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IㆍELS 늘리고 부동산PF 줄이고...연말에 판도 달라질 증권업계
입력 2022.05.25 07:00
    증시 변동성에 '증권사 실적 가늠자'된 PI투자·부동산PF
    대외 변수에 강한 부문 비중 늘리는 證…PF는 '개점휴업'
    위기를 기회로 삼는 중소형證, '박스피' 틈타 ELS 발행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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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올해 1분기 국내 증권사 실적은 '대외 변수에 강한' 부문에서 판가름 났다. 그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기자본(PI) 투자 등에 공을 들인 중소형 증권사들이 대형 증권사에 비해 실적 개선 소식을 알릴 수 있던 배경이다. 불확실성이 큰 증시 탓에 먹거리 찾기에 어려움을 겪는 타 증권사들도 비슷한 전략을 세울 전망이다. 원자재값 상승 등으로 부동산PF 업황은 녹록지 않아진 상황이다.

      중소형 증권사들엔 위기가 기회다. 하락장을 '순위 상승'의 기회로 삼고자 하는 곳들은, 하락장에서 주목받는 파생결합증권(ELS·ELB)의 발행을 늘리거나 부진한 수수료 수익 돌파구로 PI 투자를 확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연말 순위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지속적인 금리 인상으로 국내외 증시 변동성이 장기화하고 있다. 타격은 고스란히 국내 주요 증권사들이 안았다. 코로나 확산 이후 이어진 증시 호황에 공격적으로 늘려온 브로커리지(위탁매매)는 되레 수익성을 둔화시켰다. 채권운용 관련 손실도 상당한 상태다.

      실제로 대형 증권사들의 올해 1분기 실적은 눈에 띄게 줄었다. 미래에셋증권과 NH투자증권은 각각 전년 동기 대비 33.6%, 60.3% 감소한 1971억원, 1023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KB증권(-48.3%), 삼성증권(-47.5%), 한국투자증권(-27.1%)의 순이익도 감소세를 보였다.

      같은 기간 메리츠증권, 다올투자증권, BNK투자증권 등 중소형 증권사들의 순이익은 늘었다. 주로 'PI 투자', '부동산 PF'이 이를 가능케 했다는 분석이다.

      확대된 불확실성 속에서 먹거리 찾는 증권사들

      2년간 이어지던 주식자본시장(ECM)의 호황이 막을 내리자 주력하던 기업공개(IPO)도 힘이 한 풀 꺾였다. 높아진 금리에 채권 시장도 얼어붙었다. '먹거리 찾기'에 분주해진 이들은 중소형 증권사의 실적 비결에 주목한다. 바로 '대외 변수에 영향을 상대적으로 적게 받는' 부문들이다. 

      특히 PI투자가 거론된다. PI투자는 증권사가 자기자본을 토대로 주식, 파생상품, 부동산 등 자산에 투자하는 것을 말한다. 통상 정체된 수수료 수익을 극복하기 위해 택하는데, 지난해부터 공격적으로 늘린 중소형 증권사들을 비롯해, 대형 증권사들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말 미래에셋증권은 IPO솔루션팀을 별도 설립해 PI 투자처를 찾고 있다. 최근엔 한국투자증권이 IB부문 아래 '사모펀드(PEF)를 통해' PI투자를 하는 부서를 별도로 설립하는 안을 추진 중이다. 두 증권사는 주로 대기업의 비상장 자회사 주식 투자에 집중하려 한다.

      그간 키움증권, 하이투자증권 등 중소형 증권사들이 PI투자에 주력해왔다. IPO 주관 수수료 수익으로도 이어지는 까닭에 역량있는 비상장 기업들을 대상으로 투자를 집행했다. 유진투자증권이나 한화투자증권도 최근 20억~30억원대의 PI투자 집행 계획을 갖고 있다.

