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건전성에 비상걸린 보험업계...하반기가 고비
입력 2022.05.20 07:00
    급격한 금리 인상에 RBC 비율 급락
    올 들어 자본성증권 발행만 2.3조
    발행금리 높아 금리상승기 부담 우려
    내년 K-ICS 도입까지 RBC비율 충족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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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지난 1분기 주요 보험사들의 지급여력(RBC) 비율이 크게 줄었다. 시장 금리가 상승하면서 보험사가 보유한 채권 평가액이 줄었기 때문이다. 내년 IFRS17(새 국제회계기준)과 K-ICS(신지급여력제도)의 도입 이후에는 RBC비율의 급락이 어느 정도 진정이 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올 하반기가 자본 확보에 나서는 보험사들의 고비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18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올 1분기 주요 보험사들의 RBC 비율이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RBC는 모든 가입자가 보험금 지급을 요청했을 때 줄 수 있는 능력으로, 보험사의 재무건전성을 가늠할 수 있는 지표다. 보험업법에서는 100% 이상을 유지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금융당국은 선제적인 관리 차원에서 150% 이상을 권고하고 있다. 

      NH농협생명의 1분기 RBC 비율은 131.5%로 지난해 말보다 79%p 하락했다. 한화손해보험의 1분기 RBC 비율도 122.8%로 이전 분기보다 54.1%p 떨어졌다. 이외에도 흥국화재, 흥국생명, DGB생명, DB생명 등의 RBC 비율이 금융당국의 권고 기준인 150%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MG손해보험은 이미 지난해 말 기준 88.3%로 법적 기준인 100%를 크게 밑돌았다. 

      보험사의 RBC비율 급락은 금리 상승의 영향이 컸다. 기준금리가 상승하면 채권금리가 상승하면서 채권가격이 낮아지는데, 보험사가 보유한 채권 가격이 하락하면서 자산 규모가 축소됐기 때문이다. 국내 보험사들이 갖고 있는 채권은 470조원으로, 국내 전체 상장채권시장(2600조원)의 20%에 달한다. 

      문제는 연달아 금리인상이 예고되며 연말까지 보험사의 건전성이 악화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는 이번 달에 빅스텝(기준금리 0.5%P 인상)을 단행했는데 6월과 7월에도 빅스텝을 밟을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향후 빅스텝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발언하자 국고채 3년물 금리가 17bp(1bp=0.01%p)나 뛰며 연 3.08%까지 오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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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리 인상 기조가 심상치 않자 보험사들은 자본 확충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이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올해 들어 보험사들의 자본성증권 발행 규모는 2조원을 넘어섰다. 13일 메리츠화재가 2960억원의 후순위채를 발행했다. 보험사 중에서는 NH농협생명의 자본확충 규모가 가장 컸다. 올해 6000억원의 유상증자를 한데 이어 8300억원 가량의 자본성 증권(후순위채)를 발행했다.

      코리안리재보험(2~3000억 규모 신종자본증권), 한화생명(3~5000억 규모 후순위채), KB손해보험(3000억 규모 후순위채) 등의 보험사들의 발행이 연이은 점을 감안하면 2017년 상반기(2조1990억원)을 넘어 사상 최대규모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상반기에 발행하는 규모만 4조원을 넘어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역대 최대 규모의 자본성 증권 발행은 보험사의 이자 부담으로 돌아온다는 지적도 나온다. 자본성 증권은 회계 처리 상 자본으로 인정받아 RBC 비율을 방어할 수 있지만 발행금리가 높아 이자 부담이 커져서다. 금리인상 기조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보험사들의 이자 비용 부담도 더욱 가중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크레딧 담당의 한 증권사 연구원은 “보험사의 자본성 증권은 고금리에 당연히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며 “자본확충의 노력을 해야 하는 것도 맞지만 금리 상승 영향분을 감안해서 현실적으로 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보험사 55곳의 지난해 채권이자 비용은 2894억원으로 전년보다 13.8%(352억원) 증가했다. 

      보험사의 RBC비율 급락은 내년 IFRS17과 K-ICS 도입을 앞두고 금리 상승기가 맞물린 과도기적인 현상이라는 분석이다. 

      유안타증권의 정태준 연구원은 “현재 회계제도에서는 자산을 공정가치로 평가하지만 보험부채는 원가로 평가하기 때문에 금리인상에 따른 RBC 비율 하락이 발생했다”며 “IFRS17에서는 보험부채도 시가평가되고 부채 듀레이션(만기)이 일반적으로 자산 듀레이션보다 길기 때문에 자본과 금리의 역행이 해소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도입 이전인 하반기에 현행 체제에서 RBC 비율을 맞추려는 보험사들에게는 큰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까지는 RBC 비율로 재무건전성을 평가하기 때문에 어떻게든 금융당국의 권고치를 충족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K-ICS가 도입돼 RBC비율을 대체하게 되면, 자본의 금리 민감도가 낮아지기 때문에 보험사 대다수의 RBC 비율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RBC 비율이 200% 아래 있다고 해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며 “하반기에 RBC 비율이 낮아진 회사들이 자본여력을 끌어올리는 부담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