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영구전환사채 3000억, 이달 중순 보통주 전환여부 결정될 듯
입력 2022.05.04 07:00
    대한항공 92회 CB, 5월 중순 조기상환 통보 가능성
    산은ㆍ수은 주식전환 여부 두고 딜레마
    보통주 전환하면 오버행 이슈로 소액주주 반발 예상
    조기상환 응하면 이익포기로 '배임' 논란에 휩싸여
    HMM사례 참고할 듯…조기상환 청구 들어오면 결정될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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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보유한 3000억원 규모 대한항공 영구전환사채(CB)를 주식으로 전환할지 결정할 시기가 도래했다. 대한항공으로서는 이자 부담 급등 우려로 조기상환을 청구할 가능성이 높은데, 국책은행들은 이에 맞춰 CB를 상환해줄지, 아니면 주식으로 전환해 '고수익'을 노릴지 결정해야 한다. 

      결정 데드라인은 이제 3주 가량 남았다. 현재로선 산은ㆍ수은이 작년 해양진흥공사의 HMM 사태처럼 대한항공의 판단을 기다린 후에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대한항공은 오는 6월 3000억원 규모 무보증 사모전환사채(92회 CB)의 '조기상환' 청구 권리를 가지게 된다. 이는 지난 2020년 6월 22일 발행된 영구전환사채로, 대한항공의 유동성과 자본확충 등 정상화를 위해 발행되어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이 각각 1800억원과 1200억원 규모를 인수했다. 

      발행 1년이 되는 지난해 6월22일부터 보통주 전환이 가능했지만 아직 산은ㆍ수은은 이를 전환하지 않았다. 그리고 발행 2년이 되는 올해 6월 22일부터는 스텝업(Step up) 조항에 따라 이자부담이 급등하게 된다. 그간 연 2.28% 금리를 적용해왔지만 이 시점부터는 최초이자율에 금리 2.5%를 더하고 조정금리를 추가로 가산하게 된다. 이에 대해 채권자들의 동의가 있으면 스텝업 조항이 발동되기전 조기 상환이 가능하다.  

      이자 부담이 불어나는 만큼 대한항공으로선 CB 조기상환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적어도 한 달 전엔 채권자인 국책은행들에 통보해야 하는데 5월 중순께가 대한항공의 결정 데드라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산은과 수은이 먼저 주식전환권 청구에 나설 가능성은 미지수다. 1년이 지나도록 보통주 전환을 추진하지 않은터라 명분이 딱히 없다. 그래도 수익으로만 따지면 산은ㆍ수은 모두 CB를 보통주로 전환이 필수다. 주식 전환가액은 1만9358원인데, 현재 대한항공 주가는 3만원 선이다. 전환 후 매각하면 투자금 대비 1.5배 이익을 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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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주식 전환시에 리스크는 있다.  보통주 전환시 국책은행은 대한항공 신주 총 2039만9837주(산은 1223만9902주·수은 815만9935주)를 확보하는데, 이는 대한항공 주식 5%에 해당하는 물량이다. 지분가치 희석과 오버행(잠재적 매도 물량)에 따른 주가 하락 이슈로 소액주주의 거센 반발에 부딪힐 수 있다. 

      대한항공 CB인수가 수익 목적 투자라기보다는 정책지원 차원에서 투입한 자금이라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 지난해 말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 당시, 더불어민주당 양경숙 의원이 "수은이 (대한항공 영구채) 전환권 행사를 하지 않으면 업무상 배임이 된다"며 지적했으나 방문규 수출입은행장은 "투자 목적이 아니었기에 코로나19 등으로 인한 어려움에서 대한항공 정상화 여부를 보고 판단할 예정"이라고 답하기도 했다. 

      국책은행 한 관계자는 "CB 전환행사를 하게 될 경우 엉겹결에 자회사처럼 수익률 관리를 하게 된다. 애초 경영참여 목적도 아니었고 자본금 요청으로 주식을 준 것인데 은행 손익에 영향을 주는 이슈가 생기는 것이 그리 달갑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대한항공이 원하는대로 보통주 전환없이 조기상환에 응할 경우 '배임' 논란은 불가피하다. 

      2배에 달하는 차익을 놔두고 연 2.28% 금리만 받겠다는 결정이어서 상장사에 대한 특혜시비도 불거질 수 있다. CB 인수 당시 정부에선 '경영정상화 후 이익 공유'란 구호를 내세웠는데 국책은행의 CB 인수를 통해 약정된 금리로 정책자금을 회수하는 것을 넘어 기업 정상화 정도에 비례해 이익을 공유하겠다는 취지였다. 이에 부합하려면 보통주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 

      결국 '명분'이 중요한 산은ㆍ수은으로서는 지난해 비슷한 이슈가 발생한 HMM (옛 현대상선)사례를 그대로 따라할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HMM은 지난 2017년부터 7차례에 걸쳐 해양진흥공사 등에 3조2000억원 규모의 스텝업 조항이 있는 영구전환사채를 발행했다. 이 가운데 일부인 6000억원 규모 CB에 조기상환을 요청하자, 그제서야 해양진흥공사는 '보통주 전환'을 결정했다. 발표 당시 주가가 급락, 소액주주들 사이에선 "공적 목적으로 자금을 지원해놓고 이익 실현을 우선시하는 건 적절치 않다"는 비판이 일긴 했지만 일단 배임 논란은 피해갔다. 

      먼저 보통주로 전환한 것이 아닌, 회사의 조기상환 결정에 대응해 결정했다는 명분도 획득했다. 

      대한항공 영구채도 비슷하게 처리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사임의사를 밝혔지만 이동걸 전 산업은행 회장도 HMM CB 이슈 당시 "이익 기회가 있는데 CB를 주식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배임"이라 밝힌 전례가 있다. 

      다만 보통주 전환을 하더라도 지분 매도 시점은 대한항공ㆍ아시아나항공 합병 이후가 될 가능성이 크다. 투자회수와 '항공산업 지원'이란 공적자금 투입 명분이 모두 성공하려면 두 항공사 합병 성사를 계기로 삼을 것으로 보인다. 합병절차를 모두 마치지 않은 상황에서 자금을 회수할 경우 대한항공 정상화에 대한 정부의 시선이 오해를 받을 수 있다. 합병 이후 증시 영향을 최소화하는 선에서 단계적 처분을 선택하는 등 다양한 회수 시나리오가 검토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