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공은 방산펀드, 그럼 경공은 경찰펀드?...새정부·수장 교체기 고민 많은 기관들
입력 2022.05.25 07:00
    Investor
    기관들, 새정부 정책 기조 변화에 촉각
    눈치 살피며 존재감 부각 기회 찾을 듯
    불확실성 속 안정적·보수적 투자에 무게
    CIO 교체 맞물리며 어수선한 분위기도
    투자·관리 급한데…인력 채용 고민 지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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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국내 기관출자자(LP)들이 새정부 출범과 투자책임자 교체, 각종 불확실성 확대로 고심하고 있다. 유동성 부족에 애를 먹는 상황에서 어떻게 존재감을 드러내야 할지 고민하는 분위기다. 연기금·공제회들은 정책 방향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데 등 떠밀려 목적이 모호한 펀드를 결성하게 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최고투자책임자(CIO)가 바뀐 일부 기관에선 기존 투자 심의 건을 원점으로 돌리며 어수선한 모습이다. 인력 채용 고민은 계속되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이달 한화시스템과 손잡고 방산 벤처투자펀드를 결성했다. 두 회사가 각각 400억원을 출자하고 한화자산운용이 펀드를 운용한다. 국내외 첨단 국방사업 및 4차산업 관련 혁신 기술 사업에 투자하기로 했다. 최근 정부 주도로 방산관련 투자가 늘고 있다지만, 외부 시선을 의식한 것이란 평가도 있다. 작년 국정감사에선 방산펀드를 조성해 민간자금을 방산 분야로 유도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는 모빌리티 펀드 결성을 추진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주로 부실채권 펀드나 대출형 기업지원펀드(PDF)를 활용해왔는데, 올해는 자본확충형 기업지원펀드(PEF)도 결성해 친환경차 관련 기업에 투자하기로 했다. 캠코는 준정부기관으로 상시 구조조정 역할을 하는데 최근 수년간은 구조조정이 부각되지 않아 입지가 모호했다. 모빌리티 펀드는 새로운 역할을 정립하기 위한 시도라는 시선도 있다.

      기관들은 정부의 움직임에 예의주시하고 있다. 정권이 바뀌면 연기금·공제회 자금을 활용하려는 시도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외부 입김이 작용하기 어려운 투자심의 시스템을 갖춘 곳도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전 정부에선 ESG가 핵심 시책이었다. 이번 정부에선 벤처투자를 강조하는데 아직 구체적인 정책 기조가 정해지지 않은 분위기다.

      한 기관투자가 관계자는 “방산 펀드는 국회에서 군인 자금으로 국민경제에 기여하라는 지적이 있어서 만들어졌는데 이런 식이면 경찰공제회는 경찰펀드를 만들어야 하느냐”며 “캠코도 나름대로 모빌리티 사업에 공을 들이는 것 같은데 구조조정 시각보다 산업 방향을 잘 살펴서 투자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기관들의 투자 고민은 계속되고 있다. 유동성의 힘은 줄고 투자 환경의 불확실성은 날로 확대되면서 보다 믿을만한 운용사(GP)와 투자처를 찾아야 한다는 부담이 커졌다. CIO가 바뀌면서 투자 전략을 다시 정립하는 곳들도 있다. 투자 전문가를 구하는 것은 쉽지 않다.

      국민연금은 올해 PEF 정시 출자 규모를 작년보다 1000억원 줄였다. 정기 출자보다 일정 수준에 오른 운용사를 대상으로 한 수시출자를 늘려가는 분위기다. 경험이 많고 실적이 쌓인 대형사가 아니면 점차 국민연금 자금을 받는 길이 좁아질 것으로 보인다.

      교직원공제회는 지난달로 예정했던 벤처캐피탈(VC) 출자 공고 시점을 한 달 늦췄다. 정권 교체기에 속도 조절을 했다기 보다는 작년 연말 이후 지속되고 있는 유동성 부족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올해 PEF 정기 출자는 거르지만 대형사 대상 수시 출자는 진행할 계획이다.

      경찰공제회는 투자 조직을 개편했다. 금융이사(CIO) 아래 금융투자본부의 투자팀을 세분화하고 인력도 추가로 뽑고 있다. 투자전략팀은 투자전략실로 격상했고, 대체투자 2팀을 신설했다. 올해 퇴직급여율을 3년 만에 3.75%로 인상하면서 고수익을 추구할 필요성이 커졌다. 다만 손실 위험도 늘었기 때문에 관리 차원에서 조직 개편에 나섰다.

