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은 엑시트 힘들다 "… 바이오社 투자 중단하는 VC들
입력 2022.05.17 07:37
    거래소, 4분기 새로운 기술성 평가 모델 도입 예상
    "기술성 평가 바뀌면 3년은 증시 입성 어려울 듯"
    올 초 유망 바이오 벤처마저 고배 마셔 투심 꺾여
    바이오 벤처에 대한 신규 투자 중단 움직임 속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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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벤처캐피탈(VC) 업계에서 바이오 벤처에 대한 투자심리가 급속도로 냉각하고 있다. 신산업에 대한 거품이 걷어지며 원하는 몸값을 받기 어려워졌다. 설상가상 한국거래소가 오는 4분기부터 새로운 기술성 평가 모델을 도입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제도 도입 초기 깐깐한 잣대를 들이댈 가능성이 크다. 증시 문턱이 높아지면 투자금 회수(엑시트) 길이 좁아지기 때문에 VC들의 투자 행보도 위축되고 있다.

      최근 2~3년 사이 유동성에 힘입어 바이오 벤처 시장은 빠르게 성장했다. 작년 말부터 바이오 상장사들의 연이은 임상 실패 등 악재가 발생하며 상황이 반전됐다. IT·테크, 바이오 등 신성장 사업의 기업들의 실적과 평가가 하락했는데, 최근 경제 정세를 보면 이런 분위기가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

      증시 분위기가 예전만 못하니 바이오 벤처 기업의 상장도 애를 먹고 있다. 올해 초만 해도 무난히 증시에 입성할 것으로 기대됐던 에이프릴바이오는 5000억원 규모의 해외 기술 이전 계약을 체결했음에도 코스닥 상장위원회로부터 예비 심사 미승인(상장 불가)을 통보 받았다. 이후 이의를 제기해 시장위원회심의를 받았는데 위원회는 다시 결정을 보류했다.

      유니콘 특례 상장 1호로 주목받았던 보로노이는 저조한 수요예측 결과로 상장을 자진 철회했다. 이후 공모가를 30%가량 낮춰 코스닥 상장 재도전에 나선 상황이다. 디앤디파마텍은 임상 결과의 유효성을 증명하지 못하며 상장 예비 심사 미승인 통보를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외에도 퓨처메디신, 파인메딕스, 한국의약연구소 등 바이오 벤처들은 줄줄이 IPO 일정을 철회했다.

      VC들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성장 단계마다 다양한 투자자군이 있는 해외에선 세컨더리(투자자 간 거래) 가 빈번하게 이뤄지지만, 시장이 좁은 한국에선 회수 시 IPO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핵심 회수 창구가 좁아지다 보니, VC들은 투자에 들어가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신규 투자를 중단하거나 후속 투자 재검토에 들어간 경우가 속속 나타나고 있다. 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2022년 3월 기준 VC 업종별 신규 투자에서 바이오·의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19.5%로 지난해 같은 시기 28%에 비해 대폭 줄었다. 한 대형 VC는 최근 바이오벤처에 대한 신규 투자 규모를 줄인다는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한 VC 업계 관계자는 "작년 하반기부터 신라젠 상장폐지 위기 등으로 투심이 악화하다가 올 초 유망 바이오 벤처 IPO도 차질을 빚으며 침체된 분위기"라며 "바이오 벤처에 대한 추가 투자를 집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VC 관계자는 "지난 3~5년 바이오 벤처 몸값이 빠르게 오르며 성공적으로 엑시트한 사례가 많았지만, 작년 하반기부터 분위기가 변했다"며 "펀드 만기가 도래할 때까지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을까, 손실이 나면 어떻게 털어야 할까에 대한 고민이 많다"라고 말했다.

      바이오 벤처 기업들에 대한 심사는 더 깐깐해질 것으로 보인다. 거래소는 4분기 수정된 기술성 평가 모델을 도입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 경우 바이오 벤처들의 증시 입성이 향후 2~3년은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제도 개선 초기에는 신라젠 등의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엄격한 심사가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다.

      거래소는 과거엔 기술성 평가 심사를 획일적으로 진행했으나 업종별로 항목을 나눠 심사를 진행하는 등 심사를 강화할 것으로 전해진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기술특례 상장으로 올라간 바이오 벤처들이 약속한 임상에 실패하거나 지키지 않았다는 게 드러난 점이 문제였다"며 "앞으로 거래소는 기술 분석 역량을 보강해 현실성이 떨어지거나 실적을 올리기 어려운 기업들을 가려내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금융당국 입장에선 또다시 바이오 섹터 투심에 악영향을 끼칠 사건이 벌어지는 것이 부담스럽기 때문에 제도 안착 초기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댈 것"이라며 "제도가 안정화되고 그동안의 살아남아 실적을 내는 바이오 벤처가 증시에 입성하는 추세가 생기려면 빨라야 3년은 걸릴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