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만 하면 만사OK? 美선 주가 폭락하면 소송 잇따르는데...
입력 2022.05.11 07:00|수정 2022.05.11 07:57
    ‘장밋빛 가득한 증권신고서·공모가 부풀리기’ IPO 시장 고질적 논란
    상장 후 반토막난 페이스북…합의금만 376억 “실적 전망 수치 숨겨”
    “털어서 먼지 안 나는 곳 없다” 증권신고서 뜯어봐 소송 거는 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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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올해 들어 기업공개(IPO) 시장의 열기가 급격히 식었다.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의 빅스텝(기준금리 0.5%p 인상)에 추가적인 긴축정책이 점쳐지는 데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 대내외적인 불확실성으로 주가 하락세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IPO 대어급들의 흥행은 물론, 상장부터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공모가 고평가’ 논란도 불거지고 있다. 피어그룹 산정의 적절성, 매출 끌어올리기 등 ‘숫자 만들기’ 식의 밸류에이션으로 과도한 몸값을 정당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등 선진시장에서는 상장 이후 주가가 폭락하면 '기획 소송'이 제기되는 일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어, 밸류에이션 산정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6일 IPO를 추진하려던 SK쉴더스는 상장을 철회한다고 밝혔다. 수요예측에서 기업가치를 적절히 평가받기 어려운 환경이었다며 철회 사유를 밝혔다. 앞서 3~4일 기관투자자 대상으로 수요예측을 진행했으나 수요가 부진하자 기존 희망 범위(3만1000원~3만8800원)보다 20% 낮춘 2만5000원선까지 낮추기도 했다. 

      글로벌 긴축에 국내외 기관들의 투자수요가 부진했으나, SK쉴더스의 공모가가 다소 높게 책정됐다는 점도 흥행에 영향을 준 것으로 전해졌다. SK쉴더스는 물리·사이버융합 보안 등 종합보안서비스 업체인 점을 내세웠는데, 실적은 물리보안 비중이 59%로 절반이상을 차지한다. 그런데도 피어그룹에 물리보안업체 2곳, 사이버보안업체 3곳을 넣어 기업가치를 산정했다. 그 결과, SK쉴더스가 희망한 기업가치는 공모가 상단 기준 3조5052억원인데, 이는 업계 1위인 에스원보다 1조원 더 높은 가격이다. 투자업계에서는 공모가가 비싸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SK쉴더스의 사례처럼 상장을 준비하는 기업의 몸값 부풀리기는 IPO 시장의 ‘단골’ 논란거리다. 주로 비교군으로 삼기엔 무리가 있는 피어그룹을 산정하고 매출을 부풀리는 방식으로 밸류에이션 산정이 이뤄진다. 

      상장을 앞둔 원스토어는 기업가치를 판매촉진비를 크게 늘려 매출을 끌어올리는 데 성공했지만, 과도한 마케팅 비용으로 지난해 적자로 전환했다. 업계에서는 이익도 안 난 기업인데, 공모가가 다소 높다는 지적이 나왔다. 공모가 대비 반토막 난 크래프톤 역시, 2020년 전체 실적 및 2021년 1분기의 연 환산 실적을 기반으로 가치평가에 활용했다. 매출 산정 시점이 주가수익률(PER)이 높은 특정 시점(2021년 1분기)를 포함시켜 벨류에이션을 높게 책정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지난해 공모가 거품 논란이 있었던 대어급 종목들은 대부분 마이너스 수익률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8월과 11월 상장한 카카오페이(-60.7%)와 카카오뱅크(-57.5%)는 고점 대비 약 60% 빠졌다. SK아이이테크놀로지(-51.4%), SK바이오사이언스(-65.8%)와 최근 상장한 LG에너지솔루션(-30.8%)까지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미국에서는 상장 직후 ‘공모가 거품’ 논란과 함께 송사에 휘말리는 경우를 종종 볼수 있다. 

      페이스북이 대표적이다. 2012년 5월 페이스북은 공모가 38달러에 상장했으나 그해 9월 주가가 반토막(17.55달러)으로 폭락했다. 상장 전부터 페이스북의 공모가가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이 나오며 투자자들은 공모가 산정 자체에 문제를 제기했다. 공모가 기준 주가수익비율(PER)이 74배로, 구글(18.2배), 애플(13.6배)보다 높았기 때문이다. 

      당시 투자자들은 IPO 주관사인 모건스탠리, 골드만삭스, JP모건과 페이스북에 소송을 걸었다. 주관사들이 공모 전 페이스북의 이익 전망이 내려갈 것이라는 정보를 일부 기관투자자들에게만 공유됐다는 이유에서다. 페이스북은 2018년 2월 3500만 달러(당시 약 376억원)을 지불하고 합의하며 소송이 마무리되기도 했다. 

      미국 차량공유업체 리프트도 2019년 IPO 투자설명회에서 미국 시장 점유율 39%를 부풀렸고 상장 이후 주가가 17% 폭락하자 집단 소송이 제기됐다. 지난해 12월 미국 주식거래 플랫폼 로빈후드도 IPO 당시 암호화폐 수익 성장이 둔화되고 있는 점을 사전에 공지하지 않았고 이후 공모가에서 50% 이상 급락하자 소송이 제기됐다. 

      IPO 법률자문에 정통한 한 변호사는 “공모가가 부풀려져서 주가가 폭락했다는 이유로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하기는 어렵겠지만, 털어서 먼지 하나 안 나오는 곳이 없다는 말처럼 증권신고서를 하나하나 뜯어다보면 허위사실을 기재하거나 누락하는 건을 발견할 수 있다”며 “미국에서는 공모를 해서 주가가 빠지면 기획소송을 하는 로펌도 있는데 보통 투자설명서 내용을 빌미로 소송이 들어간다”고 말했다.

      IPO 해외 법률자문 전문의 변호사는 “미국에서는 상장 이후 주가가 많이 떨어진 경우 집단 소송이 자주 이어진다”며 “국내에서 상장하더라도 해외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자금을 유치하면 국내자금만 유치하는 경우보다 소송의 위험이 더 높기 때문에 영문 투자설명서에서 부실기재, 허위기재는 없는지 유심히 검토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집단 소송의 움직임이 남의 일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중국 섬유회사 고섬의 분식회계로 상장폐지된 사건에 대해 상장 주관사를 맡은 증권사들에게도 책임을 져야 한다는 최종 판결이 나오면서 주관사들의 법적 책임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2011년 상장한지 두 달 만에 고섬이 분식회계로 거래가 정지됐는데, 상장 당시 증권신고서에는 기초자산의 31.6%가 현금과 현금성 자산으로 적었지만 실제로는 극심한 현금 부족 상태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상장폐지 전 정리매매를 위해 거래가 재개됐던 2013년 9월 24일 하루에만 주가가 74.3% 폭락하면서 주식 투자자들은 대규모 손실을 봤다.

      당시 금융위원회는 재무 상태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상장을 했다며 미래에셋증권과 한화투자증권에 과징금 20억원을 부과했고, 이들 증권사는 과징금 부과 취소 소송을 제기했으나 지난 4월 원고(증권사)가 패소했다.

      또 다른 변호사는 “국내 투자설명서를 보면 ‘인수인의 의견’이라는 항목이 있는데, 미국이나 영국 등 선진화된 자본시장에는 없다”며 “공모가격이 어떻게 도출됐는지, 주관사의 책임이 더 부여된 부분이 있어 이 내용에 부실기재가 있다면 인수인이 일차적인 책임을 질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