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C현산, 재무건전성·재시공 어필해도…"건설사로서 경쟁력 끝났다" 평가
입력 2022.05.18 07:00
    잇따른 계약해지 수주잔고 축소로 연결
    공급 분양계획 적신호 켜지며 사업전망 먹구름
    PF대출 기피 분위기 확산…시공사 메리트 하락
    영업정지 발생 시 수주영업 인력 대거 유출 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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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DC현대산업개발(HDC현산)이 3700억원을 들여 70개월 동안 광주 서구 화정 아이파크를 재시공하기로 했다. 전례가 없는 일이다. 서울시의 등록 말소 결정을 앞두고 승부수를 던진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기존에 둔 악수들로 기운 사세를 뒤집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HDC현산은 재시공 과정에서 추가로 발생한 비용을 2000억원 수준으로 추산했다. 지난해 4분기 실적에서 선반영한 1700억원 규모 충당금까지 합치면, 전체 수습 비용은 3700억원 안팎이다. 지난해 영업이익(2734억원)을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다. 마주한 상황은 녹록지 않지만, HDC현산이 쌓아둔 1조9000억원 규모의 현금성 자산으로 버틸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한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HDC현산도 재무상황을 고려해 3700억원 규모로 충당금을 설정한 것으로 보인다. 비용이 들어도 회사 평판을 제일 중요한 가치로 보고 승부수를 던졌다고 봐야 한다”라며 “3700억원 충당금 설정을 통해 국면 전환하려는 시도다”라고 말했다. 

      일부 정비 사업장에서는 HDC현산에 대한 신뢰를 보내고 있다. HDC현산은 광주 화정아이파크 붕괴사고 이후 ▲경기 안양 관양현대 재건축(4174억원) ▲서울 노원구 월계동신 재건축(2828억원) ▲서울 미아4구역 재건축(1341억원) ▲상계1구역 재개발(2930억원) 시공권을 따냈다. 이달에도 HDC현산은 경남 창원 신월2구역 재건축 정비사업(3857억원)에 대한 공급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했다.

      다만 업계에서는 HDC현산이 일감 확보를 위해 업계 평균 대비 수주 조건을 지나친 수준으로 제시했다고 보고 있다. 일례로 경기 안양 관양현대 재건축 사업에선 특수목적법인(SPC) 설립, 사업비 2조원을 조달해 이주비 등을 지급하겠다고 제안했다. 후분양으로는 3.3㎡당(1평) 4800만원의 분양가를 보장하고 미분양에 대해서는 대물변제를 약속해 파격 조건을 제시한 바 있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아이파크라는 브랜드 가치로는 수주를 못 해서 조합원들한테 다른 건설사보다 훨씬 더 많은 프리미엄을 제공하고 있다. '아직 죽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사업이라 알맹이가 없다”라고 평가했다. 

      시장에서는 HDC현산이 수주잔고는 뺏기고 인력유출이 우려되는데 PF대출 조건까지 박해진다는 점 등을 들어 내리막길이 진행될 것으로 내다봤다.

      HDC현산의 수주잔고는 줄어들고 있다. 회사의 시공계약 해지 사례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HDC현산은 올해 2월 광주 운암3단지 재건축 시공에서 배제됐다. 지난달에도 광주 곤지암역세권 아파트(1830억원)와 대전 도안 아이파크시티 2차(1조972억원) 신축공사에 대한 계약 해지 통보를 받았다. 지금도 시공을 맡은 전국 재개발 현장 곳곳에서 조합원들의 시공사 선정 관련 찬반 투표가 이어지고 있어 추가 계약 해지에 대한 우려는 여전하다.

      아파트 공급 분양 계획에도 적신호가 켜졌다. HDC현산은 광주 화정 아이파크 사고 이후 주택공급 계획을 2만세대 이상에서 1만세대 수준으로 조정했다. 목표치를 대폭 낮췄지만, 예정대로 아파트 공급 진행은 못 하고 있다. 일반 분양자들의 아이파크 기피 현상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미분양은 곧 조합원들의 추가 부담금으로 직결된다는 점에서 HDC현산의 여론은 더욱 악화될 수 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올해 분양을 안 한다는 얘기는 신규착공으로 들어갈 게 없다는 것이다”라며 “결국, 내년에 공사를 진행할 현장들이 줄어들고 이는 실적 감소로 연결되기 때문에 사업 규모가 작아질 수밖에 없다”라고 부연했다.

      악재가 겹치다 보니 HDC현산의 자금조달 능력에도 문제가 생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지난 4월, 한국신용평가와 한국기업평가는 HDC현산의 신용등급을 신용등급을 ‘A+(하향 검토)’에서 ‘A(부정적)’로 하향 조정했다. NICE신용평가도 신용등급 조정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공자의 주요 역할 중 하나가 신용도를 바탕으로 한 자체 자금조달이다. HDC현산의 신용도 내리막길은 멈추지 않을 수 있다. 9월경 서울시에서 화정 아이파크 붕괴사고에 대한 처분으로 HDC현산의 신용등급이 추가로 하락하면 자금조달 여건이 악화할 수 있다. 1금융권에서 HDC현산 대출 배제 움직임에 더해 최근 증권사 등 2금융권에서도 HDC현산에 PF대출을 기피하려는 분위기가 나타나고 있다. 

      한 증권사 PF사업 관계자는 “HDC현산의 재무건전성은 우수한 편이지만, 다른 건설사들이 많은데 왜 리스크를 지면서 PF대출을 해줘야 하나 생각이 든다”라며 “당연히 PF대출이 비싸질 수밖에 없고 시행사 입장에서는 금리가 비싼 시공사를 굳이 쓸 이유가 없다”라고 말했다.  

      HDC현산에 대한 서울시의 행정처분 수위에도 이목이 쏠리고 있다. 현재 국토교통부는 건설산업기본법에 따라 서울시에 1년 영업정지 또는 최고 등록말소 처분을 내릴 것을 권고했다. 반면 서울시는 건산법과 시행령의 법령상 한계를 이유로 신중한 입장이다. 영업정지 기간에는 입찰참가 등 건설사업자로서 행하는 영업활동이 금지된다. 영업정지가 현실화하면 수주 영업 인력도 대거 유출될 것이란 이야기도 나온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해당 인력은 영업활동에 따른 성과보수가 중요하다. 다른 건설사들이 수주 영업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는 마당에 영업마저도 끊기면 HDC현산에서 일 할 이유가 사라진다. 일을 진행하지 못해 핵심 인력들도 빠져나가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결국, HDC현산이 반전을 보여주기가 어려울 것이란 얘기다. 일각에서는 HDC현산이 동부건설처럼 과거 영광만 남은 건설사 될 수 있다고 본다. 아이파크가 어느 정도 도급과 수주는 하겠지만 10대 시공사 반열에 다시 오를 수 있을지는 쉽지 않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