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금보장 안전자산 된 사모펀드?…라임사태 '사기취소' 판결 후폭풍 우려
입력 2022.05.27 07:00
    재판부 "대신증권의 라임 펀드 판매, 사기에 따른 계약 취소"
    불완전판매에 자본시장법상 사기적 부정거래 행위 적용한 최초 사례
    환매중단 펀드 계약 무효화 주장할 선례 등장…원금회수 요구 움직임
    법조계는 판결 여파 우려…"사모펀드,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자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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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수익증권의 매매 계약을 '사기'를 이유로 취소한 판결이 투자 시장에 파장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최근 법원은 라임자산운용 사태와 관련해 환매중단이 거론된 펀드 계약이 무효라고 판결했는데, 법조계에선 이를 계기로 투자금 회수 압박이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펀드는 자기 책임이 중시되는 고위험 상품이지만 앞으로는 사기를 문제 삼아 원금을 보전할 수 있는, 사실상 가장 안전한 투자처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2020년 발생한 라임 사태로 173개 펀드(1조6700억원)에서 환매가 이뤄지지 않아 대규모 피해자(개인 4035명, 법인 581사)가 나왔다. 수많은 자(子)펀드에서 모집한 투자금을 모(母)펀드에 편입시켜 운용하는 기형적 구조가 피해를 키웠다.

      대신증권은 반포WM센터 주축으로 라임 자펀드 상품을 팔았는데, 미상환액이 1800억원 이상에 달했다. 금융분쟁조정위원회는 작년 7월 대신증권의 라임펀드 불완전판매에 대한 손해배상 비율을 80%로 정했다. 영업점 통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대규모 피해가 발생했다는 점을 감안해 KB증권(60%), 우리·신한·하나은행(55%) 등에 비해 비율을 높였다.

      분쟁 조정과 별개로 소송 절차를 밟은 투자자들도 있었다. 지난 2020년 개그맨 김한석, 이재용 아나운서 등 대신증권을 통해 라임 펀드 상품에 가입한 투자자 4명은 대신증권을 상대로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을 냈다.

      대신증권 직원(장○○ 전 반포WM센터장)이 펀드의 수익성과 위험성에 대해 허위사실을 고지하거나 중요사항을 고지하지 않아 착오를 일으켜 펀드 투자 계약이 체결됐다고 주장했다. 민법 제109조(착오로 인한 의사표시)나 제110조(사기·강박에 의한 의사표시)에 따라 매매계약을 취소하니 펀드가입대금을 돌려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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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중앙지법제16민사부 2020가합515027 판결문 일부 발췌

      이 소송은 사기적 부정거래로 계약 취소가 적용될 수 있느냐가 주요 쟁점으로 떠오르며 법조계의 주목을 받았다. 나중에 형사 재판에서 전 반포WM센터장의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에 실형이 확정되긴 했지만, 민사에서는 사기 취소로 인정되기 어려울 것이란 예상이 있었다.

      이전에 착오를 이유로 펀드 계약 취소가 인정된 경우(대법원 2019다226005 판결· '피닉스펀드' 사례)는 있었지만 사기를 이유로 취소가 인정된 예는 없었다. 민법상 사기에 해당하려면 사기자의 고의와 위법적 기망행위가 있어야 하고, 그로 인해 상대방의 착오가 발생해야 한다. 이를 고려하면 위험성이 내재된 투자에 있어 손실의 책임을 판매자에 돌리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법조계에서도 '교과서에서나 볼 법한' 케이스라는 평이 따랐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6부(재판장 문성관)는 지난달 결국 투자자 4명의 손을 들어줬다. 대신증권이 해당 펀드의 수익증권을 판매하는 과정에서 위험성 등 중요사항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착오를 일으켜 계약을 체결했다 보고, 대신증권이 투자금 전액을 돌려줘야 한다고 판결했다.

      법원은 대신증권 직원이 ▲투자자들이 가입한 펀드가 모펀드(라임 플루토-FI D-1호)에 편입되는지 여부 ▲TRS 계약 상 증권사가 증거금을 우선 회수함으로써 자산운용사의 원본 회수 가능성이 낮아질 위험성이 있다는 점을 설명하지 않았다고 봤다. 아울러 펀드 수익률과 관련해선 '연 8% 최저' '담보금융 100%' 등으로 설명했지만, 투자 제안서에는 이같은 내용이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대신증권은 "라임자산운용으로부터 수익증권 판매를 위탁받은 판매사에 불과, 판매수수료 외 실질적으로 이익을 얻은 사실이 없다"는 입장이다. 현재 재판 결과에 불복해 항소한 상태다.

      사기에 의한 계약 무효화 선례가 나오면서 투자자 손실을 운용사 및 판매사가 의무적으로 보전해줘야 할 가능성이 생겼다. 법조계에선 해당 판결에 대해 우려하는 분위기도 있다. 금융감독당국도 아니고 사법부에서 이 같은 결정이 나온 것은 의외라는 반응과 함께 "사모펀드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상품이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설명을 잘 들었더라도 사기라고 우기면 원금을 잃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일탈 인정 범위가 '부당한 권유'에서 '사기'로까지 넓어진 금융사들의 부담도 커졌다.

      한 대형로펌 파트너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엄청난 파급력을 가질 사건이라 본다. 사기 취소라는 건 결국 해당 거래가 사기였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인데, 아직은 하급심 판결에 불과하지만 향후 대법원에서 계약취소 판결이 확정되면 금융역사상 큰 반향을 일으킬 수 있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계약 취소 및 원상회복'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부실 운용으로 환매가 중단된 지 2년이 넘은 이탈리아헬스케어 펀드가 대표적이다. 투자자들이 '착오에 의한 계약취소'를 요구하며 감독당국도 계약취소 가능성도 염두에 두는 상황으로 알려졌다. 분쟁조정을 앞두고 있는 독일 헤리티지 파생결합증권(DLS) 투자자도 전액 환불을 요구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한동훈 신임 법무부 장관이 취임과 함께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합수단)을 부활, 금융권 전반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상황이다. 새 정부 출범에 발맞춰 정치적 명분까지 갖춰진 만큼 사모펀드 사태 대응이 피해자에 우호적인 환경으로 조성될 가능성이 있다. 사정당국이 언제든 사모펀드 부실 사태를 명분으로 금융사들을 흔들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금융당국 출신의 금융거래 전문 변호사는 "부실 사모펀드에 대해 금융당국 등이 과거와 달리 수익증권 매매계약의 착오 취소를 인정하는 사례가 느는 상황이다. 금융사기범죄 근절 및 투자자 보호 차원 취지와 별개로 소위 '엄벌'이 과열되는 양상은 충분히 우려될 수 있는 부분"이란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