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잔치 앞둔 VC업계, 펀드 청산 앞두고 심사역 수익분배 갈등 점화
입력 2022.04.29 07:00
    2017~2018년 결성 벤처펀드, 손대는 것마다 '대박행렬'
    청산 다가오자 성과보수 분배가 첨예한 갈등 요소로
    대체로 VC 분배규정 명확하지 않아…해석 여지 다수
    다시 오기 어려운 호황기, 수백억 캐리에 소송 불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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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벤처캐피탈(VC) 업계가 성과보수 분배갈등으로 연일 시끄럽다. 이들은 최근 수년간 막대했던 유동성 흐름에 올라타 돈잔치를 벌여왔다. 청산수익이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펀드 만기가 다가오자 '돈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가 때아닌 대립 쟁점으로 떠올랐다. 국내 VC 분배규정은 그간 해석에 따라 모호한 여지가 있다는 평이 많았다.

      2017~2018년에 결성된 벤처펀드들이 갈등 주 대상이 되고 있다. 문재인 정권 출범과 함께 정부 출자 기조가 강해지면서 벤처펀드로 막대한 유동성이 공급되기 시작한 때였다. 각국 정부에서도 경기부양을 위해 유동을 쏟으면서 VC 투자에 더욱 불을 지폈고, 국내 기업들도 수혜를 입었다. 

      두나무와 크래프톤, 하이브 등 소위 '대박 딜'도 많은 시기였다. 특히 두나무는 다수 VC들에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한 포트폴리오다. 두나무 투자지분에 대한 평가이익이 각각 급증하면서 투자회사들은 일제히 돈방석에 앉았다. 플랫폼 기업들의 약진이 눈에 띈 시기이기도 했다. 팬데믹으로 디지털 전환 추세가 가속, 정보통신기술(ICT) 기반 플랫폼 기업들이 특수를 누렸다. VC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플랫폼 기업들은 그야말로 손대는 곳마다 대박 행렬이 이어졌다. 

      이 시기 결성된 펀드들이 최근 만기가 도래하거나 가까워지면서 성과급 규모가 주요 의제로 떠올랐다. 투자한 기업이 조 단위 몸값을 넘는 유니콘으로 성장할 경우 투자심사역들은 잭팟을 기대한다. '누가 얼마를 받아갔다더라', '이번에 어디가 얼만큼 수익을 냈다더라' 등의 언급이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관건은 '어떻게 분배할 것이냐'다. 운용사들은 펀드 청산 시 내부수익률(IRR)이 일정 기준을 넘길 경우 초과 성과의 일부를 받는데, 대체로 회사와 담당자들이 50대 50, 혹은 60대 40의 비율로 나눠가지는 경우가 많다. 사내 내규와 계약서에 구체적으로 명시되는 곳이 있는가 하면 관련 항목이 아예 언급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명시됐더라도 대체로 해석에 따라 다르게 볼 여지가 있어 모호하다는 평이 많다. 투자처 발굴과 사후 관리 중 어느 쪽에 더 중점을 둘 것인지에 따라 분배 비율도 달라질 수 있다. 

    • 성과보수 분배에 대한 불만에 회사와 갈등을 겪는 경우도 최근 늘었다. 성과보수 지급을 미루거나 규모를 축소시키는 곳들이다. 퇴사 물결도 일고 있는데, 운용사(GP) 난립 배경과도 연관이 있다는 설명이다.

      회사의 논리는 이렇다. "다같이 잘 되는 시기였지 너희가 잘해서 번 것이냐", "하우스 이름값으로 쉽게 투자 기회 얻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등이다. 반면 심사역들 사이에선 VC 투자는 조직의 역량보다는 심사역 개인의 역량이 사실상 모든 투자성과를 결정한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유수 유니콘 기업들을 배출한 스타 벤처캐피탈리스트는 "VC 투자는 결국 사람에 귀속된다. 조직 브랜드 파워가 VC 투자에 큰 요소라면 기업형벤처캐피탈(CVC)이 일반 VC에 비해 이렇다 할 성과를 내고 있지 못하고 있는 상황부터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조직이 아닌 개인이기 때문에 대우에서도 극단적인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실제 심사역들 간 투자성과는 극단적으로 갈린다"는 의견을 냈다.

      업계선 미지급 성과급 소송으로 법정공방이 벌어진 카카오벤처스 뒤를 이어 비슷한 줄소송이 출회할 가능성이 크다 보는 분위기다. 워낙 좁은 업계로 알려져 있지만 다시 오기 어려운 호황기, 수백억원의 성과보수는 '어쩌면 다시 오기 어려운 평생 한번의 기회'라는 인식이 있다. 막대한 수익률로 청산될 것으로 예상되는 펀드들도 아직 다수 남아있다. 

      "돈 앞에 형 동생 의미 없더라"는 토로가 심심찮게 들려온다. 돈잔치 대열에 못 낀 부진한 하우스들은 분열 요소가 없어 강제로 태평성대를 겪고 있다는 후문까지 나온다. VC업계 외부에선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데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 되는게 아닌지 모르겠다"는 우려 섞인 시선도 있어 보인다.  

      최근 입사하는 90년대생 심사역들은 입사 시점부터 계약서 상에 성과분배 기준을 명확히 할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VC 고위층 사이에선 '격세지감'이란 말이 나오지만 젊은 심사역들의 문화를 반영하는 세대변화란 시각도 있다. 이참에 VC 성과보수 분배문화를 뜯어고치자는 목소리가 있다. 

      최근 금리 인상기에 접어들면서 이들 VC의 호황도 차츰 저물어가고 있다는 의견도  언급되기 시작했다. 한 VC 대표는 "금리가 계속 오르면서 자금이 마르기 시작하면 지금 같은 돈잔치도 쉽지 않을 것"이라며 "비상장주식 거품론이 이는 상황에서 최근 일련의 분배 갈등도 조심스럽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