      건설근로자공제회나 대한소방공제회, 노란우산공제 등 한창 자산 확장에 분주한 기관들도 아직까지 조심스러운 행보다. 당분간 관망세를 유지하려는 분위기다. 정기 출자를 이어갈 것인지 고민이 많다. 투자 시기를 미루거나 선순위 대출 등 안전 자산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꾸리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한 공제회 CIO는 “경기 침체 국면에 접어들고 있어 상반기까지는 투자할 지 눈치를 봐야할 것”이라며 “하반기 포트폴리오는 대체투자에서도 선순위 위주로 늘려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올해는 여러 공제회와 중앙회 등의 CIO가 교체됐다. 신임 CIO를 맞은 일부 기관은 전임 CIO 시기에 검토했던 투자 건들을 백지화했고, 담당 부서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정권 교체기와 불황기가 맞물린 터라 기존 전략을 고수하기 어려웠을 것이란 시선도 있다.

      국민연금은 올해 초 자산운용 전문가 모집에 나섰지만 목표 인원을 다 채우지 못했고, 추가 채용에 나설 계획이다. 작년 두 차례 경력직 채용에 나섰던 한국투자공사는 올해만 세차례 채용 공고를 냈다. 사학연금은 본사가 전남 나주에 있는데 서울에서 있는 자금운용관리단이 선망 부서다. 내부에선 내년 사학연금 서울회관 재건축이 완료된 후 어떤 부서와 인력을 서울로 배치할 것인지가 관심사다.

      국민연금

      ▲올해 PEF 정기 출자금은 5000억원으로 작년보다 1000억원 줄었다. 올해 초 실시한 기금운용본부 자산운용 전문가 채용에선 목표 인원을 채우지 못했다.

      한국투자공사

      ▲올해 2월, 3월에 이어 이달 세 번째 경력직 전문가 채용에 나섰다. 작년엔 상반기와 하반기 두 차례 채용을 진행했다.

      한국자산관리공사

      ▲올해 3000억원 규모 자본확충형 기업지원펀드(PEF) 결성에 나섰다. 친환경차 밸류체인 등으로 진출했거나 진출하려는 자동차 부품 제조 기업 등에 투자한다.

      교직원공제회

      ▲내부 유동성 부족이 지속되며 4월 예정했던 VC 출자 공고 시기가 늦어졌다. 올해 PEF 정시 출자는 하지 않고, 수시 출자를 진행할 계획이다.

      행정공제회

      ▲허장 CIO 취임 후 세부적으로 투자 및 리스크 관리 계획을 세우고 있다. 고정수익률 위주로 보고, 스페셜시츄에이션 등도 투자하면 좋을 것으로 본다.

      군인공제회

      ▲이달 국내 최초로 800억원 규모 방산 벤처투자펀드를 결성했다. 작년 국정감사에서 방산분야 중소벤처기업 지원을 위한 방산펀드를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노란우산공제

      ▲대체투자 자산 가치에 버블이 끼어 있고, 작년과 같은 성공 사례들이 다시 나올지 의문이다. 벤처 출자를 계속 늘려야 할지 고민이 된다.

      경찰공제회

      ▲퇴직급여율을 이달부터 4년 만에 3.75%로 인상했다. 대체투자를 확대해 수익률을 관리해왔는데, 위험 관리 차원에서 조직을 개편했다는 평가다.

      사학연금

      ▲대체투자 비중을 작년 21.3%에서 2026년 26.2%까지 높일 계획이다. 내부에선 전경련회관에 임시로 있는 자금운용관리단을 비롯해 어떤 인력들이 내년 준공될 서울회관으로 배치될 것인지가 관심사다.

      건설근로자공제회

      ▲이성영 CIO 취임 후 내부 포트폴리오 개선 작업에 분주하다. 최근 선순위 금리도 7%는 맞춰줘야 하기 때문에 PE나 VC가 투자하기 힘들어질 것으로 본다.

      대한소방공제회

      ▲미국이나 글로벌 금융시장이 불확실한 상황이라 투자 건을 조심스럽게 보고 있다. 시장 추이를 조금 더 살핀 후에 투자해도 늦지 않을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