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금·공제회, 국민연금式 의결권 위임 시스템 도입 움직임
입력 2022.06.07 07:00
    우정사업본부 위탁사 의결권 위임 시스템 추진
    국민연금, 우본 시작으로 확산 가능성
    위탁운용사 자율성 확대 취지에도 불구
    주요 사안에는 기관이 직접 행사
    보여주기식 위임보단 실효성 있는 제도 도입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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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윤수민 기자)

      연기금·공제회 등 국내 주요 기관투자가들이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가 도입한 위탁운용사 의결권 위임 시스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지난 2019년 의결권 위임 시스템을 도입, 위탁운용사에 주주총회에서 의결권 행사에 대한 자율권을 부여했는데 이 같은 시스템이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국내 기관투자가들 다수가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31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우정사업본부는 현재 주식 위탁운용사들을 대상으로 의결권 위임 시스템 도입을 추진중이다. 구체적인 방안은 아직 제시되지 않았지만 관련업계에선 국민연금이 시행중인 방식과 유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국내 연기금, 공제회 등 기관투자가들 가운데 위탁운용규모가 비교적 큰 우정사업본부를 시작으로 이 같은 움직임이 확산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평가다.

      국민연금의 위탁운용방식은 국민연금이 직간접적으로 투자한 주식 가운데 일부에 대해 위탁운용사가 자율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2020년 정기 주주총회 시즌부터 도입됐는데, 시행 초기엔 개별 위탁 운용사가 서면으로 의결권 행사 방침을 국민연금 측에 제출해야하는 등 복잡한 절차에 운용사들의 불만이 속출했다. 의결권 행사만을 전담하는 부서가 없는 상황에서 수 십곳에서 많게는 100여곳이 넘는 기업의 의결권 행사 방향을 서면으로 근거와 함께 제시해야했기 때문에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의결권 위임 제도가 도입한지 3년이 지난 현재는 시스템이 전산화하면서 운용사들의 부담도 한층 덜게 됐고 일부 운용사에선 이를 담당하는 실무 인력을 배치하면서 초기의 부작용도 다소 잦아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민연금의 한 위탁운용사 관계자는 “국민연금의 의결권 위임 시스템이 초기의 부작용을 해소해 현재는 자리를 잡으면서 올해 주주총회에선 잡음 없이 진행됐다”며 “우정사업본부를 비롯한 다수의 기관투자가들이 유사한 시스템을 도입할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의 시스템이 정착한 점, 개별 운용사들의 운용 노하우가 쌓인 것과 별개로 최근 들어 국내 기관투자가들 사이에서 사회적 책임투자(ESG)를 강조하는 기조가 확산하고 있는 점도 기관투자가들이 의결권 행사의 권한을 위탁운용사에 넘기는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기업의 거버넌스를 평가한다는 측면에서 의결권 행사 권한을 한 곳에 집중하기보다 각 운용사의 자율성을 부여해 다양한 각도로 평가해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로도 해석할 수 있다. 국민연금은 최근 모든 위탁운용사를 대상으로 책임투자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했는데 위탁 자산에 대해 ESG투자 가치를 적극 반영하겠단 의지로도 풀이된다.

      다만 위탁운용사에 의결권을 위임하는 방식에 대한 실효성은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다.

      사회적으로 논란이되거나 찬반이 명확한 사안들에 대해선 국민연금은 보유 주식에 대한 의결권 모두를 직접 행사하고 있다. LG화학, SK이노베이션의 물적분할 등 주주 권익 침해 논란이 일었던 사안들에 대해서 국민연금은 의결권을 직접 행사했고, 최근 포스코의 물적분할 과정에서도 기금운용본부는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에 권한을 위임해 최종 승인을 의결한 바 있다. 주요한 사안들에 대해선 권한을 제한하면서 위탁운용사들에 자율성을 부여한다는 ‘생색내기식’ 제도 도입이란 비판을 피하기 위한 기관투자가들의 보다 세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