히 대장주 KB금융지주는 2월초 기록한 전고점 대비 10% 가량 낮은 가격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3월 중순 이후 한 달 가량이나 은행주의 부진이 지속됐는데, 실적 시즌을 앞두고 충당금에 대한 부담이 반영됐을 거란 평가가 나온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충당금 적립 규모는 일정부분 경영진의 경기에 대한 판단이 작용하게 된다"며 "미리 보수적인 수준으로 충당금을 더 쌓고 갈지, 당장 분기 실적에 집중해 최소한의 충당금만 설정하고 갈지에 따라 하반기 주주들이 받게 될 충격의 강도가 갈릴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