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마다 사장 바뀌는 농협생명... 건전성 우려에 계속되는 자본확충
입력 2022.05.03 07:00
    농협생명, 재무 건전성 '빨간불'…자본확충 시급
    그간 외형확장 위해 '저축성 보험' 판매 치중한 탓
    2020년 채권분류 바꿔 재무 건전성 개선 '착시효과'
    역대 사장들…농협중앙회 출신으로 보험 경험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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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농협생명 경영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재무 건전성 악화로 자본확충에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고 있다. 당기순이익 중심의 단기 성과에 집중한 결과다. 2년마다 최고경영자(CEO)가 바뀌니 장기적인 안목에 따른 의사 결정보단 단기 성과에 집착한다는 지적이다.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요구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농협생명은 지난 20일 이사회를 열고 농협금융지주를 상대로 3750억원 규모의 증자에 나서는 방안을 결정했다. 앞서 지난달에는 6000억원의 후순위채를 발행한 바 있다. 올해 들어서만 1조원 규모의 자본확충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숨 가쁜 자본확충은 떨어진 지급여력비율(RBC)을 개선하기 위함이다. 농협생명의 지난해 말 기준 RBC 비율은 210.5%로 전년 대비 76.5% 하락했다. 작년 하반기부터 채권 금리가 가파르게 올라가면서 RBC 비율이 크게 떨어졌다. 장기 국고채 금리가 10bp(1bp=0.01%) 오르면 RBC 비율이 1~5%포인트 하락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에 대해 농협생명은 “금리가 오르면 자본조달 비용은 올라가고 RBC 비율은 떨어지기 때문에 최대한 자본확충을 하려는 것”이라며 “보험사들은 적정한 시기를 고려해 증자나 후순위채 등 다양한 방법을 고려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금리가 오르는 대외환경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자본확충으로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농협생명은 10년 만기 국고채 금리가 연 1.4%까지 떨어졌던 2020년 9월 채권 재분류를 단행했다. 만기보유증권을 매도가능증권으로 재분류하면서 저금리 상태에서 채권 평가익이 크게 늘었다. 

      이에 따라 당시 193.5%까지 떨어진 RBC 비율 314.5%까지 상승했다. 즉 보험사의 재무 상황이 좋아진 것도 아닌데 채권분류만 바꿔 놓음으로써 건전성이 좋은 보험사로 탈바꿈한 것이다.

      이런 채권 재분류는 보험사들 사이에선 관행처럼 받아들여졌다. 저금리 상황에서 채권 분류를 바꾸면 평가이익이 발생하고, 나아가 이전에 사 놓았던 고금리 채권을 팔아 이익을 부풀리기도 했다. 이를 두고 보험업계에선 ‘제 살 깎아 먹는 행위’라는 비판이 많았다. 보험업의 특징상 고객의 보험금을 받아 장기로 운용해서 수익을 남겨야 하는 데 이런 방식은 단기 극약 처방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런 방식이 그간 보험사에 통용되어 왔던 건 보험사 CEO의 성과평가와 맞물려 있다는 게 업계의 통설이다. 보험사 영업은 100년을 보고 해야 한다고 하지만 임기가 짧으면 2년에 불과한 CEO들은 당장의 성과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구조다.

    • 농협생명에서도 이런 행태가 발견된다. 2015년 이후 농협생명의 CEO는 2년 임기 원칙이 지켜지고 있다. 김용복(2015~2017), 서기봉(2017~2019), 홍재은(2019~2020)을 거쳐 현재 김인태 사장이 농협생명을 이끌고 있다. 

      이들 CEO 모두 농협중앙회 출신이란 공통점이 있다. 김인태 사장은 국민대 금속공학과를 나와 1991년에 농협중앙회에 입사했다. 중앙회 금융기획부에서 시너지개발팀장과 금융기획팀장을 지낸 뒤 금융지주 부사장, 은행 부행장 등을 거쳐 농협생명 사장이 됐다. 이전 CEO들도 이와 비슷한 커리어를 밟은 인사들이 차지했다.

      이들 모두 2년 임기에 보험사 경험이 전무하다는 점이 있다. 금융 경험 대부분을 농협이나 농협은행에서 보냈다. 즉 농협생명은 농협 조직 내에서도 농협은행 부행장 거쳐 가는 계열사 CEO 중에서 ‘꽃보직’ 정도도 받아들여진다. 농협금융 내에서 규모가 있는 계열사이기 때문이다. 너도나도 탐내는 자리이다 보니 2년 임기 후에는 후임자에게 물려줘야 한다. 농협금융 내부적으로도 CEO 2년 임기가 관행처럼 굳어져 있기도 하다.

      하지만 보험업의 특성은 이런 관행으로 경영되기에는 다소 거리가 있다. 다른 4대 금융지주 CEO들은 보험 전문가를 앉히고 경영성과에 따라서 장기간 임기를 보장한다. 그 이유는 앞서 설명한 대로 보험업의 특성상 단기 성과에 치중하면 안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당장 농협생명을 살펴보면 지나치게 저축성보험 판매가 많다는 지적이 많았지만, 체질 개선은 이뤄지지 않고 있는 모양새다. 보험상품은 크게 저축성보험과 보장성 보험이 있는데 저축성 보험은 당기순이익 증가에는 큰 효과가 있지만 보험사에는 그닥 도움이 되지 않는 상품으로 받아들여진다. 

      한번에 목돈이 들어오지만 결국 고객에게 돌려줘야 해서다. 농협생명은 이런 저축성보험 비중이 수년째 70%에 육박한다. 다른 보험사들은 저축성 보험 비중을 이보다 훨씬 낮은 수준에서 유지하고 있다. 삼성생명과 한화생명의 경우 최근 3년간 일반계정 기준 저축성 보험 비율은 50% 내외다.

      은행의 당기순이익 중심의 경영에 익숙한 CEO들이 2년 임기만 하고 떠난다면 저축성보험 판매를 통한 실적 끌어올리기 유혹을 뿌리치기 쉽지 않다는 평가다.

      다만 IFRS17이 도입되면 이런 관행에는 큰 변화가 예상된다. 보험사 평가의 기준이 순이익에서 보험사의 내재가치로 바뀌게 되고, 보험사 실적의 민낯이 드러나게 된다. 농협생명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 이뤄지지 않으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식 자본확충이 계속될 수밖에 없고, CEO들도 이전과 같이 순이익으로만 평가받지 않게 된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IFRS17 도입이 되면 그간 CEO들의 행태가 고스란히 드러나게 된다”라며 “당장 내년부터 시행이란 점에서 체질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