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 경쟁? 체면 치레?...개발자·전문가 연봉 인플레에 발목잡힌 기업들
입력 2022.05.2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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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지난해 다수 테크 기업들은 너도나도 '업계 최고 대우'를 외치며 개발자 처우 개선에 뛰어들었다. 투자 유치를 위한 마케팅 전략이자 기업의 자존심 세우기였다. 이제 그 후폭풍이 불고 있다. 늘어난 인건비는 눈덩이처럼 불어난 적자의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금융·컨설팅·제조업계에서도 인재를 확보하기 위한 비용 경쟁이 치열하다. 생존 경쟁의 일환이자 체면치레를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는 평가다. 인플레이션과 맞물려 연봉 인상 요구가 거센 가운데 시장관계자들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기업 자존심 된 개발자 연봉 경쟁… 테크·이커머스社 잇따라 눈덩이 적자

      "국내선 개발자가 부족하다 보니 해외 쪽으로도 전용 리크루터를 뽑았다. 인건비가 많이 늘어나면서 작년 적자 폭도 커졌다. 그래도 내부에선 공격적 투자라고 생각한다" (비상장 테크기업 관계자)

      "비상장 벤처기업들 사이에서도 경쟁적으로 연봉을 인상하는 움직임이 분명히 있다. 우리 회사의 경우에도 연봉을 업계 최고 수준으로 올렸는데 투자 유치 시 마케팅 포인트가 되기도 한다. 작년 투자자설명회(IR)에서 개발자의 처우가 타기업 대비 월등하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했다" (비상장 IT 벤처기업 관계자)

      "중소형 게임사들은 너도나도 인건비를 올리다가 경영이 힘들어질 수 있다. 위메이드, 컴투스 등 공격적 채용은 물론, M&A를 활발히 한 곳들이나 P2E에 열 올리던 기업들은 유의미한 매출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엔씨소프트 등 현금흐름이 좋은 곳들이어야 늘어난 인건비가 감당가능하다. 개발자 연봉 경쟁 추세가 지속 가능하진 않다고 본다" (게임업체 관계자)

      "터질 게 터졌다고 본다. 지난 몇 년간 개발자 연봉 너무 높다고 말 나왔는데 실적 둔화가 가시화되면서 뒤늦게 이슈되고 있다. 상장사 중에서도 인건비로 실적 망가진 곳들이 수두룩하다. 그렇지만, 회사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채용을 줄이긴 어려울 전망이다" (증권사 산업 연구원)

      "유통업계는 마진율이 높지 않아서 사실상 연봉을 올리는 데 한계가 있다. 그런데도 네이버·카카오를 비롯해 게임업계에서 개발자를 모셔서 와야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연봉을 높이고 있다. 이커머스 업종 특성상 주문단계부터 최종 배송까지 자동화되고 있어 개발자 수요가 많다" (이커머스 업체 관계자)

      심사역·회계사·생산직까지 연봉 인플레 물결…발목 잡혀 당황한 기업들

      "MZ세대는 특히 경쟁사에 비교해 얼마큼 받는지를 예민하게 따진다. 직장 내 사기를 위해서라도 더 많이 올려야 하는데, 가전이나 핸드폰 사업 같은 경우 이익률이 낮다 보니 인건비 인상으로 인한 재무적 부담이 불가피하다" (증권사 산업 연구원)

      "최근 회계법인간 컨설팅 인력 쟁탈전이 치열하다. 기존 연봉의 배에 가까운 금액을 제시하기도 하는데,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기존 인력들을 어떻게 잡느냐가 고민이다" (컨설팅 업계 임원)

      "대형 법무법인들이 변호사 초봉을 대폭 올렸는데 소형사들은 이를 따라가기 어렵다. 위로 올라가기 쉽지 않다는 것을 파악한 저연차 경력직 변호사를 초빙하는 편이 낫다" (소형 법무법인 파트너)

      “대형 법무법인에서 경력직은 연봉을 높여 공격적으로 데려가기도 하는데 기존 파트너들에게 나눠줄 돈이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이 부담이 될 것이다” (대형 법무법인 파트너)

      "다른 회사들과 비교했을 때 저평가돼있단 지적이 있어 연봉 인상을 검토했고 올해 두 자릿수 인상을 결정했다. 건설업계 현장의 기술직들은 이직률이 높다. 특히 안전 쪽으로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라서 채용을 많이 해야 한다. 게다가 자재비도 오르면서 재무적 부담이 커지고 있다" (건설업계 관계자)

      워라밸·성과 보수 등 남은 불만 조율은 어떻게?

      "요새 PE 주니어들은 성과급에 민감하다. 프로젝트 딜 별로 성과급을 명시한 계약서 요구하기도 한다. 그만큼 성과보수에 대한 니즈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다만 PE 입장에서는 건별로 성과구조를 나눠 가져가기가 쉽지는 않다. 여러 가지 딜이 있는데 어떤 건 수익률이 잘 나고 어떤 건 수익률이 덜 나기 때문에 고민이 많다" (사모펀드 대표)

      "예전에는 직원들에게 돈 벌면 뭐 할 거냐고 물으면 집을 산다고 답했지만, 이제는 코인이나 주식이라고 한다. 열심히 일해도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연봉을 조금 올려줘서는 잡기가 어렵다. 그나마 최근엔 유동성이 줄면서 이탈률이 낮아지기는 했다" (M&A 자문사 임원)

      "초봉 8000만원으로 회사에 입사했는데, 처음엔 당연히 또래에 비해 많이 받으니 만족하고 지냈다. 그런데 주말도 없이 출근하고 기본적으로 밤 12시에 퇴근하는 것은 물론, 업무강도가 너무 높으니 그에 상응한다거나 그보다 못한 월급으로 느끼게 됐다. 경력이 낮은 어쏘 변호사들 사이에서는 월급이 많은 게 아니라 일하는 만큼 받는 것 같다고 이야기 한다" (대형 법무법인 어쏘 변호사)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크런치 모드로 불리는 문화가 남아있다. 성과에 대한 평가도 굉장히 냉정해서, 프로젝트가 하나 끝나면 팀이 해체되고 누군가 퇴사를 종용 받는 경우가 빈번하다" (IT업계 관계자)

      "대부분 입사는 빅펌으로 하지만 4년 차 이상이 되면 다들 중소형사로 옮긴다. 신외감법 시행으로 감사 시즌만 되면 죽어 나간다. 연봉이 적더라도 결국 못 참고 나가는 분위기가 만연하다. 신성장 IT 기업, 스타트업으로도 이직을 고려하고 있고 실제로 많이 했다" (대형 회계법인 관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