      인수금융 딜(Deal) 물색에도 분주하다. 금리 상승에 대출이자를 챙길 수 있어서다. 최근엔 글로벌 기업 인수합병(M&A)에 인수금융을 제공하는 것에도 역량을 쏟는 분위기다. 국내 M&A 시장에 비해 해외 시장이 규모가 클 뿐만 아니라 대상 기업들의 상각전영업이익(EBITDA) 또한 상당히 높다는 이유에서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금리가 오른 탓에 투자자들의 움직임이 둔해지고 부동산 투자가 어려워지다 보니 인수금융이나 크로스보더 딜로 관심을 옮기는 증권사가 늘고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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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황은 옛말…대외 변수에 기로 선 부동산PF

      그간 증권사에서 '알짜 수익' 부서로 여겨졌던 부동산 PF는 상황이 달라졌다. 공사비와 금리 인상 및 인플레이션 등 외부 변수에 분양가 상한제나 중대재해법과 같은 법 제도 변화가 겹치며 개발 수요 자체가 줄어들고 있다.

      특히 둔촌 주공 사태처럼 공사비 인상으로 인한 비용 상승 문제로 시행사와 건설사, 증권사PF를 비롯한 투자자들 간 알력 다툼이 예고되고 있다. 공사비 부담이 커지며 일부 시공사들은 증권사 PF 사업부문에 공사비 확보율을 높여달라고 주문하는 사례도 생기고 있다. 

      한 재건축 현장에서는 공사비 증액을 두고 조합과 시공사의 입장이 갈리며 공사가 중단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이지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증권사 PF 부서에서는 ‘지금처럼 리스크가 높은 경우에 딜 소싱을 안하는 것이 돈 버는 방법’이라는 자조 섞인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한 증권사 부동산PF 담당 임원은 “현재 부동산PF 시장은 새로운 변화를 맞아야 하는 시기에 놓여있다”라며 “전체 사업의 이익률이 잘 나와야 시행사의 토지 개발 수요가 늘어나는데 공사비가 인상되니 개발사업을 하려는 수요가 없다. 자연스레 증권사에서도 예전과는 달리 좋은 개발사업에 참여할 기회가 적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오피스나 국내외 물류창고시장 딜(Deal)에 대한 수요가 조금 남아있다. 일부 증권사들은 건설이 마무리된 물류센터를 리츠나 부동산펀드를 통해 투자하는 안을 고민하기도 한다.

      위기를 기회로? ELS 발행도 늘리는 중소형證

      중소형 증권사들은 이어지는 하락장을 기회로 삼으려 한다. 이를 두고 업계에선 '올해 연말 증권사 순위를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평가한다. 

      이같은 분위기는 ELS 발행 시장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통상 2~3개의 지수를 기초자산으로 삼는 ELS는 해당 자산의 가격이 계약 시점부터 만기 때까지 40~50%가량 떨어지지 않으면 약속된 수익을 지급한다. 이에 유동성이 사라진 '박스피' 상황에선 ELS 수요가 증가하곤 한다.

      다만 증시 부진에 상환이 어려워진 대형 증권사들은 ELS 신규 발행에 애를 먹는 분위기다. 삼성증권, 한국투자증권, 미래에셋증권 등 증권사 3사가 ELS 시장에서 두각을 드러내왔지만, 증시 부진에 상환이 여의치 않아지고 있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요즘같은 장엔, 투자자들이 원하는 ELS 상품을 지속 발행해야 하지만, 기존의 ELS 상품 상환이 어려운 지금같은 상황에선 신규 발행해 잔고를 늘리는 것은 잔고가 이미 큰 대형 증권사엔 부담이 될 수 있다"라며 "예전처럼 ELS 시장이 활황일 땐 한달에 7조~8조원씩 발행되기도 했지만 요즘은 그런 분위기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ELS 시장에서도 메리츠증권의 존재감이 커지고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메리츠증권은 지난 6개월간 4조4500억원(공·사모 포함) 규모의 파생결합증권(ELB 포함)을 발행하며 발행액 기준 2위에 올랐다. 기존에 ELS 잔고가 크지 않던 증권사들이 하락장 기회를 틈타 발행을 본격 늘리는 모양새라는 평가다. 발행액 규모가 크지 않았던 신한금융투자도 2020년을 기점으로 ELS 잔고를 늘리고 있다. 이에 올해 연말, 증권업계 순위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