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환율에 실적 부담도 본격화…관망세 길어지는 M&A 시장
입력 2022.05.18 07:00
    환율 급등에 아웃바운드 거래 및 해외 자금 회수 어려움
    금리 상승으로 M&A 자금 빌리기 부담…PEF 행보 위축
    매각자·인수자 괴리 커…기업 실적 부진 장기화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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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M&A 시장의 소강상태가 장기화할 것으로 보인다. 환율이 급격히 오르면서 우리 기업들은 크로스보더 거래를 하기가, 국내에 투자한 외국 자금은 회수 시점을 잡기가 어려워졌다. 금리가 오르며 시장의 유동성은 줄고 M&A 자금을 빌리기는 부담스러워졌는데 앞으로도 금리 상승 가능성이 크다. 국제 정세 변화에 따라 기업들의 생산원가는 오르고 실적 악화가 예상되지만 당분간 매각자와 인수자의 시각차를 좁히긴 어려울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최근 원달러 환율 상승세가 가파르다. 전세계 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달러화 선호 경향이 강해져서다. 달러 대비 원화 가치가 십수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고 1300원을 돌파할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새 정부도 거시 금융 상황을 점검하며 대응책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달러 강세는 우리 기업의 해외 진출에 긍정적이지 않다. 대기업들은 M&A나 조인트벤처(JV) 설립 등 방식으로 해외 사업을 확장해왔는데, 지금처럼 달러가 비쌀 때는 조달 비용이 더 든다. 1년 전과 비교하면 환율 상승만으로 10% 이상의 추가 부담이 생긴 셈이다. 2분기부터는 대기업들이 본격적으로 해외 M&A를 추진할 것이란 기대가 있었지만, 당분간 관망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한국에 투자한 해외 자금 입장에선 회수에 나서기 쉽지 않다. 한국에서 원화 매각 거래를 한 후 달러로 바꾸면 금액이 쪼그라들어서다. 원달러 환율이 1000원대일때 투자한 한 해외 사모펀드(PEF)는 최근 회수 작업을 진행 중인데, 급등한 환율 때문에 괄목할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한 M&A 자문사 관계자는 “해외 PE의 회수 거래를 몇 건 진행 중인데 환율이 급등한 탓에 고객들이 울상을 짓고 있다”고 말했다.

      물론 환율 변동의 효과는 양면적이다. 달러 자금을 회수하기 어렵지만, 반대로 한국에 투자하기엔 유리한 상황이다. 최근 글로벌 PEF와 자산운용사들은 한국 투자를 늘리거나 거점을 강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보다 적은 달러로 한국 내 유망 자산을 인수할 기회가 될 수 있다는 평가다. 다만 강달러만 믿기엔 불안한 요소가 많다.

    •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 부담이 커지며 각국이 금리 상승 카드를 꺼냈다. 미국은 이달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이상 인상)을 밟았다. 추가 빅스텝이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국내 시장 금리도 가파르게 상승 중인데, 한국은행은 추가적인 금리 인상을 시사하고 있다.

      이전까진 저금리와 풍부한 유동성에 기댄 거래가 많았지만 금리 상승기엔 유동성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드라이파우더(미소진 자금)를 잔뜩 쌓아둔 대형 PEF는 신규 거래를 할 여력이 있지만 프로젝트펀드 위주의 거래를 하는 PEF들은 핵심출자자(앵커 LP)를 구하는 데 애를 먹고 있다. 자문이나 컨설팅 업계에선 돈잔치가 끝나가면서 인력 유출 고민을 덜었다고 할 정도다.

      한 PEF 업계 관계자는 "금리가 오르고 유동성이 마르기 시작하면서 프로젝트펀드를 결성하기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며 "새로운 M&A는 줄고 기존에 진행하다 무산되는 거래는 느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대형 M&A를 위해선 금융사 도움이 필요한데, 돈을 빌리기도 부담스럽다. 금리 부담에 만기 도래 채권을 차환하지 않고 상환하는 기업들도 늘고 있다. 웬만큼 실적에 목마른 곳이 아니고서야 많은 이자를 감수하고 M&A 자금을 구하기 쉽지 않다.

      PEF의 행보도 조심스럽다. 불과 1년 전 PEF의 티몬 교환사채(EB) 투자 때 인수금융 금리가 3% 초반이었는데, 최근 IMM크레딧솔루션이 더블유컨셉 투자를 위해 빌린 자금의 금리는 5% 중반이다. 최근에도 금리는 계속 올라 낮으면 5% 중후반이고, 6%를 넘어선 거래도 종종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분(Equity) 출자자들은 자연히 선순위 대출 금리를 훌쩍 넘는 이익률을 기대하고 있어 PEF의 부담은 더 커졌다.

      PEF 업계에선 이럴 바에야 인수금융을 활용하지 않는다거나, 무리해서 M&A를 추진하지 않겠다는 분위기도 나타나고 있다. 최근 인프라나 크레딧 성격 거래가 늘어나는 것도 기대 수익률이 낮고 저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투자은행(IB) 업계 관계자는 “최근 선순위 대출 금리는 6%, 중순위는 두자릿수에 육박하는 등 조달 비용이 늘어났기 때문에 PEF가 M&A를 추진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PEF들이 위축되니 매각 자문사 입장에선 거래 흥행 분위기를 만들기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M&A 열기가 잦아든 데는 전체적으로 기업들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진 영향도 있다. IT·테크, 바이오 등 신성장 기업들에 끼었던 거품이 가라앉고 있다. 돈 못버는 플랫폼 기업에 대한 의구심은 커지는 상황이다. 친환경 기업들은 1년여 전만 해도 상각전영업이익(EBITDA) 대비 15배 안팎의 기업가치(EV)를 인정받았지만, 최근엔 10배 수준으로 내려가는 분위기다.

      후한 가치평가에 익숙했던 매각자와 불확실성을 걱정하는 인수자 사이의 괴리가 커질 수밖에 없다. 수의 계약 방식으로 진행되는 M&A도 최종 실사까지 마친 후 백지화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경기 하강기, 매각자의 눈높이는 후행적으로 낮아지기 때문에 거래로 이어지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PEF의 경우 당장 좋은 성과를 내기 어렵다면 경기 회복기까지 버티려 할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의 실적은 악화하고 있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각종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고 인건비 등 제반 비용도 늘었다. 소비자들의 구매력이 줄면 기업들의 매출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작년 최고 실적을 썼던 기업들은 벌써 올해 1분기부터 실적이 꺾이고 있다. 이제 막 장기 부진의 초입에 접어들었다는 우려도 나온다.

      다른 M&A 자문사 관계자는 “최근 시장 상황을 감안하면 기업의 실적 부진은 막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며 “올해 하반기 이후에도 M&A 침체 분위기가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